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쥔 게 없어도 펼 순 있습니다_막1:29~35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1.09.12|조회수42 목록 댓글 0

아들이 어머니에게 유언을 말합니다. 어머니가 아들의 유언을 듣습니다. “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주십시오.” 아들 전태일이 어머니 이소선에게 유언을 말하고, 어머니 이소선이 아들 전태일의 유언을 듣습니다. “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주십시오.”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경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엔 쉬게 하라”를 외치며 전태일은 숯이 되었습니다. 숯이 된 전태일의 마지막 말은 “배가 고프다”였습니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은 이후 40년 동안 아들의 유언을 이루기 위해 노동자자의 어머니로 살았습니다.

 

4년 전 1966년엔 이소선과 전태일 가족이 살던 판잣집에 불이 났었고, 충격으로 이소선은 눈이 멀었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쌀집 주인이 권해 교회에 가게 됐는데, 기도하던 중 시력을 되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온 가족이 그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1970년 전태일이 분신할 당시, 이소선은 권사였고 전태일은 주일학교 교사였습니다. 아들 전태일의 분신 후 이소선은 아들의 유언을 이루기 위해, 노동자를 위한 활동가로 살았습니다. 집회하는 현장이나 농성장에 아픈 사람들이 있어 이소선이 기도해주면, 병이 낫곤 했습니다. 기도하며 시력을 찾았던 이소선에겐 다른 이들의 병도 낫게 하는 치유의 은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열병에 걸린 시몬의 장모를 만났습니다.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갔다고 합니다. 치유의 시작은 만남이었습니다. 그리고, 손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만나고 손을 잡을 때 치유가 일어납니다. 또 만나고 손을 잡는 것 자체가 치유입니다. 병에 걸린 사람은 격리되어야 했거든요. 만나고 손을 잡아 격리를 무력화시킬 때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격리가 풀리는 그 자체가 이미 치유였습니다.

 

전태일은 자신의 버스비로 저녁 식사를 못한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걸어서 퇴근했다고 합니다. 전태일은 겨울에 양말 없이 주일 학교에 온 학생에게 자신의 양말을 벗어주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전태일은 한자가 섞인 근로기준법을 읽기 어려워 대학생 친구가 한명만 있으면 좋겠다고 일기에 썼습니다. 전태일은 끼니를 때우지 못한 여공들과 양말 없는 학생의 친구였지만, 근로기준법 속 한자의 뜻을 알려줄 친구를 갖지 못했습니다. 전태일은 대학생 친구를 만나지 못했지만, 그가 만난 가난한 여공들과 학생의 친구였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지 못한 여공들에게 풀빵은 성만찬이었고, 겨울에 양말 없는 학생에게 주일학교 선생님의 큰 양말은 명품이었겠습니다. 전태일은 자신의 버스비로 성만찬을 차리고, 자신의 양말이 명품되게 했습니다. 전태일은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셨던 예수의 말씀을 이해하고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마14:16) 그러다가 자신의 몸을 번제로 내놓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최저임금을 받고, 휴게시간을 보장 받고, 일요일엔 쉬고, 산재보험으로 치료받게 하려고, 자신의 몸을 번제로 내놓았던 것입니다.

 

어머니 이소선은 아들 전태일의 유언을 실현하기 위해 삽니다. 11월 18일 장례를 마치고 11월 27일 전국연합노조 청계피복지부를 결성합니다. 이소선은 노동운동을 시작한 후 노동교실에서 노동자를 교육하면서 유신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도 함께 했습니다.

 

1975년 박정희 정권이 인혁당 사건을 조작하고 관련자들을 서둘러 사형시킨 뒤 화장시키려 하자 그 앞을 막아섰고, 헌옷을 팔아 생계를 꾸려 노동운동가나 민주화 운동가들을 숨겨주고 먹이고 재웠습니다. 수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이소선의 도움을 받았으며 그로인해 훗날 대통령이 된 김대중부터 평화시장의 어린 시다까지 이소선을 어머니라 불렀습니다.

 

어머니 이소선 자신도 실형을 받으며 많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함께 활동한 아들 전태삼과 함께 감옥에 들어가면 며느리 윤매실이 가족을 돌봐야 했는데, 그 때 드렸던 이소선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 가혹한 시련을 주십니까? 이 시련 당신의 뜻이라 해도 우리에게는 너무도 힘들고 버겁나이다. 우리는 남을 미워하거나 남에게 나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한테 주어진 권리를 찾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몸부림 치고 우리의 생명과 같은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 것 밖에 없습니다. 지금 차가운 감방에서 외롭게 떨고 있는 청계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너무나 순수하고 선한 당신의 어린 양입니다. 이 어린 양을 살피시어 이들이 하루 속히 이 감옥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우리들이 있는 이 감옥에 임하셔서 한사람도 건강 헤치지 않게 살피소서. 밖에서 남편도 없이 어린 자식들 키우면서 고생하는 우리 여진이 어미 특별히 보살펴 주셔서 지치거나 낙심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이렇게 기도하며 40년 동안 아들 전태일의 유언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 손을 잡고 일으키기 위해 살았던 어머니 이소선은 2011년 9월 3일 귀천하셨습니다. 병자들을 만나고 그 손을 잡아 일으키고 또 따로 떨어져 기도하셨던 예수를 믿어, 이소선이 노동자들을 만나고 그 손을 잡아주며 함께 감옥에 갇히고, 갇힌 곳에서 기도하면서 아들 전태일의 유언을 이루기 위해 40년을 살다 귀천하신지 10년이 지났습니다. 민들레교회도 모이기 시작한지 10년을 채워갑니다. 사람들을 만났고 손을 맞잡기도 했고, 또 헤어지기도 했고, 또 만나며 10년이 차갑니다.

 

여전히 만나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언젠가 헤어지더라도 그 손을 잡아야할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만남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손이 필요합니다. 노동자와 경영자가 손을 함께 맞잡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손을 함께 맞잡고, 이주민과 선주민이 손을 함께 맞잡을 때 열병이 낫습니다. 함께 맞잡는 것 자체가 이미 치유입니다.

 

손에 쥔 게 없어도, 손을 펼 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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