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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사랑,겸손_창22:1~14;미6:6~8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2.02.13|조회수50 목록 댓글 0

하나님이 아닌데, 하나님 대접 받는 신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짜 신들을 하나님 대접하며 자기 아들을 제물로 바치기도 합니다. 인신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레20:2~4)

 

아브라함에겐 백 살에 낳은 아들 이삭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고민합니다. 자신의 믿음이 잡신을 섬기는 자들의 믿음보다 못한 것만 같았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창22:2)

 

아브라함은 가짜 신들도 받는 대접을 하나님이 받지 못하실 이유가 없다 생각했을까요. 믿음의 조상답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이 다음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나귀의 등에 안장을 얹었다. 그는 두 종과 아들 이삭에게도 길을 떠날 준비를 시켰다. 번제에 쓸 장작을 다 쪼개어 가지고서,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그 곳으로 길을 떠났다. 사흘 만에 아브라함은 고개를 들어서, 멀리 그 곳을 바라볼 수 있었다.」(창22:3~4)

 

카라바지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 Sacrifice of Issac, 1603, 104*135cm, 우피치미술관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인정받고 싶었을까요. 듣고 싶은 칭찬이 있었을까요.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창22:12)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풀기 어려운 시험 문제(a test)를 출제하셨고, 아브라함은 나름대로 성실하게 문제를 풀었습니다.(창22:1) 그러나 아브라함이 실수한 게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 문제에만 집중했습니다. 게다가 인신 제사를 받는 잡신(雜神)들이 제공한 모의고사를 하나님께서 출제하신 거라 오해합니다. 아브라함은 가짜 전문가가 제공하는 왜곡된 출제 경향에 미혹되어, 진짜 출제자이신 하나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겁니다.

 

하나님은 인신 제물을 받는 잡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것을 빼앗아야 할 만큼 가난하시지 않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바치는 가장 좋고 귀한 것이라도 하나님에게 필요한 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시험 문제를 풀고서 길에서 검토하는 사흘 동안 자신이 제출한 답안에 뭔가 오류가 있음을 알아챕니다. 번제 할 어린 양은 어디 있느냐는 아들 이삭의 질문에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22:8)

 

아브라함이 아들을 번제로 드리러 가는 사흘 길에 비로소 시험 문제의 출제자가 하나님이시라는 것, 하나님은 몰렉 같은 잡신이 아니라는 것을 아브라함은 길에서 깨달았겠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깨달음은 후대에 선지자 ‘미가’와 하나님의 대화에서 다시 확인됩니다.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높으신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번제물로 바칠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가면 됩니까? 수천 마리의 양이나, 수만의 강 줄기를 채울 올리브 기름을 드리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내 허물을 벗겨 주시기를 빌면서, 내 맏아들이라도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빌면서, 이 몸의 열매를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6:6~8)

 

시험이 있습니다. 치명적인 시험 문제가 있습니다. 감당할만한 시험만 주시지만,(고전10:13) 그건 시험 기간이 지나고 나서 고백하는 것이지, 맞닥뜨리는 당시엔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들입니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시험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번제 삼기 위해 걸어야 하는 사흘 길은 참으로 고통이었겠지요. 사라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엿새였습니다. 가는 길이 사흘이었으면 오는 길도 사흘이었을 테니까요. 엄마이자 아내 사라는 직관적으로 평소와 다른 아브라함의 표정을 읽지 않았을까요. 직관을 따라 행여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아들을 생각하며 보내야 했던 엿새는 사라의 생명 가닥이 한 움큼씩 뽑혀 나가는 시간이었겠습니다. 그 엿새를 겪고 난 사라의 몸이 무너져버립니다.

 

「그는 가나안 땅 기럇아르바 곧 헤브론에서 눈을 감았다. 아브라함이 가서, 사라를 생각하면서, 곡을 하며 울었다.」(창23:2)

 

시험은 있습니다. 생명의 기운이 한 움큼씩 뽑힐 만큼 시험 문제는 치명적이기도 합니다. 이럴 땐 문제를 잘 푼다 한들 득이 될 게 없습니다. 시험이 어려울수록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건 출제자가 누구냐 하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시험 문제를 푸는 중에 하나님이 출제자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출제하신 시험 문제의 답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출제하시고 하나님이 문제의 답을 알려주십니다.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고 살펴보니, 수풀 속에 숫양 한 마리가 있는데, 그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다. 가서 그 숫양을 잡아다가, 아들 대신에 그것으로 번제를 드렸다.」(창22:13)

 

하나님께서 출제하시는 시험은 낙심케 하고 실패를 경험케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출제하실 때 답안도 함께 주십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답을 알아가는 시험입니다. 출제자인 하나님에게 집중하면 깨달음을 얻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으므로, 아브라함이 그 곳 이름을 여호와이레라고 하였다.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주님의 산에서 준비될 것이다'는 말을 한다.」(창22:14)

 

하나님이 준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다는 아브라함의 깨달음은 출제자이신 ‘여호와 이레’, 즉 준비하시는 하나님에게 집중했기 때문에 얻은 답이었습니다.(창22:14) 시험 문제의 출제자이신 하나님이 문제의 답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것을 필요로 하는 잡신이 아니라, 친히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제물을 바라시는 게 아니라 동행을 바라십니다. 어설프나마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아브라함보다 조금 더 나은 방식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고자 합니다. 선지자 미가에게 하신 말씀을 다시 듣습니다.

 

「너 사람아, ...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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