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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사 _ 창3:6~7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1.01.24|조회수79 목록 댓글 0

토요일마다 어린이 손님들이 ‘민들레와달팽이’에 찾아옵니다. 9살, 6살, 5살 세 자매가 책방 홀을 걷기도 하고, 다락에서 소꿉놀이도 하고, 주방에서 물을 마시기도 하고, 피아노를 치기도 합니다. 책방 여기저기를 맘껏 다니도록, 무엇이든 마음껏 만지도록 허락했습니다. 다만, 다락방 옆에 있는 작은 사무실엔 들어오지 못합니다. 무엇이나 만져도 되지만, 만지다가 망가져도 되지만, 제 좁고 작은 사무실 물건이나 책을 만지는 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동산에 사람을 살게 하시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동산 어디나 가도되고, 동산 나무의 열매 무엇이나 먹어도 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못 먹게 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만져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동산의 사람들은 기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학자들은 원죄라고 불렀습니다. 원죄, 근원되는 죄란 선악을 아는 것입니다.

 

선악을 아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고 해서, 그 지식을 갖게된 건 아닙니다. 선악을 알게 됐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선악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이것이 원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선하다고 부르셨습니다. 세상을 선하다고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람은 세상의 선을 인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사람들이 선한 선생이라고 불렀지만, 예수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만이 선하시고, 하나님만이 선을 인식할 수 있기에, 사람들은 예수님이라도 선하다고 말할 순 없는 겁니다. 예수마저 선하다고 부를 수 없다면, 사람은 누구도 무엇도 선하다고 부를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은 선에 대해 무지합니다.

 

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선하다고 하나님께서 선언하셨기에, 사람은 악에 관해 말할 수 없습니다. 악은 존재하지 않기에 사람은 악을 말할 수 없습니다.

 

선은 인식되지 않고, 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선을 인식하는 양, 악 때문에 괴로운 양 착각합니다. 이것이 원죄입니다. 인식할 수 없는 것을 평가하고, 없는 것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가난과 부유함을 생각합니다. 가난하면 하나님을 저주하기 쉽고, 부유하면 하나님을 필요로하지 않습니다. 생명과 죽음을 생각합니다. 살아서 여전히 망언을 하는 학살자도 있고, 죽어서도 믿음을 증언하는 의인도 있습니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어떤 게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인지,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선과 악을 구별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만의 공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아래, 그 가지에 팔이 닿을 만한 자리는 하나님만의 영역입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친밀함을 이유로, 그 공간과 시간을 침입하면 관계가 깨지곤 합니다.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은 자기 존재의 연장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침입하는 건, 그의 마음을 행한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놓인 자리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하나님과 아무리 친밀해도 나무의 가지가 드리워진 그늘 아래에 침입해선 안 됩니다. 사람이 선을 인식했다고 말하거나, 악의 존재를 단정하는 건 하나님의 영역을 침입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다만 선과 악에 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향해 나아갑니다. 어떤 상황과 사건이나 사람을 선이라 확정할 순 없습니다. 악해 보이는 것, 악하게 여겨지는 것까지, 다 합쳐지고 버무려져 선하게 되어갑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향해 나아갑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는 것과 대학에 가지 않는 것, 모든 것이 선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병든 몸이 무너져 침대에 눕는 것과 병들지 않아 걷고 먹는 것, 모든 것이 선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집이 없어 이주하고 집이 있어 정주하는 것, 모든 것이 선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잔고가 없어 하나님께 구하고 잔고가 남아 이웃과 나누는 것, 모든 것이 선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앞으로 행진하고 주님 말씀하시면 가만히 멈춰서는 것, 모든 것이 선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선을 향해 나아가는 줄 알고 신뢰하는 게 우리의 믿음입니다.

 

토요일마다 찾아오는 어린이들은 토요일마다 사무실 문을 열려고 시도합니다. 어제도 제 꺼 포스트잇을 가리키며 무어냐고 묻습니다. 갖고 놀아도 되냐는 질문일 겁니다. 내 영역을 넘어왔지만, 사무실은 내 영역이라고 말해주었지만 책방에서 쫓아내진 않았습니다. 다만 좁은 사무실 밖으로 내보내고, 좁은 사무실보다 넓은 책방 어디든 다니도록 했습니다. 동산 중앙에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탐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선악을 구별하는 건 하나님의 몫이라고. 그리고 선악을 판단하는 삶을 떠나 넓은 세상을 살게 하셨습니다. 실낙원은 인간에게 징벌 같지만, 더 넓은 세상이 선하게 창조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흘러온 자리마다, 흘러가는 자리마다 하나님께서 선하게 하실 것입니다. 흐르는 모든 과정이 선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내일부터 일주일, 책방 내부 공사를 합니다. 싱크대와 카운터를 철거하고 사람들이 앉거나 누울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려구요. 길가가 보이는 유리창 앞에서 긴 테이블을 짜 창 너머를 보고 공부하는 자릴 만들려구요. 책방 들머리 통유리 앞에 선반과 책장을 짜서 더 다양한 책을 소개하려구요. 로스터리를 들어내고 그 자리에 한 두 사람이 대화거나 혼자 기도할 수 있는 의자를 놓으려구요.

 

마음 공사도 함께 되면 좋겠습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하게 철거하고 깨끗하게 비우는 마음, 다른 사람들이 걷는 길을 전망할 수 있는 마음, 이웃들이 눕기도 하고 앉을 수 있는 여유 있는 마음으로 공사되면 좋겠습니다. 기도하며 공사하겠습니다. 책방 공간도, 마음 자리도 더 넓어지고 넉넉해지도록 공사하겠습니다. 여길 찾아오는 사람들이, 우릴 찾아오는 사람들이, 에덴을 경험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선하다 하실 우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향해 나아갑니다.

 

 

글/ 김영준 목사_민들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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