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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세상의 중심_행12:1~12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1.12.18|조회수34 목록 댓글 0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 때에 ‘천하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행11:28;12:25) 경제적으로 위기입니다. 로마 황제는 제국 변방의 흉년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세금을 걷지 못할까 염려할 뿐 흉년으로 배고픈 식민지 사람들 때문에 염려하진 않습니다.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의 친구 ‘헤롯 아그립바’가 유대의 왕입니다. 헤롯 아그립바는 에돔족 출신인 헤롯대왕의 손자입니다. 헤롯 아그립바는 글라우디오가 황제가 되도록 공을 세운 황실의 공신이었습니다. 로마 황제가 좋아하겠지만, 유대인들이 좋아할만한 사람은 아닙니다.

 

 

헤롯 아그립바는 유대 백성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예수님의 직계 제자인 야고보를 처형했고,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를 투옥시켰습니다.(행12:2~4) 정통성 없는 권력은 희생양을 찾아 잔인하게 다룹니다. 경제적으로는 흉년이라 먹고 사는 것도 힘든데, 정치적으로는 박해를 받고 있어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릅니다. 이렇게도 죽고 저렇게도 죽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렇듯 암울한 때에 헤롯 아그립바에 대한 백성들의 지지율이 오히려 상승합니다. 신격화되기까지 합니다.(행12:22) 대중은 글라우디오 황제에게 경의를 표하려고 헤롯 아그립바가 기획한 경기에 환호하며, 헤롯 아그립바를 신이라 외칩니다. 죽을 것 같은 때에 대중은 왕이 기획한 서커스에 환호합니다.

 

소망이 없는 것은 암울한 정치·경제적인 상황 때문이라기보다, 스포츠와 연예인과 드라마와 심지어 종교에 중독되어있는 우리들 때문입니다. 흉년과 박해라는 거대한 위기 때문이 아니라, 위기를 위기로 인지하지 못하는 우리들 때문에 소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안디옥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흉년으로 배고픈 사람들을 구제합니다.(행11:29) 글라우디오의 황궁이 아니라, 안디옥 교회 예배당이 ‘큰 흉년’을 해결하기 위해 나섭니다.

 

우리 속담에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고 하지요, 맞습니다. 나라는 가난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가난을 해결한 유일한 나라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전위대로서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내 것’을 떼어주는 사람들입니다. 대중을 보면 소망이 없지만, 대중 속 교회를 보면 소망이 있습니다.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정치적으로도 암울한 시절, ‘이와 같은 때에’ 교회 지도자마저 죽거나 갇혀있는 때에도 소망이 있습니다.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행12:12)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소망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어, 흉년의 위기를 부조하며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행11:29;12:25)

 

기도하는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는 이름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 외에는 함께 기도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름 없는 사람들의 기도로 감옥 문이 열립니다.

 

헤롯 아그립바의 압제 너머에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재판장이신 하늘법정에서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배심원이라, 베드로는 무죄석방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헤롯의 판결을 뒤집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어, 헤롯 아그립바의 ‘신의 소리’같은 말이 그치고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였습니다.(행12:21~24)

 

기도하는 사람들, 즉 교회가 세상의 중심입니다. 기도하는 교회에서 세상을 살리는 샘물이 솟습니다. 경제적 위기와 정치적 위기와 교회의 위기가 한꺼번에 닥쳐도,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나쁜 정치가 세상을 위기에 빠뜨리지 못합니다. 경제 위기가 세상을 굶주리게 하지 못합니다. 세상이 위기에 처했다면, 세상이 굶주리고 있다면 기도하는 교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모양은 있어도 자기 욕심을 따라 기도하기 때문에 세상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덮여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기도하는 교회가 있다면, 경제적으로 곤핍하고 정치적으로 답답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은 ‘집’이었습니다.(행12:12) 황제 글라우디오가 거처하는 황궁은 예루살렘의 흉년에 대처하지 못합니다. 지지율이 높을 뿐 왕은 무능합니다.(행12:3,22) ‘큰 흉년’같은 위기를 극복한 것은 ‘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도였습니다. 집에 모인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어전회의를 거듭하며, 하나님의 개입을 요청할 때에 문제는 해결됩니다. 기도하는 ‘집’이 세상의 중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성공은 황궁의 들러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락방에서 세상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2장을 도화지에 그린다면, 그 중심에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있는 ‘다락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림 속 주인공은 신의 목소리를 가진 헤롯 아그립바가 아니라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도적질하는 ‘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하는 ‘집’이 세상을 다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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