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았습니다. 야곱은 형의 배고픔을 이용해 장자권을 빼앗았습니다. 야곱은 아버지를 속여 형의 복을 빼앗았습니다. 야곱은 본디 형의 것이었던 것을 빼앗아, 결국엔 부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복을 빼앗아 부자가 되었지만, 행복하진 않습니다. 겁을 냅니다. 형과의 관계를 파괴하면서 쟁취한 모든 것들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창32:11). 모든 것을 얻었어도 관계가 깨지면 아무 것도 가질 수 없다는 걸, 야곱은 깨닫습니다.
겁이 나고 두려워 야곱은 낮에 다니지 못합니다. 밤이 되었을 때에야 일어나 길을 갑니다. 형 에서를 피해, 낮이 아니라 밤에 가족과 재산을 이동시킵니다(창32:22).
그러나 야곱은 밤에도 걷지 못합니다. 형과 관계가 깨져있기 때문에 야곱은 낮에도 걸을 수 없고, 밤에도 걸을 수 없습니다. 걸을 수 있는 다리가 있어도 많은 재산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관계가 깨지면 걸을 수 있어도 밤이든 낮이든 많은 재산을 누리지 못합니다.
낮에는 물론이려니와 밤에도 걷지 못하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겁이 나고 두려워 걷지 못하는 야곱의 엉덩이뼈를 치십니다(창32:15). 엎친데덮친 격입니다. 무서워 주저앉아 있는 자의 엉덩이 뼈까지 어긋나게 하십니다. 무서워 걷지 못하던 야곱은 엉덩이 뼈가 어긋나 버려 걷는 게 더 어려워졌습니다. 야곱은 절뚝거리며 고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창32:31).
형의 것을 빼앗아, 아버지를 속여, 많은 재산을 얻으려 길을 나섰던 야곱에게 하나님은 보호와 귀향을 약속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창세기 28장 15절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하나님은 약속하신대로 야곱을 떠나지 않았고, 다시 고향 땅으로 데려오셨습니다. 다만 야곱은 절뚝거리며 걸어야 합니다.
절뚝거리며 걷는 장애인은 흠이 있는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장애인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모세는 적기도 합니다. 「너의 자손 가운데서 몸에 흠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음식제물을 바치러 나올 수 없다. 몸에 흠이 있어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는 사람은, 눈이 먼 사람이나, 다리를 저는 사람이나, 얼굴이 일그러진 사람이나, 몸의 어느 부위가 제대로 생기지 않은 사람이나, 팔다리가 상하였거나 손발을 다쳐 장애인이 된 사람이나, 곱사등이나, 난쟁이나, 눈에 백태가 끼어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이나, 가려움증이 있는 환자나, 종기를 앓는 환자나, 고환이 상한 사람들이다(레위기21:17~20).」
그러나, 야곱은 뼈를 상해 절뚝거리게 되었을 때에 축복을 받았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되었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고 고백합니다. 야곱은 제한된 공간인 성소가 아니라, 열린 공간인 강가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은 종교적으로 구별되고 제한된 공간이 아니라, 어느 공간이든 임재하십니다.
특정하고 제한된 공간으로 찾아가지 않은 채,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야곱이 만났던 하나님은 이런 말을 합니다. 「어떤 이가 나타나 야곱을 붙잡고 동이 틀 때까지 씨름을 하였다. 그는 도저히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가 엉덩이뼈를 다쳤다. 그가, 날이 새려고 하니 놓아 달라고 하였지만, 야곱은 자기에게 축복해 주지 않으면 보내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창31:24-26).」
야곱의 엉덩이 뼈를 상하게 한 ‘어떤 이’는 야곱에게 “날이 새려고 하니 놓아 달라”고 합니다. 밤에 야곱에게 나타난 ‘어떤 이’는 날이 새면 곤란을 겪는 존재입니다. 밤에만 활동이 편안한 존재입니다. 야곱이 밤에 씨름하는 어떤 이는 귀신같은 존재요, 악마 같은 존재입니다. 야곱은 밤에 귀신 같고 악마 같은 존재를 만나, 엉덩이 뼈를 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 이상한 존재를 만나, 절뚝발이가 되었는데,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만났다고 고백합니다.
거룩하고 특정한 공간이 아니라, 잠들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밤에, 나를 괴롭히고 해치려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나타나십니다. 너무 두려워 잠들 수 없는 밤에 맞닥뜨린 귀신 같고 악마 같은 존재가 오히려 나를 축복하는 하나님이라고 야곱은 고백합니다.
귀신같고 악마 같은 존재 마저 하나님이라면, 야곱은 더 이상 에서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귀신같고 악마 같은 존재 때문에 다리를 절뚝거리게 되었지만, 이 또한 축복의 증거여서, 에서를 만나 어떤 일을 당하든, 그 역시 축복이라,
야곱은 절뚝거리며 길을 나섭니다. 절뚝거리기 전엔 겁이 나 갈 수 없던 길을, 절뚝거리게 되니 아무렇지 않게 갈 수 있습니다. 야곱은 밤을 지나며, 귀신같고 악마 같은 존재를 만나 씨름하며, 그마저도 하나님의 얼굴을 지닌 사람이라 고백하며, 다시 태어납니다. 밤을 지나며 야곱은 이전과 다른 사람으로 부활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밤을 지내셔야 했습니다. 제자들이 배반하고 부인하던 밤, 로마 군에 의해 옷이 벗겨져 십자가에 매달렸던 참혹하고 치욕스런 시간, “하나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십니까” 외치며 단말마의 고통 속에 생의 마지막 시간을 지낸 후, 부활하셨습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어, 우리의 부활을 소원합니다. 인생의 밤이 있습니다. 귀신같고 악마 같은 존재와 씨름해야 하는 인생의 밤이 있습니다. 밤은 우리를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밤에 우리는 심각한 손상을 입어 절뚝거리며 걸어야 될 수 있습니다. 나를 절뚝거리에 만든 이가 나를 축복하는 자입니다. 이렇게 귀신같고 악마 같은 존재에게서 하나님의 얼굴을 발견하면, 두려운 사람이 없습니다. 나를 해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귀신같고 악마 같은 존재마저 나를 축복하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께서 제자 도마에게 보여주셨던 부활의 증거는 옆구리 창자국이요, 손바닥 못자국이었습니다. 야곱이 보여주는 부활의 증거는 절뚝거리는 걸음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 회복될 수 없는 손상이 부활의 증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는 자기를 죽인 종교지도자들과 로마군인들에게 복수하러 나서지 않습니다. 부활한 야곱은 자신을 원수처럼 여기는 에서를 만나 목을 껴안고 화해합니다. 상처는 돌이킬 수 없고, 손상은 회복될 수 없지만, 관계가 복원된 삶, 평화와 화해의 삶이 부활입니다.
절뚝절뚝 부활을 살겠습니다.
글/ 김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