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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매일 변신하는 우리를 시청하신다 _ 눅9:28~37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1.02.07|조회수179 목록 댓글 0

아이들이 어릴 때 거의 매일 ‘용감한 구조대 로보카 폴리’라는 애니메이션을 시청했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배경은 브룸스타운이라는 자동차들이 사는 마을. 일상이 돌아가는 곳이면 으레 사건 사고가 있기 마련이라, 브룸스타운에서도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지곤 합니다. 사고의 현장엔 늘 구조대가 달려가는데, ‘폴리’, ‘로이’, ‘엠버’, ‘헬리’가 대원들입니다. 구조대원들이 사고 당한 마을 자동차들을 구할 때면 로봇으로 변신하는데, 경찰차 폴리의 지휘 하에, 헬리콥터 헬리는 먼저 날아가 현장을 살피고, 구급차 엠버는 부상당한 자동차를 치료합니다. 힘센 소방차 로이는 낭떠러지에 매달린 자동차를 당겨 올립니다. 구조대원들이 유능하게 마을의 사건 사고를 해결할 수 있는 건, 변신 능력 때문입니다.

 

변신 능력을 갖춘 애니매이션 주인공들은 많습니다. ‘파워 레인저’, ‘레이디 버그’, ‘또봇’ 등 위기를 맞으면 변신해 이런저런 어려움들을 헤쳐 나가곤 합니다. 어른들도 변신하는 ‘헐크’의 활약을 보기 위해 돈을 치르고 영화 ‘어벤저스’를 보기도 하구요.

 

어린이와 어른 다 변신에 대한 환타지가 있습니다.

 

변신 환타지는 성서 속 현실입니다. 예수께서도 변신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기도하고 계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변하고, 그 옷이 눈부시게 희어지고 빛이 났다.”(눅9:29)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따로 데리고서 높은 산에 올라가셨다. 그런데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모습이 변하였다. 그의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게 되었다.”(마17:2)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해 같은 얼굴로, 빛처럼 하얀 옷을 차려입은 모습으로 변신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변신한 곳은 산이었는데, 예수께서 변신한 게 너무 좋아 제자들은 산에다가 집을 짓겠다고 호들갑이었구요. 빠르게, 강하게, 게다가 아름답게 변신하는 건 호들갑스러워도 될 만큼 좋습니다.

 

사실 변신은 모든 살아있는 사람에게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몸을 이루는 세포는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죽으니까요. 세포의 생성과 소멸은 지금도 우리 몸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생명과 죽음이 우리 몸속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성장하고, 어른은 늙어가며 날마다 변신합니다. 어린이도 어른도 변신 중이지만,

 

대개 어린이는 변신을 기뻐하고 어른은 변신을 슬퍼합니다. 성장은 빨라지고 강해지지만, 늙음은 느려지고 약해지는 것이니까.

 

예수께서는 천국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어린이들이 천국을 소유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늘 나라는 이런 어린이들의 것이다."(마19:14) 어린이들은 성장하며 변신하는 자신을 기대합니다. 어린이들은 변신을 좋아합니다. 이렇게 변신을 기뻐하는 어린이가 천국을 갖습니다.

 

천국은 변신을 기뻐하는 자의 것입니다. 지금과 달라진 세상과 자신의 변신을 기뻐하는 자에게 천국이 있습니다. 장차 닥쳐올 모르는 것을 기뻐하는 자에게 천국이 있습니다. 오늘과 달라질 내일을 기뻐하는 자에게 천국이 있습니다. 변신을 기뻐하는 어린이는 내일을 염려할 수 없어, 날마다 천국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어른도, 변신하며 맞이하게 될 내일을 기뻐하며 맞이한다면 천국을 소유할 것입니다. 내일은 오늘과 달리 변신되는 기쁜 날이라 염려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빨라지고 강해지는 걸 기뻐하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느려지고 약해지는 걸 기뻐하는 어른도 천국을 갖게 될 것입니다. 느려지니 천천히, 약해지니 겸손하게, 변신을 기뻐하는 어른도 천국을 소유합니다.

 

손원평의 소설 ‘아몬드’는 성장하며 변신하는 ‘예쁜 괴물’의 이야기입니다. ‘예쁜 괴물’은 알렉시티미아 즉, ‘감정표현불능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책 속 ‘예쁜 괴물’은 “편도체의 크기가 작은 데다 뇌 변연계와 전두엽 사이의 접촉이 원활하지 못해” “남들이 왜 웃는지 왜 우는지 잘 모릅니다.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고,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합니다.” ‘예쁜 괴물’은 심지어 할머니와 엄마가 칼에 찔려 죽어가고 있을 때도 슬프거나 무섭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식물인간 되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론 괴물을 예쁘다고 여기는 사람이 없어, 그냥 괴물이 되었는데, 어느 해에 키가 9cm나 자랐습니다. “자란다는 건, 변한다는 뜻”이입니다. 키가 자라며 편도체도 자랐을까요,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던 괴물이 여친 때문에 가슴을 앓고, 위험에 빠진 친구를 구하려 친구 대신 가슴을 찔립니다.

 

자라면서 변신합니다. 늙어가며 변신합니다. 변신은 환타지가 아니라 현실인 겁니다. ‘예쁜 괴물’이 성장하며 연정을 느끼고 우정을 지키는 사람으로 변신하는데, 어른 된 내 늙음도 변신이라면, 환타지는 내 일상 속 현실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오르셨던 산 위 뿐만 아니라 여기 산 아래도 변신이 일어나는 공간입니다. 산 위에 집지어 주겠다는 베드로의 제안을 무시하고, 산 아래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오신 까닭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 속에 있습니다. 마을 속에서 천국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마을 속에 살기에 건전한 상식으로 소통해야 하고, 천국 시민이기에 상식을 초월한 유토피아를 꿈꾸는 게 교회입니다. 마을도 교회도 날마다 변신하고 있습니다. 이 변신을 기뻐하는 교회가 천국을 소유할 것입니다.

 

민들레교회도 날마다 변신합니다. 겉모양도 변신하고, 조직의 운영방식도 변신하고, 예전의 모양도 변신하고, 성도 한 명 한 명도 변신합니다. 이렇게 변신하며, 어제까지 몰랐던 천국을 오늘 누리는 게 교회이고 성도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선 매일 변신하는 우리를 시청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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