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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_ 요1:6~41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0.08.16|조회수40 목록 댓글 0

사람들이 요한에게 너는 누구냐?’고 묻습니다. 요한은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며, 그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대답합니다. 내용도 문자도 갖추지 못한 소리로 요한은 일했습니다. 소리가 공명되는 그 순간이 지나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으며 요한은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예수에게 너는 어디 사냐?’고 묻습니다. 예수께서는 와서 보라시며, 사는 델 보여주십니다. 예수께서 사는 델 보고, 사람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판단합니다. 예수께선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둥지가 있는데, 자신은 머리 둘 곳이 없다하셨어요. 사람들이 확인한 예수의 거처는 이었을 겁니다.

 

신약성경의 주인공이라면, 흔하디 흔한 생가 하나쯤 있을 법한데, 예수에겐 아무 흔적이 없습니다. 예수께선 길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정주하지 않고, 날마다 걸었기 때문입니다.



Gogh, The Cottage, 1885


집이 있습니다. 가족들이 누울 천장이 있으면 집입니다. 예수의 거처를 생각하면 집이란 이미 사치재입니다. 예수의 삶을 생각하면 천장만 있어도 호화스럽습니다만 집은 필요합니다. 순교하지 못했던 요한이 예수의 어머니를 봉양하려면 천장 갖춘 집이 있어야 하니까요. 집은 내가 책임져야 할 가족들을 양육하고 봉양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내 가족들을 위한 공간 이상의 집을 소유한다면 다른 가족의 공간을 빼앗는 것입니다. 내 인생을 경영하기도 힘든데, 다른 가족의 공간까지 점유하는 수고까지 맡을 필요는 없겠습니다. 집의 크기는 잠잘 때 나와 내가 누울 천장 만큼이면 충분합니다. 더러 큰 집이 필요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거 하나면 됩니다.

 

얼마 전 15년을 탄, 21년 된 자동차를 폐차했습니다. 15년 전 550만원을 주고 샀는데 폐차하면서 고철 값으로 28만원을 받았습니다. 자동차는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떨어지는데, 집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오릅니다. 시세차익, 불로소득이란 말이 나올 만큼 크게 오르기도 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마음속엔 집값이 올라 이익을 보고 싶은 오래된 욕망이 있습니다. 집값 상승으로 재산 증식을 할 수 없다는 정책에 화를 냅니다. 집은 재산 증식의 수단이 아니라, 천장이 필요한 사람들이 누울 곳입니다.

 

예수께선 그나마 누울 곳이 없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른다면 천장 아래에 사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재산을 갖게 된 것입니다. 자가든, 전세든, 월세든, 천장 아래 살고 있다면 예수보다 훨씬 부자입니다.

 

예수께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오죽하면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게 부자가 천국 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셨겠습니까. 어젯밤 천장 아래에서 자고, 오늘 아침 천장을 보며 깼다면 삼갈 일입니다. 내 욕망을 들여다보고, 내가 가진 게 무엇인지, 내가 가져도 되는 것인지, 돌아볼 일입니다.

 

구름이 두꺼운 요즘입니다. 천장 아래에서 자고 깨는 게 감사한 하루하루입니다. 그러나 가까이 우리 이웃 중에 두꺼운 구름을 천장 삼은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천장 아래는 복된 자리가 아니라 저주 내릴 지옥이 될 것입니다.

 

큰 비로 피해 입은 사람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정부가 하겠지만, 정부의 재정이 빨리 닿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혹 우리 교회에, 교회 일가에 어려움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저녁에 눕고 아침에 깨는 천장 아래를 보면 압니다. 예수께서는 길에 계셨고, 하늘을 천장 삼아 사셨고, 오늘은 여기에서 내일은 저기에서 누우며 쉬지 않고 길을 가셨습니다. 도저히 따르기 힘든 삶입니다. 그리고 그 길의 마지막이 십자가였다면 평범한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수준의 삶입니다.

 

예수를 따를 수 없다면, 적어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부끄럽기 때문에 겸손해지고, 겸손하게 말하며, 천장 없는 사람들을 환대하면서 예수께서 가셨던 길을 순간이나마 동행해야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게 순간이나마 요한처럼 예수의 길을 준비하는 소리로 살 수 있을 겁니다.

 

직접 환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세금을 내는 겁니다. 집이 두 채 이상이라면, 어느 천장 아래 나그네를 들이는 게 번거롭고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꺼이 세금을 열심히 많이 내서 천장 없는 사람들을 정부가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천장 아래 사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집이 두 채 이상 있다면 부끄러워해야지 화낼 게 아닙니다.

 

요한이 받았던 질문을 나에게 던집니다. ‘나는 누구인가

예수께서 받았던 질문에 답이 있습니다. ‘나는 어디에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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