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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_ 행2:1~24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2.01.23|조회수34 목록 댓글 0

아이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엄마는, 지금 상황이 끝나고, 아이와 다시 만나기를 희망합니다. 끊이지 않는 송사에 시달리는 가족은, 송사 없는 일상을 희망합니다. 불치병이나 난치병으로 병원 생활하는 사람들은, 치료되고 회복되어 병원 밖에서 살기를 희망합니다. 오래되고 묵은 마음의 상처를 떠안고 산다면, 이해되고 용서하며 아무렇지 않게 웃게 되길 희망합니다. 공포 같은 실직이나 구직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길 희망합니다. 대출을 받아 사업을 하고 있다면, 적어도 임차비와 이자가 고민되지 않을 만큼 수익이 발생하길 희망합니다. 부정과 폭력과 불평등이 넘치는 조직을 개혁하려는 사람은 정의와 자유와 평등이 속히 실현되질 희망합니다.

 

희망을 갖는 건 지금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희망을 갖는 건 하루하루가 막막하기 때문입니다. 희망을 갖는 건 고통과 고민이 내 몸과 맘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희망이라도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가 마지막 날이었으면 하는 사람들, 이별과 괴로움과 고통과 고민과 아픔이 끝나는 날,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으면 하는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하루하루가 반복되고 길어지면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으면 하는 희망마저 끌어올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희망하지만 희망마저 솟지 않는 시간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위로의 말이 쓸 데 없습니다. 처지가 다르면 공감할 수 없고, 처지가 다르면 고통을 나눌 수 없으니까요. 고통은 각자의 몫이며 공감은 아주 조금만 가능합니다. 희망 고문이라는 말이 유통되는 건, 당사자 아닌 사람이 위로한답시고 함부로 희망을 말하지 말라는 뜻이겠습니다. 힘들고 막막하고 고통스럽고 고민이 그치지 않는 사람에게 어설프게 희망을 말하는 건, 고문처럼 잔인한 짓이 될 수 있습니다.

 

두세 걸음 뒤에서 기도합니다. 발과 손은 당사자를 따라잡지 못해 겨우 눈이 따라갈 뿐입니다. 적어도 눈이나마 같은 방향을 향한 채 뒤에서 기도합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하루를 열어주시길 기도합니다. 해는 변해서 어둠이 되고 달은 변해서 피가 되버린 날들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오늘이 마지막 날이길, 그리고 새 날이 시작되길 기도합니다.(행2:17,20)

 

구약성경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으로 가득했던 땅 위에서 시작합니다.(창1:2) 신약성경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지중해 세계를 통제하던 땅 위에서 시작합니다.(눅2:1) 이런 땅에 사는 사람들이 희망을 품는 건 어렵습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땅에서 희망을 말하는 것,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지배하는 땅에서 희망을 말하는 것, 희망 고문일 수 있습니다. 이런 땅에서 희망을 말하는 사람은 고문 기술자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괜찮다, 괜찮다 하며 희망을 말하는 종교인은 거짓 선지자일 수 있습니다.(렘6:14)

 

두세 걸음 뒤에서 기도합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 속으로 ‘빛’으로 새로운 하루를 열어 주소서.(창1:3)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패권을 차지한 땅으로 ‘예수’께서 오소서.(눅2:11) 오늘이 괴로움과 고통이 끝나는 “마지막 날” 되게 하소서. “마지막 날”이 오길, 두세 걸음 뒤에서 기도합니다.

 

“마지막 날”이 온다면, “그 날”은 “주님의 크고 영화로운 날”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은 새날입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날입니다. 마지막 날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균열이 오는 날입니다. 마지막 날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땅에서 먼지 뭉치 같던 사람이 생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날입니다. 마지막 날은 하나님의 생기를 호흡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며 뭇 생명들의 이름을 부르며 말하기 시작하는 날입니다.(창2:6~7;행2:17~18)

 

마지막 날은 무서운 날이 아닙니다. 마지막 날은 어둡던 해가 노란빛을 되찾고, 빨갛던 달이 하얗게 환해지는 날입니다. 해가 어두워도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달이 핏빛이어도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마지막 날이 옵니다. 고문받는 것 같은 하루하루를 견뎌, 죽지 않고 살아내길 부탁합니다. 죽지 않고 더 살아보길 부탁합니다.

 

교회는 옛날 예수처럼 가난하고 무력합니다.(행2:2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서 살리셨습니다. 그가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행2:24)

 

글/ 민들레교회 김영준 목사

 

엘 그레코, Pentecost오순절, 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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