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성령 세례 _ 막1:14~20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1.08.15|조회수147 목록 댓글 0

“온 유대 지방 사람들과 온 예루살렘 주민들이 그요한에게로” 와서 세례를 받았다.(막1:5)

 

세례를 베풀 때 요한이 사람들에게 요구한 건 제물이 아니었다. 재물도 아니었다. 사람이 깨끗해지려면 제물을 바쳐야 되는 것도 아니고, 돈을 내야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회개해야 했다. 흐르는 물로 세례를 베풀었기 때문에, 제물도 필요 없었고 돈도 들지 않았다. 회개하면 죄를 씻을 수 있다는 요한의 설교는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달랐고, 돈 없는 사람들에겐 달았다.

 

요한의 설교가 달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이다. 종교지도자들은 성전과 관습을 무시하는 세례자 요한이 껄끄러웠겠다. 헤롯의 결혼을 비난했다는 죄를 붙여 요한을 감옥으로 던져버린다. 돈도 들지 않고 제물도 필요 없는 세례를 봉쇄해야 돈과 제물을 들고 사람들이 성전으로 올테니까.

 

요한이 회개를 말하다가 감옥에 갇혔는데 말이다, 이젠 예수가 회개를 말한다. 예수는 회개를 말하며 세례를 베풀지도 않는다. 그저 회개를 말한다. 예수가 회개를 말할 때 아무 것도 없는 건 아니다. 예수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푼다. 보이지 않지만 뭔가 있었다. 성전도 아닌 곳에서, 제물도 쓰지 않으면서, 심지어 요한처럼 물도 활용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성령의 감동을 따라 회개하라고 선포했다. 회개가 뭐 길래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걸까. 그냥 뉘우치고 반성하는 거라면 굳이 성령의 감동 없이도 할 수 있지 않은가.

 

8월 13일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이 가석방됐다. 「“국민 여러분께 너무 큰 걱정을 끼쳐 정말 죄송하다”며 허리 숙여 사과했다. 이 부회장은 또 “저에 대한 걱정, 비난, 우려 그리고 큰 기대를 잘 듣고 있다”며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세계일보2021814일자 참회(懺悔)하고 열심히 일하는 건 회개가 아니다. 참회(懺悔)는 뉘우치고(懺) 뉘우치는(悔) 것이다. 부자는 참회할 수 있지만, 회개하긴 어렵다. 뉘우치고(懺) 뉘우쳤다 해서(悔) 회개한 건 아니다. 회사돈 86억을 횡령해 뇌물로 사용한 자가 회개한다는 건 꼼수로 내지 않은 상속세를 정직하게 내는 것이다. 86억을 횡령했다면 다신 경영에 참여하지 않아야 회개하는 것이다. 잘못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따위가 회개가 아니다. 이전에 하던 것보다 더 열심히 하기로 다짐하는 건 회개가 아니다. 이재용은 회개할 수 없을 것이다. 이재용이 맨 정신으로 참회 이상의 회개를 할 수 없을 것이다.

 

회개는 이전과 다른 삶으로 자기를 변혁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공간도 도구도 없이, 보이지 않는 성령을 따라 회개를 선포할 때, 자기를 변혁하고 예수를 따르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마가복음 1장 15절부터 20절이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가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예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는 것을 보시고,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를 일꾼들과 함께 배에 남겨 두고, 곧 예수를 따라갔다.

 

‘고기를 낚는 어부’였던 시몬과 안드레 형제가 회개하여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다. 시몬과 안드레가 삶의 항로를 바꾼 것이다. 또 다른 형제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 배에서 고기를 잡다가 다 포기하고 예수를 따른다. 아버지에겐 배가 있었고, 일꾼도 딸려 있었는데, 살뜰한 유산을 포기하고 삶의 항로를 바꾼다. 이래야 회개다. 이재용에겐 야고보와 요한이 물려받을 재산보다 훨씬 많은 유산이 있어서일까. 그는 회개하지 않고, 자신이 86억을 횡령한 회사에서 다시 일해 버린다.

