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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1.06.06|조회수34 목록 댓글 0

창세기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요셉이 백열 살에 세상을 떠나니, 사람들은 그의 시신에 방부제 향 재료를 넣은 다음에, 이집트에서 그를 입관하였다.” 이집트의 총리로서 파라오의 아버지 역할을 했던 요셉이 죽습니다. 그 죽음을 알리는 것이 창세기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창세기의 첫 번째 문장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선 여전히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는 진행 중입니다.

 

파라오의 아버지 같았던 요셉은 부재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존재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존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는 까닭에 요셉도 요셉다웠습니다.

 

2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앞길이 잘 열리도록 그를 돌보셨다.”

 

요셉은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이집트로 팔려갔지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셨기에 그 앞길이 잘 열렸습니다. 형통했습니다. 또 요셉은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계셔서 감옥에서도 형통했습니다.

 

“요셉의 주인은 요셉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다. 그 곳은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곳이었다. 요셉이 감옥에 갇혔으나,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면서 돌보아 주시고, 그를 한결같이 사랑하셔서, 간수장의 눈에 들게 하셨다. 간수장은 감옥 안에 있는 죄수를 모두 요셉에게 맡기고, 감옥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을 요셉이 혼자 처리하게 하였다. 간수장은 요셉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았다. 그렇게 된 것은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며, 주님께서 요셉을 돌보셔서,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나 다 잘 되게 해주셨기 때문이다.”(창39:20~23)

 

어디에 있든 하나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 있어서, 우리는 평안합니다. 하나님 앞에 있어서, 우리가 정직합니다. 평안하고 정직한 까닭에 요셉이 형통합니다. 이집트로 팔려갔지만, 감옥에 갇혔지만, 거기가 어디든 요셉은 잘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떨어져 있습니다. 각자 사는 자리에 하나님께서 계시다고 믿겠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부럽습니다. 내가 사는 자리가 ‘시냇가’는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때를 따라 열매를 맺듯이 잘 사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냇가’가 어떤 곳이었는지 다시 생각합니다. 요셉에겐 감옥이 시냇가였습니다. 요셉에겐 타향이 시냇가였습니다. 요셉의 시냇가는 얼른 보기에 그럴듯하지 않습니다. 요셉에게 이집트는 팔려간 곳이었는데, 거기가 시냇가였습니다. 요셉에게 감옥은 억울한 곳이었는데, 거기가 시냇가였습니다.

 

시냇가는 그럴듯한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파라오의 아버지가 된 요셉 덕분에 형제들과 자손들이 잘 살았습니다. 그러나 요셉도 죽습니다. 도와줄만한 유력한 사람이 죽습니다. 창세기의 마지막이 요셉의 부고라는 게 묵직합니다. 창세기의 마지막에 요셉의 부고를 접하며 다시 창세기의 첫 문장을 읽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여기에 거기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쫓겨난 자리에도, 갇힌 자리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면, 괜찮습니다.

 

우리는,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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