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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지 _ 눅1:1~25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1.02.07|조회수94 목록 댓글 0

돈을 숫자로만 거래할 수 밖에 없을 때, 돈은 자본이 됩니다. 가방에 넣고 다닐 수 없는 돈은 자본입니다. 자본은 마치 세포처럼 스스로 증식하는 살아 있는 생물 같습니다. 그래서 무섭습니다. 옛날 어딘가에서 빼앗았던 물건과 노동력을 숫자로 보관해 둔 게 자본이지 싶습니다. 숫자로 방부 처리된 돈 자본은 우리 사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권력입니다. 그래서 무섭습니다.

 

헤롯 대왕은 자본을 다루는 사람이었습니다. 근대적 자본은 물론 아닙니다만, 헤롯은 숫자로만 존재하는 달란트 단위의 돈을 로마 황제에게 상납하는 조건으로 왕이 된 사람이었으니 자본을 다루는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빼앗듯 세금을 거두어 황제에게 바치는 것으로 정치 권력을 획득한 이가 헤롯은 어떤 명분도 정통성도 없이, 돈을 거두어 자본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만으로 왕이 되었습니다. 자본이 왕을 만듭니다. 왕의 정통성보다 자본이 더 높은겝니다.

 

헤롯 왕이 다스리던 때에,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살았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그 두 사람 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헤롯은 로마 황제 앞에 자신을 비추며 살았고,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비추며 살았습니다. 사람의 크기는 어떤 거울에 비추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로마 황제 앞에 비추면 보이지도 않을 겁니다. 돈도 없고, 돈을 빼앗을 능력도 없는 무능한 사람이 로마 황제 눈에 들리 없습니다. 헤롯은 당대에 대왕이었지만 하나님 앞에 비추면 보이지도 않을 겁니다. 뜻과 명분 따위 관심 두지 않는 헤롯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니까요.

 

찰리 맥커시의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의 첫 번째 패이지를 소개합니다. 소년과 두더지가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난 아주 작아.” 두더지가 말했어요.

“그러네.” 소년이 말했지요.

“그렇지만 네가 이 세상에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야”

 

 

가끔, 스스로를 비춰보며 아주 작다고 느낍니다. 두더지 같습니다. 땅 속으로 숨어 땅 속으로만 길을 내며 다니는 것처럼, 나는 작고 동굴 같은 길로만 다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늙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낳은 요한은 사막에서 살아갑니다. 제사장 가문의 후손으로서 성전에서 일하지 않고, 사막으로 가버렸습니다. 낙타 가죽으로 몸을 가리고, 메뚜기를 먹으며 연명했습니다. 그런 세례 요한을 천사장 가브리엘은 “주님께서 보시기에 큰 인물”이라 소개합니다.

 

요한이 사는 자리는 궁전도 아니고 성전도 아닙니다. 사막에 사는 요한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큰 인물”입니다. 궁전이나 성전이 크다고 해서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큰 건 아닙니다. 궁전이나 성전도 하나님의 자리에서 조감하면 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도에 표시되는 점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게 궁전과 성전입니다. 커 보이지만 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헤롯 대왕 따위 있는지 없는지 조차 관심 두지 않으십니다. 헤롯 같은 사람들이 설치지 않도록 관심 두시면 좋겠습니다만, 너무 작은 존재들이라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시는 걸까요. 오늘도 헤롯 같은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시끄럽습니다.

 

하나님은 사막에 사는 요한을 크게 보십니다. 사막에서 소리가 되어 사는 요한이 하나님에겐 큰 인물입니다. 사막에 사는 두더지 같은 요한이 하나님에겐 큰 인물입니다. “요한은 사람 보기에는 보잘 것 없었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메시아의 선구자로서 큰 자였습니다. 사람 앞에서 큰 자보다 하나님 앞에서 큰 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박수암, 『누가복음』)

 

하나님 만드신 세상에서 요한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궁전과 성전 밖에서 두더지 같이 사는 요한이 있고 없고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궁전과 성전으로 자기 껍데기를 삼고자하는 사람은 흔하나, 벽돌로 짠 껍데기 장식으로 자신을 가리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은 요한은 귀합니다. 귀한 두더지가 세상에 있고 없고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너는 작지 아니하도다”(마2:6)

 

생활하고 나면 얇은 지갑에 넣고다닐 만큼의 돈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자본은커녕 생필품이 되는 돈도 늘 아쉽습니다. 하물며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한 돈, 일을 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돈, 아이를 입히고 먹이고 가르치기 위한 돈을 셈하면 막막할 때 많습니다. 사막 두더지 같은 요한을 조금은 닮은 겁니다.

 

책방을 꾸미고 있습니다. 들어가는 돈을 생각하면 벌렁벌렁합니다. 참 작습니다. 유명한 어떤 이에게는 하루 일당일 수도 있지만, 우리에겐 아끼고 아껴서 결단하고 결단해서 마련한 돈이라 그렇습니다. 일주일도 채 안 걸리는 인테리어에 들어가는 돈에 벌렁거리는 두더지의 심장이 제 것입니다.

 

우리가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글/ 김영준 목사_민들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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