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친구 _ 요15:1~15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0.10.24|조회수38 목록 댓글 0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누군가의 발을 씻겨주는 건 종의 임무였습니다. 스승 예수께서 제자들의 종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유언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서로에게 종이 되라는 뜻입니다. 서로에게 종이 되어, 서로를 섬기라 하십니다.

 

스승이신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며 종노릇하신 건, 자기를 깎아 제자들을 높인 것입니다. 높은 산허리를 베어 낮은 골짜기를 메운 것입니다. 산과 골짜기가 무등無等해진 것입니다. 스승과 제자가 친구가 된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그의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요15:15

 

12살짜리 아들이 스피커폰을 켠 채 또래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곤 합니다. 게임에 관한 얘기를 할 때가 많습니다. 게임 아이템이나 게임 속 상황들에 관해 얘기하는 거 같습니다.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비슷한 또래 친구들끼리 통하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 말이 통해야 친구입니다. 말이 통한다는 건 관심사가 비슷하고 문화를 공유하며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겁니다. 말이 통해야 친구고, 친구라면 말이 통해야 합니다.

 

옛날 모세와 하나님은 말이 통했습니다. 출애굽기 33장 11절입니다. “주님께서는, 마치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말하듯이,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고 말씀하셨다면, 당연히 모세와 하나님은 말이 통했을 것입니다. 말이 통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친구에게 말하듯”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모세는 말이 통하는 친구였겠습니다.

 

스승 예수께서 제자들을 친구라 부르시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친구로 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친구로 대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땅에서 만난 사람들을 친구라 부르십니다. 신앙은 이렇게 하나님과 우정을 쌓는 것입니다.

 

우정을 쌓는다는 건, 말이 쌓인다는 것입니다. 서로 간에 오고가는 말이 쌓인다는 것입니다. 서로 간에 주고받는 말이 쌓여야 우정이 두텁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 간에 말이 쌓여 우정을 쌓는 처음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적혀있는 하나님의 말을 듣고, 마음에 품은 말을 기도로 풀어내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 말이 쌓이면서 우정도 쌓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어려운 표현이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입니다.요14:10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를 달리 표현하면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요15:7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건, 아버지의 말이 내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건, 어떤 신적 존재와 접신한다는 게 아니라, 큰 울림을 주는 말이 내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말로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은 구체적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는 말이 곧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다른 편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았고, 또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요일4:16

 

서로 사랑하라는 말, 그 뜻이 뭔지 어렵잖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을 이해한다면 예수의 친구가 맞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을 이해한다면, 옛날 모세가 경험했던 것처럼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이 그런 존재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 그래서 하나님과 말이 통하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말이 통하는 하나님의 친구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건 스승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종노릇하신 것처럼 서로에게 종이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서로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내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이다.”요15:12~14

 

서로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친구가 될 때, 그렇게 서로 사랑할 때,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의 계명 안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로 존재하지만, 하나님의 존재 증명은 말로 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요1:14

 

말이 육신이 될 때, 하나님의 존재는 증명됩니다.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 놓”을 때 하나님의 존재가 증명됩니다. 예수께선 제자들을 친구 삼으시고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 놓으셨습니다.

 

죽어 부재함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십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