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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_눅2:1~7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1.12.19|조회수30 목록 댓글 0

옥타비아누스(BC63-AD14)가 로마의 내전을 끝내고 지중해 권력을 독점합니다. 내전을 끝내고 평화를 가져다준 옥타비아누스에게 로마 원로원은 존엄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붙여줍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지중해를 장악하고 ‘로마의 평화’를 열었을 때, 예수께서 태어나십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호적을 명령했고, 사람들이 자기 고향에서 호적을 등록하던 무렵 예수께서 태어나셨는데, 방이 없습니다. 로마는 평화로웠지만, 목수의 아들에겐 방이 없습니다.

 

 

로마 황제가 호적을 명령해 인구조사를 한 건 세금을 걷기 위해서입니다. 유대 사람들이 로마 황제에게 바쳐야할 총 세액을 환산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였겠습니다. 사람으로 등록되는 이유는 세금을 내야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세금을 낸다는 건 공권력에게 돈을 빼앗기는 것이었습니다. 공권력과 해적은 규모가 다를 뿐입니다. 공권력보다 규모가 작으면 해적이었고, 해적보다 규모가 크면 공권력이었습니다.

 

가까이 조선 시대엔 양민들만 세금을 냈습니다. 양반 귀족들은 세금을 내지 않았습니다. 조선 시대에 세금을 내지 않는 게 특권층의 권리였고, 세금을 내는 건 억울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양민들은 심지어 죽은 사람을 대신해서 세금을 내야했고, 세금이 무거워 몰래 마을을 떠난 이웃을 대신해서 세금을 내야했습니다. 심지어 산에 있는 소나무까지 세금을 내야하는 이유였습니다.

 

세금의 항목도 다양해서 특산물을 바치기도 했는데, 지역 특산물과 전혀 상관없는 것도 있어 웃돈을 내 특산물을 사다가 세금을 내기도 했습니다. 서양이나, 조선이나, 세금은 악한 것이었습니다. 세금은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낼 필요가 없는 것이거나 죽을 것만큼 가혹한 것이어서, 조세저항은 DNA가 돼버렸습니다. 세금은 빼앗거나 빼앗기는 것, 세금을 내지 않는 게 특권이요 세금을 내는 건 가혹한 벌이었습니다. 조세는 피해야하는 것이거나 악한 것이어서, 조세 저항은 인류의 오래된 DNA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선 세금을 내라 하십니다.(마22:17~21)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 하십니다. 바울도 세금을 내라 합니다. 「조세를 바쳐야 할 이에게는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바쳐야 할 이에게는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해야 할 이는 두려워하고, 존경해야 할 이는 존경하십시오.」(롬13:7)

 

당시 공권력과 성전은 세금을 받아 선한 일을 하거나 제사 비용으로 써야했습니다. 이런 본래 용처대로 세금을 사용한다면, 적정한 수준의 세금을 내는 건 분명 하나님의 뜻이라는 게, 예수와 바울의 입장입니다.

 

옛날과 다른 세상이 되었습니다. 제국이나 왕국이 아니라, 공화국을 삽니다. 선거를 통해 권력기관을 세웁니다. 국민과 국가는 계약을 맺어, 국민이 세금을 주면 국가가 국민을 위해 일합니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일하기 위해 필요한 게 세금입니다. 2천 년 전에도 예수와 바울이 세금을 내도록 했다면, 우시 사는 시대엔 말할 게 없습니다. 세금을 내야 합니다. 복지가 국가의 중요한 의무가 된 시대엔 세금을 많이 내야 합니다. 산을 깎아 골짜기를 메우는 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소득이 많을수록 세금을 많이 내서 국가 기관을 통해 소득이 적거나 없는 사람들도 고루 살도록 하는 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조선 시대엔 대동법이라는 세법이 있었습니다. 세금을 사람에게 매기지 않고 토지에 매기는 것입니다. 토지를 사유한 이가 세금을 내는 것입니다. 특산물이 아니라 쌀로 내는 방식으로 효율성도 높인 조세 정책이 대동법이었습니다. 정책의 이름 대동(大同)은 참 아름다운 말입니다. 크게 하나가 된다는 뜻이 참 좋습니다. 이름대로 된다면 토지를 사유한 자나 토지가 없는 자나 크게 하나가 되는 법입니다.

 

집을 100채 이상 사유한 사람들에게, 재벌들이 갖고 있는 기업 활동과 관계없는 토지에 대해, 세금을 많이 매겨 기본소득으로 활용하자는 정책은 성서의 희년 사상과 가깝습니다.(레25장) 실제 이 정책을 만드는 데에 기독인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세금을 빼앗거나 수탈하는 방식이 아니라, 산을 깎아 골짜기를 메우는 방식으로 정책을 편다면 온 사람들이 크게 하나가 되겠습니다.

 

예수께서 땅에 오실 때 방이 없었습니다. 누우면 등허리가 따뜻해지는 집에서 온 세상 사람들이 살아야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10년 전 2011년 성탄절에 민들레교회가 처음 모일 때, 22평 임대아파트 거실에서 모였습니다. 충분히 따뜻한 곳에서 교회가 모였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예수의 몸으로서 교회가 만나는 사람들이 누우면 등허리가 따뜻한 집이 있으면 합니다. 교회가 내줄만한 빈 방 있어 거리에 있는 예수를 위해 내줄 수 있으면 합니다. 길에서 자는 사람들, 천막 치고 농성하는 사람들, 쪽방에 사는 사람들, 여러 사연으로 위기를 맞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습니다.

 

빈 방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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