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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추억_요일4장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3.05.07|조회수47 목록 댓글 0

19041225일 성탄절, 유진벨 선교사 집에서 광주 지역 처음 예배가 시작됐습니다. 광주에서 깡패로 유명짜하던 최흥종도 예배에 참여했구요. 성령께서 일하셨을까요, 최흥종이 회개합니다. 최흥종은 선교사를 도와 예배를 준비하고 병원 조수 노릇도 합니다. 선교사 중 오웬이라는 청년 의사가 병에 걸렸습니다. 오웬을 치료하기 위해 포사이드 선교사가 목포에서 오게 됐고, 최흥종이 포사이드를 마중나갔습니다.

[한센병 앓는 여인과 지팡이], 최흥종기념관, 사진:김영준

 
포사이드와 최흥종이 만나 광주로 오는 길목에 한센병에 걸려 길에 쓰러져 있는 여인을 만나게 되자, 포사이드는 여인을 자기 타던 말에 태웠습니다. 그때 여인이 잡고 있던 지팡이가 떨어졌나봐요, 포사이드가 최흥종에게 그 지팡이를 집어 달라고 했는데, 최흥종은 한센병 여인이 잡았을 지팡이를 집지 못했다고 합니다. 바다 건너 온 이방인 포사이드는 한센병 걸린 여인을 들어 안아 말에 태우기까지 하는데, 동족 최흥종은 그 지팡이도 집지 못한 게 부끄러웠다고 전합니다. 부끄러움을 잊지 않았던 걸까요, 최흥종은 한센병 환자를 위한 치료시설을 마련하기 위해 땅을 기증하고, 양림천변에 노숙하는 걸인들을 먹이기 위해 가마솥을 걸고, 스스로 리어카에서 노숙하기도 하며, 한센병 환자들과 걸인들의 아버지가 됩니다
 
광주에서 처음 예배가 시작된 곳, 청년 최흥종이 처음 예배드린 곳은 지금 시립사직도서관이 됐습니다. 도서관이 지어지기 전엔 동네 놀이터였습니다. 놀이시설이라는 게 미끄럼틀 하나 덩그마니 있던 공터였는데, 아이들은 흙 위에서 놀고 공차고 불장난도 하며 자기들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거기엔 초등학생이었던 영준 목사도 있었구요. 영준 목사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시립도서관이 세워졌고 시험 기간이면 자리 잡기 어려울 만큼 학생들이 북적대는 공간이 됐습니다. 한번은 커피를 마시려고 자판기 앞에 섰는데, 트렌치코트를 입은 어른 두 명이 먼저 커피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커피 한 잔에 150원이었는데, 500원 짜리를 넣고 두 잔을 뽑았습니다. 거스름돈 200원을 한 분이 담으려하는데, 다른 분이 뒤에 학생이 있으니까 그냥 두라 하셨습니다. 멋있는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거스름돈 200원이 그 분에겐 큰돈이 아닐 수 있지만, 중학생짜리에겐 마냥 적은 돈이 아니었고, 모르는 어른이 베푼 호의 덕에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내내 기분이 좋았습니다. 중학생 영준이는 50원을 그냥 두지 않고 챙겨와 횡재했다 생각했구요.
 
유진벨 선교사가 살던 집터, 최흥종 목사가 처음 예배드린 곳, 공놀이하며 불장난하면 놀던 놀이터, 거기 세워진 시립도서관에서 마셨던 자판기 커피, 거스름돈 50원을 남겨두지 않았던 좀스런 중학생. 역사와 추억이 새겨진 공간을 알고 있다는 게 제겐 자산입니다.
 
유진벨 선교사처럼 바다 건너 이방인을 위해 나서지 못해도, 최흥종 목사처럼 한센병환자와 걸인들의 아버지가 되지 못해도, 커피를 마시고 남은 거스름돈을 나눌 수 있진 않을까요. 우리는 동전이 아쉬운 중학생은 아니니까요. 거기서부터 작은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큰 사업은 못하더라도 작은 사랑은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베푸는 작은 사랑이 부끄럽습니다. 부끄럽지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시공간, 넘치는 하나님 사랑 앞에서 담대히 서게 되면, 우리 작은 사랑도 조금씩 차오르지 않을까요. 거스름돈 나누는 작은 사랑이 큰 사랑으로 진보하는 신비가 있지 않을까요. 따뜻한 추억들이 쌓이고 흐르다보면 위대한 역사에 닿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랑으로 빚어 가가실테니까요.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랑이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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