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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얼굴_행6,7장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2.02.20|조회수85 목록 댓글 0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레지던트가 교수에게 1년 휴가를 받으면 뭐하고 싶냐고 묻습니다. 아이가 가끔 저에게 아빠는 마음대로 쓸 수 있는 10억이 있으면 뭐 할 거냐고 묻습니다. 의사가 될 레지던트에게는 돈을 쓸 시간이 없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아이에게는 시간을 쓸 돈이 없는 걸까요. 레지던트나 십대 청소년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누구나 시간과 돈이 부족합니다. 둘 다 부족하지만, 시간과 돈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시간을 택하겠습니다. 시간으로 돈을 벌 수 있지만, 돈으로 시간을 살 순 없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서민들에겐 돈에 관한 고민이 떠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은 대게 돈에 관한 것이고, 돈 많이 버는 부자가 되는 게 바램입니다. 김목사도 여러분들이 부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대출 없이 넉넉하게 노후 걱정 없이 교육비 걱정없이 잘 살면 좋겠는 게 김목사의 기도 제목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김목사의 소원과 조금 차이가 납니다. 신명기 15장 4절입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우리 가운데 가난한 자가 없는 것입니다. 누군가 부자가 되는 게 아니라, 누구도 가난하지 않은 게 복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교회에선 과부들을 위해 식사를 나누는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교회의 연보를 관리하고, 과부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 모두 히브리인 중심의 사도들이었습니다. 히브리인들 중심으로 교회 사업이 진행되다 보니, 그리스인 과부들이 소외된 겁니다. 사도들도 자기 아는 사람들에게 더 후했을까요. 잘 모르는 사람들을 놓쳤을까요. 고의였을지 부주의였을지 확실치 않지만 사도들 중심으로 진행된 구제 사업의 결과가 공정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지만,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릅니다. 고의가 아니라면 구조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과부들의 식사를 돌보는 일을 맡기기 위해 일곱 집사를 따로 세웁니다. 따로 세운 일곱 집사는 모두 그리스 세계를 배경으로 한 사람들입니다. 히브리파 사람들이 주도하다가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그리스파 사람들에게 살림살이를 맡깁니다. 교회 재정 집행 권한을 그리스파 사람들에게 완전히 넘깁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문제가 생깁니다.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가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사도들이 히브리파였기에 그리스파 과부들을 더 잘 살피기 위해 재정에서 손을 뗍니다. 실수가 있었지만, 방책을 찾아냅니다. 사람 사이엔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은 함께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렇게 일을 나누어 「너희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일곱 집사를 통해 교회 내에 여전히 유효합니다. 사도들과 일곱 집사 중심으로 당시 성전 중심의 종교인들에겐 없던 변혁적 영성이 교회에 가득했습니다.

 

일곱 집사 중 스데반을 성전주의자들이 의회에 고발합니다. 당시 의회는 기소권과 재판관을 독점하는 막강한 권력 기관입니다. 검찰청과 법원을 합쳐놓은 기관이 당시 의회입니다. 예나제나 법을 다루는 이들이 무고한 사람을 만듭니다. 법이 죄를 창조합니다. 스데반이 뒤집어쓴 죄는 모세를 무시하고, 율법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론 성전을 능멸했다는 것입니다. 기소문이 엉터리입니다. 모세는 성전을 짓지도 않았고, 성전에서 제사드리라고 강요하지도 않았으니까요. 모세는 40년간 광야에 친 성막에서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조력했지, 성전이라는 정해진 장소를 특별히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모세와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났던 성막은 길 위에 있었고, 행진하며 이동하는 공간입니다. 모세의 성막 주변에 모였던 사람들을, 그래서, 스데반은 ‘광야교회’라 부릅니다(행7:38).

 

 

건물로서 성전은 무너졌습니다. 성령께서 거하시는 사람의 몸으로 성전은 재건되었습니다(고전3:16). 스데반이 성전입니다. 스데반이 속한 교회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성전입니다. 성령께서 거하시는 사람 성전이 모여 교회입니다. 특정 건물을 성전이라 칭한다면, 옛날 타락한 유대교의 악습을 따르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피고석에 앉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죄가 없습니다. 재판을 받는 스데반을 보며 누구도 모세를 능멸하고 율법을 무시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공의회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모두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 같았다.(행6:15)」

 

교회를 향한 성전주의자들의 위협은, 사실상 없습니다. 교회가 마주한 가장 강력한 세력은 자본입니다. 자본은 화려하고 거대합니다. 거대하고 화려한 건 종교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자본은 그 자체가 종교입니다. 계좌에 돈이 있으면 평안하고 잔고가 줄어들면 불안합니다. 자본은 서민들을 피고석에 앉혀 무섭게 위협합니다. 피고석에 앉혀졌지만, 혹은 스스로 앉았지만, 가난한 우리에겐 죄가 없습니다. 도리어 복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눅6:20)」

 

우리 가난한 교회를 통해 가난한 자를 없게 하십니다. 우리 가난한 교회에 천사의 얼굴을 씌워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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