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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 _ 창11:1~32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2.10.14|조회수140 목록 댓글 5

지금처럼 언어는 여러 가지였습니다. “각기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창10:20,21)” 족속별로, 지역별로 언어는 제각각이었습니다. 바벨탑 건설 현장의 ‘언어가 하나’였다는 것은 통치구조가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왕이 스스로를 황제라 일컬으며 조선까지 그들의 통치 아래에 두고 조선 학교에서 조선말을 금지하고, 조선 사람에게 창씨개명을 강제했던 상황을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인 세상을 무너뜨리십니다. 다른 족속들을 ‘하나’로 묶어 제국 행세하며 하늘까지 높아진 권력은 무너집니다. ‘바벨탑’은 제국의 교만을 상징합니다(창11:4). 이집트,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중국은 제국의 원형으로 바벨탑을 쌓았던 통치세력입니다. 과거 일본 제국은 저들의 아류겠지요. 하나님께서는 바벨탑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제국은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지지 않는 것, 이것이 우리네 현실입니다. 조선 사람으로서 만주군 장교 노릇을 했던 ‘다카키 마사오’는 현실을 직시한 사람이었습니다.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현실을 잘 아는 조선 사람 ‘다카키 마사오’는 훗날 독재자가 되어 무너진 바벨탑을 재건합니다. ‘다카키 마사오’가 이 땅에 세운 것은 경제가 아니라 바벨탑이었습니다. 현실은 힘이 셉니다. 무너져야 할 것은 무너지지 않고,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진다 해도 또 다른 바벨탑이 세상을 지배합니다. 바벨탑은 때로 무너지지만, 또 다른 바벨탑이 세워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국이 무너진 후 독재가 들어섰던 것이 우리의 슬픈 역사이지요. 제국이 무너진 자리에 다시 제국이 세워지는 것이 우리네 현실입니다.

 

천국은 제국이 무너진 ‘곳’에 세워지지 않고, ‘길’에 세워집니다. 바벨탑을 무너뜨리신 후, 하나님은 사람들을 흩으십니다.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11:9)” 천국이 세워지는 ‘곳’은 제국이 무너진 자리가 아니라, ‘길’입니다. 바벨탑이 무너지자 아브람의 가족은 ‘길’에 섭니다(창11:31).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가족을 ‘길’에 서게 하십니다(창11:9). ‘길’에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벨탑을 아무리 높이 쌓아도 하늘에 닿을 수 없습니다. 땅이 하늘에 닿을 리 없지요. 하늘이 땅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길’에 있을 때, 하늘이 덮치듯 열립니다. 바벨탑이 무너진 자리에 하늘이 열린다면 오해받기 십상이지요. 아무 것도 없던 자리에 천국은 세워져야합니다. 아무 것도 없던 ‘길’에서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사닥다리를 볼 수 있습니다(창28:12).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스스로를 ‘길’이라 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 천국은 ‘길’에 있습니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새 곶 됴코 여름 하나니(용비어천가)” ‘뿌리 깊은 나무’라야 바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라야 꽃이 좋고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뿌리를 내리자면 가만히 정주해야 할텐데, 천국이 ‘길’에 있다는 게 진실일까요? 우리의 뿌리는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하는 나무입니다. 뿌리를 내리는 자리가 하늘이어서, 우리는 길에서도 창창합니다.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민17:8)” ‘아론의 지팡이’는 땅에 뿌리 내리지 않았지만, 싹이 났습니다. 죽은 것이라도 하늘에 뿌리를 내리면 되살아납니다. 하늘에 뿌리를 내리면 지팡이라도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습니다. 하늘에 뿌리를 두는 사람에게 생명이 있습니다. 하늘에 뿌리를 내리는 사람은 죽어서도 되삽니다.

 

땅에 뿌리를 내린 나무는 뽑히기 마련입니다. 뽑히지 않아도 언젠가는 베이기 마련입니다. 하늘에 뿌리를 내리는 나무는 뽑히지 않습니다. 하늘로 뿌리를 뻗은 나무는 베이지도 않고 쓰러지지도 않습니다. 베인다 해도, 아론의 지팡이처럼, 움이 돋고 순이 나고 열매를 맺습니다. 땅에 심은 나무는 옮겨 심으면 시들하지만, 하늘에 뿌리 내린 나무는 옮겨 심어도 창창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가족을 바벨탑이 무너진 자리, 제국이 무너진 자리에 그저 두시지 않고 ‘길’을 가게 하시는 이유입니다.

 

길은 불안한 곳입니다. 길은 위험합니다. 길에선 고단합니다. 길을 간다는 것은, 폼은 나지만 철없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아브람은 철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브람은 현실을 모르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다카키 마사오’처럼 현실을 알고,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 안전하고 안락할 수 있습니다. 안전과 안락은 그러나, 구원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길에 있는 자에게 덮치듯 열리는 천국의 시간입니다. ‘길’에 있어 ‘돌베개’ 베고 자듯 불편하거든, 그 ‘길’에서 천국이 덮치듯 열릴 것입니다(창28:11).

 

‘길’에서, 우리는 우리말을 할 수 있습니다. ‘길’에서만, 우리는 천국어로 말 할 수 있습니다.

 

 

 

 

첨부파일 121014_민들레주보.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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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영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10.14 '다카키 마사오'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일본식 이름입니다.
  • 작성자용감하게 명랑해 | 작성시간 12.10.14 현실을 직시하되 하늘의 뿌리를 둔 나무가 되길 기도합니다.
    낭군탱이랑 설교말씀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간만에 했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도 아깝다는 생각을 했어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들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 그러면서도 참 다행이다. 이런 설교를 들을 수 있어서. 그리고 다시금 용감하게 철들지 않고 명랑하게 살아야지 다짐합니다.
    현실은 참혹하고 냉엄하더라도... 용감하게 명랑해!!!!
  • 답댓글 작성자김영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10.14 감사합니다... 성경과 기독교가 온전히 하나이면 좋겠네요. 산이 아버지에게 성경을 소개할 수 있어 감사하네요. 기독교가 교회가 성경에 근접해가는 것, 다시 우리 시대의 소명으로 알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엄청 힘이 됩니다... 불끈 ^*^
  • 작성자기아김종선 | 작성시간 12.10.14 예수님이 왜 길이신지 참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가 되어도 예수길따라천국에 이르게 되는 것이네요. 인생이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하여도 왜 그 날들은 수고와 슬픔이 가득한 곤고한 날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길 위에선 나그네의 삶 가운데 이제는 어느 길에 서 있을 것인지 어느길로 걸어갈 것인지의 선택이 남았네요. 이번에 또 다시 알파 16기 소그룹 리더를 맡았습니다. 어찌보면 일꾼을 키워내지 못하는 모습을 자책하고 반성하면서도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대합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그것이 가야할 길이라면 걸어야 겠습니다. 예수생명의 길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김영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10.15 늘 새롭'길'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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