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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나무에게" _ 눅13:18~21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1.03.28|조회수97 목록 댓글 0

나무는 폭염을 가리는 그늘을 만들어줍니다. 나무는 열매를 맺어 먹여줍니다. 나무는 목재를 제공합니다. 나무는 그루터기로 남아 의자가 되어 줍니다. 쉘 실버스타인("Shel" Silverstein, 1930-1999)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야기입니다. 사람과 나무 사이에 오랜 우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도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아주 작은 씨앗이 땅에 떨어져 싹이 되고, 자라서 나무가 된다고 하십니다. 누가(Luke)를 통해 들려주는 나무 이야기는 교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 교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다락방에서 처음 시작했던 교회,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을 통해 로마 제국 여기저기에 다양한 언어로 퍼져가는 교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주 작은 사람들, 아주 작은 모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국의 정치 조직, 그리스 로마 세계의 신전, 회당을 갖춘 유대교인들에 비해 가장 작은 겨자씨 같은 사람들 모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는 누가를 통해 겨자씨 같은 작은 교회가 나무처럼 큰 교회가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어 반죽을 부풀리는 누룩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것이 온 세상에 퍼지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작은 사람들, 작은 모임은 겨자씨나 누룩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됩니다. 누룩이 반죽 전체에 퍼집니다.

 

예수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는 제국과 그리스종교와 유대교 사이에서 미미한 조직을 이루며, 때로는 박해를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게 소망입니다. 겨자씨가 자라 나무가 되고,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리게 할 것이니까요. 성장과 확장에 관한 이야기는 작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명 힘이 됩니다.

 

작고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우리가 교회입니다. 한 명 한 명이 겨자씨 같이 작습니다. 교회도 작아 겨자씨 같습니다. 나도 작고 우리도 작습니다.

 

작은 우리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된다는 게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믿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씨앗이 나무가 되고, 나무가 자라는 건 자연 속에서 흔히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신비니까요. 성장은 하나님의 신비이면서 자연 속 현실이라, 믿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민들레교회도 분명 자랐습니다. 그리고 더 성장할 것입니다. 성장은 생명현상이어서, 민들레교회가 생명이라면 나무처럼 나이테를 만들며 자랄 것입니다. 나무가 되어 그늘을 드리우고 열매를 제공하고 목재가 되고 그루터기 의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자라 큰 나무가 되고 때가 되면 베어져,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면 좋겠습니다.

 

장욱진, [나무와 새], 1957

 

예수께서 들려주신 겨자 나무 이야기를 듣고 궁금한 게 있습니다. 겨자 나무 이야기라면, 겨자씨가 땅에 떨어져 삼심 배 육십 배 백 배의 겨자를 맺게 된다는 게 그럴듯합니다. 씨 뿌리는 농부라면 열매를 맺는 걸 당연히 기대할 거구요. 그런데 겨자 나무 이야기는 조금 다릅니다. 겨자 나무가 겨자 열매를 맺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겨자 나무가 자라, 큰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 들였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무에 대한 기대가 다릅니다. 겨자 씨앗을 뿌리는 사람은 겨자를 수확하는 게 목적이었겠지만, 하나님은 씨를 뿌리는 사람의 기대 이상을 설계하십니다. 겨자 나무는 씨앗을 뿌린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겨자 나무는 공중의 새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었다 해도, 사람이 겨자 나무를 독점할 수 없다는 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겨자 나무는 공중의 새들도 함께 그 지분을 갖는 공공재입니다.

 

겨자씨가 겨자나무가 되듯, 교회도 성장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겨자 나무 같이 성장한 교회에게 공중의 새들을 위한 가지를 기대하십니다. 공중의 새들이 깃들일만한 가지를 제공하는 겨자 나무 같은 교회를 하나님께선 디자인하십니다. 농부가 씨 뿌릴 때 세웠던 목적 이상의 설계와 기대를 하나님은 교회에 갖고 계십니다. 사람이 씨를 뿌릴 때, 하나님은 공중의 새까지 생각하십니다.

 

민들레교회가 꾸린 공간 ‘민들레와 달팽이’에 사람들이 들고 납니다. 모자 가정의 어린이들이 공부하고 쉽니다. 상담이 필요한 이웃이 대화하고 커피를 마십니다. 하루 중 한 시간 정해진 일과가 필요한 이웃이 알바를 합니다. 또, 아이들 공부방으로 임대했던 301호에 인도 뭄바이에서 오신 선교사님 가정이 한 달 여 묵으실 예정입니다.

 

겨자 나무는 아무리 커도 온 세상을 구원할만한 방주가 되진 못합니다. 겨자 나무는 작지만 공중의 새들이 날개 쉼 할 때, 앉았다가 다시 날아갈 수 있는 가지가 되기엔 충분히 큽니다. 그리고,

 

공중의 새들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또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마6:31~34)

 

 

 

글/ 김영준 목사_민들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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