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지배를 받던 유대인들 중,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윗 같은 위대한 메시아가 로마로부터 유대 땅을 회복해주길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기다렸던 건 아닙니다. ‘로마의 평화’가 그저 유지되길 원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메시아가 등장할 경우, 로마 군대가 유대 땅으로 깊숙이 들어올 것이고, 메시아의 군대와 로마의 군대가 충돌한다면 희생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메시아가 나타나 로마로부터 유대를 구원해주길 원하는 사람과 메시아가 등장해 유혈 사태가 벌어지는 걸 원치 않는 사람들이 칡과 등나무처럼 섞여 있었던 게 2천 년 전 유대의 상황이었습니다. 큰 전쟁을 치르지 않고, 로마의 그늘 아래에서 현상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메시아라고 믿는 사람들이 등장한 겁니다. 심지어 예수는 살아있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죽은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집단이 예루살렘에서도 적지 않은 소동을 일으키고 명절 때 각처에서 모인 사람들 마음 속에 파동을 일으키는 게 괴이쩍습니다.
예수를 메시아라 믿는 이 이상하고 괴이쩍은 사람들이 제국 전역으로 누룩같이 퍼지게 된다면(마13:33), 로마 군대가 이 예수쟁이들을 뿌리째 뽑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대규모 군대를 보낼 것입니다. 독수리 문장이 새겨진 깃발을 들고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게 된다면, 다시금 돼지 피가 성전에 뿌려지는 모독을 당할지 모릅니다. 다니엘은 예언 형식으로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의 군대가 성전을 더럽히고, 제사를 금지했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서 11장 31절입니다. “그의 군대가 성전의 요새 지역을 더럽힐 것이며, 날마다 드리는 제사를 없애고, 흉측한 파괴자의 우상을 그곳에 세울 것이다.” 메시아를 중심으로 저항 세력이 결집하면, 예루살렘 성전과 유대 땅에 다시 피가 흐를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헤롯 왕은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고 처형하기로 한 것입니다. 지도자 격인 야고보를 잡아들여 즉결 처형하는 것으로, 로마 군대의 개입을 차단한 것입니다. 로마 군대가 팔레스타인으로 들어오는 걸 바라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기뻐”했습니다(행12:2). 야고보와 함께 교회의 중추인 베드로마저 체포해 처형한다면, 예루살렘에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한 소요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헤롯은 판단했겠습니다. 사도행전 12장 4절입니다. “그는 베드로도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네 명으로 짠 경비병 네 패에게 맡겨서 지키게 하였다. 유월절이 지나면, 백성들 앞에 그를 끌어낼 속셈이었다.” 헤롯은 이렇게 로마에 대한 저항 세력을 제압해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관리한 것입니다.
또, 헤롯은 외교에도 능했습니다. 두로와 시돈을 굴복시켜 국경 근처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자잘한 분쟁의 불씨를 없애버렸습니다(행12:20). 국내에 로마 군대가 들어오는 환경을 만들지 않고, 국경의 분쟁 가능성을 없애버린 헤롯은 정치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유능한 왕입니다. 사람들이 헤롯이야말로 난세를 관리할 위대한 왕이라 칭송할만합니다헤롯의 판단과 실행력이 신의 것이라고 찬송할만합니다(행12:22).
그러나, 이런 헤롯의 방식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소수 종파의 지도자와 사람들을 희생시켜서 확보된 안정을 하나님께선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지속되는 나라가 지옥입니다. 베드로 묵시록 10장에 지옥에 관한 묘사가 나옵니다.
「살인자들과 그들과 작당한 이들이 사악한 파충류들로 가득한 좁은 곳에 던져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 짐승들에게 두들겨 맞고 있었는데, 그런 벌을 받으면서 그곳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벌레들이 어두운 그림처럼 그들을 뒤덮고 있었다. 살해당한 이들의 영혼들이 거기 서서 그 살인자들이 벌 받는 것을 지켜보면서 하나님, 당신의 심판은 의롭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베드로 묵시록에 의하면 지옥에 살인자들이 있고, 그 살인자들이 벌레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습니다.
헤롯은 야고보를 죽인 살인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지 않았다면, 베드로마저 죽였을 살인자가 헤롯입니다. 이 살인자 헤롯이 심판받습니다. 사도행전 12장 23절입니다. 「주님의 천사가 헤롯을 내리쳤다. 헤롯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벌레에게 먹혀서 죽고 말았다」
어떤 사람들은 헤롯의 방식대로 보장된 안정을 좋아했겠지만, 헤롯의 나라는 지옥이었습니다. 어떤 명분으로도 소수의 약한 사람을 죽이고 제압하는 걸,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명분으로 특정한 집단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사악한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 사는 대한민국은 무슨 말을 해도, 어떤 생각을 품어도, 야고보처럼 죽지 않는 세상입니다. 죽지 않아 다행이지만, 믿음을 증명할 방법이 없는 세상입니다. 어떤 급진적인 사상을 갖는다 해도 베드로처럼 감옥에 갇히지 않는 세상에서, 예수의 믿음을 증명하기란 어렵습니다. 현대 사회 교회의 믿음은 문화가 되었고, 기독교는 권력에 의해 박해받기보다, 이익집단이 되어 권력을 창출하는 데 기여하기도 합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우리 교회의 믿음은 무엇인가요? 1943년 4월 9일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교수형 당한 본회퍼 목사를 생각합니다. 본회퍼는 히틀러를 그리스도라 여기는 당시 독일국가교회에 반대해, 고백교회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히틀러 암살모의에 역할을 맡습니다. 주류 교회에 휩쓸리지 않고, 악한 권력에 저항하다가 본회퍼는 교수형 당하고 맙니다. 이것이 예수의 믿음입니다. 본회퍼가 따랐던 예수의 믿음으로만, 오직 예수의 믿음으로만 구원받습니다.
헤롯 같은 정치 권력이 혐오하지도 않고, 위험하게 여기지도 않는, 이렇게 문화화되고 연성화된 교회의 믿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헤롯이 세운 지옥의 한 켠에서 벌레들에 둘러싸여 안정과 질서를 누리고 있으면서, 구원받은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착각하는 까닭은 ‘싸구려 복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싸구려 복음이란 교리를 주문처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부적처럼 받아들이되, 행함에 대해 무관심한 게 싸구려 복음입니다. 복음은 죄인을 의롭게 하지만, 싸구려 복음은 죄를 의롭게 합니다. 문화화된 기독교, 권력과 연합하는 기독교의 복음은 다 싸구려 복음입니다. 헤롯의 지옥 건설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본회퍼는 이런 값싼 은혜를 경계합니다.
유명한 이들 중에 은혜를 싸구려로 파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권력이 찾아오면 인사받고 권력 위에 안수기도하는 극동방송 이사장의 믿음으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죄를 의롭게 하는 값싼 은혜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권력의 복판으로 들어가 강도들이라 호통치며 상을 뒤집어엎은 예수의 믿음으로만 구원받습니다. 그 예수를 믿어 뭇 사람들을 학살하는 히틀러에게 목숨 걸고 저항하다 교수형 당한 본회퍼의 믿음으로만 구원받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