 

멋지게 회개한 사람이 있다. 상고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가 됐다가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해 돈 잘 버는 세무회계전문 변호사가 있었다. 나름 성공해 시간을 내서 요트를 타도 될 만큼 잘 먹고 잘 살던 흙수저 출신의 변호사가 있었다. 그렇게 살면, 특별한 어려움 없이 넉넉하게 인생을 경영하는 게 보장된 거나 다름없었는데,

 

부림 사건을 맡게 된다. 부림 사건은 전두환 신군부가 조작한 사건이었다. 전두환 신군부는 1981년 부산 지역에서 책 읽고 공부하던 학생과 직장인 22명을 국가 전복을 꾀했다며 구속하고 고문했다. 영장도 발부받지 않고 이유 없이 끌고 간 학생들을 고문해야 했던 건 강제로 차지한 권력에 정통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뢰한 권력에 맞서 변호해줄 인권 변호사들이 당시 적극적으로 변론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부득이 하게, 돈 잘 벌던 세무회계전문변호사가 어쩔 수 없이 학생들을 변호하게 된다. 그 변호사 이름이 이젠 유명하다. 노무현이다. 부림 사건 변호 후, 노무현은 돈 잘 버는 세무 회계전문변호사에서 억울한 사람 지키는 인권변호사로 부득이 삶의 항로를 바꾼다. 내몰리듯 삶의 항로를 변경하고 자기 삶을 변혁한 것이다. 회개한 것이다. 돈이 아니라 사람을 얻는 사람으로, ‘사람 낚는 어부’같은 사람으로 회개한다.

 

예수를 만난 시몬과 안드레 형제가 고기를 낚는 어부였다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 게 회개였고, 야고보와 요한이 아버지의 유산을 포기하고 예수를 따라나선 게 회개였다. 부림 사건을 통해 학생들을 만난 세무 변호사 노무현이 인권변호사가 된 것도 회개였다.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가 오신다. 노무현은 하나님나라를 ‘사람 사는 세상’으로 번안했고, 사람 사는 세상이라 번안한 하나님나라를 깃발 삼아 대통령이 된다. 그리고 죽었다.

 

세무회계전문 변호사가 인권 변호사가 되는 것 같은 자기 변혁은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변화는 아니다. 아니 감당할 수 없다. 성령께서 예수를 광야로 내모셨던 것처럼 어쩔 수 없이, 부득이 하게 되는 게 회개다. 회개하고자 한다면 성령께서 오셔야 한다. 성령께서 사건을 혹은 사람을 만나게 하실 때, 부득이하게 어쩔 수 없이 회개에 이를 수 있다.

 

회개는 반성만 하는 건 아니다. 뉘우치는 것만이 회개는 아니다. 참회(懺悔)하는 것과 회개는 다르다.

 

회개(悔改)는 뉘우치고(悔) 바꾸는(改) 것이다. “회개하라”를 "너희 삶을 변혁하라 Ändert euer Leben"로 번역하기도 한다. 의역하면 ‘삶의 항로를 바꾸라’는 뜻이 될 수 있다. 회개는 삶을 변혁하는 것이거나, 사람의 항로를 바꾸는 것이다.

 

요한과 예수께서 활동하던 때, 종교지도자들은 사람들이 회개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신다는 느낌을 갖게 하면 그만이었다. 성전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제물을 사고 바치면서 성전의 수익이 보장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 때문에 사람들이 회개를 했다. 제물도 바치지 않고 돈도 내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성전에서 일하는 종교지도자들의 수익이 줄어들고 경제적 토대가 흔들리는 막기 위해 종교지도자들은 당시 유대의 최고 권력자 헤롯과 유착해 세례자 요한을 감옥에 처넣었다. 에돔 족속이라 정통성 없었던 왕 헤롯은 종교지도자들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권력과 종교의 유착은 오래된 악이다. 요샌 자본과 종교의 유착이 심각하다. 회개를 종교와 도덕의 차원에 묶어두려는 건 권력과 자본과 유착된 종교의 오랜 습성이다.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이다. 30년 전 1991년 8월 14일에 김학순 할머니께서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세상에 밝힌 날이다. 전쟁 중 일본군의 성노예였음을 세상에 밝히면서 평화를 얘기했고, 여성을 얘기했고, 역사를 얘기했다. 1991년 8월 14일 이전까지 김학순 할머니는 전쟁 피해자였지만, 이후 할머니는 운동가로 삶의 항로를 바꾸셨다. 이 또한 회개다. 악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자신을 피동적인 피해자에서 능동적인 운동가로 변화시켰다. 위키피디아는 김학순 할머니를 ‘여성운동가’로 소개한다.

 

성령은 예배당 안에 갇혀 계시지 않는다. 2천 년 전 요단강과 광야 와 갈릴리에서 활동하셨던 성령께서, 1981년 부산 학생들이 고문당하던 현장에, 1991년 위안부 할머니 김학순 여성운동가가 눈물 훔치는 거리에서 여전히 운행하신다.

 

우리 모두에게 성령의 세례를 베푸소서.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