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ᄂᆞ님은 베드로를 통해 교회를 하ᄂᆞ님 백성이라 부르십니다. 「여러분이야말로 선택받은 종족, 임금이신 하ᄂᆞ님의 제사장 일을 맡은 사람들, 거룩한 민족, 하ᄂᆞ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어둠에서 여러분을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이끌어 들이신 분의 뛰어난 일들을 여러분이 힘껏 알리도록 말입니다.」(벧전2:9) 세상 복판에서 교회를 이루어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하ᄂᆞ님 백성이라 부르십니다. 구약성경을 외는 유대인이 아니라, 선민의식에 젖은 민족주의자들 아니라, 홀로코스트를 경험했으니 무슨 일을 해도 피해자로서 행하는 응보라 주장하는 세력 아니라, 말씀을 몸에 새긴 사람들, 타인의 얼굴에서 하ᄂᆞ님을 발견하는 사람들, 나그네를 살피며 환대하는 사람들이 하ᄂᆞ님 백성입니다.
베드로는 특별히 「폰토스, 갈라티아, 카파도키아, 속주 아시아와 비티니아에 흩어져 사는 체류자들(벧전1:1)」을 ‘하ᄂᆞ님의 백성’이라 ‘격려’합니다(벧전5:12). 로마 제국 치하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지만, 천국 백성으로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당시 교회였습니다. 제국보다 더 좋은 천국을 살며, 또 죽어서도 천국에 이를 것을 믿는 사람들이 교회였습니다.
교회의 구성원들 중엔 ‘하인’과 ‘여성’이 많았습니다(벧전2:18~3:6). ‘남성’들도 있었지만 많은 수는 아니었지 싶습니다(벧전3:7). 교회 구성원들의 대부분은 ‘하인’과 ‘여성’이었습니다. 하인이라는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 인구 수에 들지 않았던 여성들이 교회의 주 구성원이었습니다. 이들을 하나님께선 천국 백성이라 부르십니다. 당시 교회의 주 구성원인 하인들과 여성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야말로 선택받은 종족, 임금이신 하나님의 제사장 일을 맡은 사람들, 거룩한 민족,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어둠에서 여러분을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이끌어 들이신 분의 뛰어난 일들을 여러분이 힘껏 알리도록 말입니다(새번역,벧전2:9).」
교회의 자리는 낮은 계급의 사람들과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제국에서 낮은 계급의 사람들과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어야, 천국을 바라는 하ᄂᆞ님 백성이길 소망할 수 있었겠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ᄂᆞ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눅6:20).」
21세기 대한민국이 계급사회는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는 건 현실입니다. 베드로의 격려를 받는 하인들과 여성들처럼, 자유가 없고, 가난하고,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유가 없고, 가난하고,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은 교회가 만나야 할 교회의 주체입니다.
베드로는 하인들과 여성들을 특별히 격려하면서, 남성들에게도 말을 남겼습니다. 여성을 ‘존중(τιμή)’하라고 합니다(벧전3:7). 교회에 ‘주인’들이 있었다면 마찬가지로 하인을 ‘존중’하라고 했을 것입니다. 아마 베드로가 아는 한 당시 교회엔 '주인'들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아, 굳이 ‘주인’에게 말씀을 남기지 않았겠습니다. 베드로가 남성들에게 제안한 여성 ‘존중(τιμή)’이라는 단어는 요한계시록에선 하ᄂᆞ님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주님, 우리의 하나님! 주님은 영광과 ‘존경(τιμή)’과 능력을 받으심이 마땅하십니다. 주님이 친히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주님의 뜻이 있어서 만물이 존재했으며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요한계시록4:11)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ᄂᆞ님을 향한 태도가 ‘존중 혹은 존경(τιμή)’입니다. 당시 인구 수에 들지 못하고, 재산 목록이기도 했던 여성을 하ᄂᆞ님같은 존재로 높이라는 게 베드로의 제안인 것입니다. 지금이야, 사람은 존엄한 존재라는 게 상식이지만, 베드로가 편지를 쓴 게 2천 년 전이니까요, 여성을 존중하는 베드로의 제안은 선지자의 혜안입니다.
서로 다른 젠더(gender)와 성(性)을 하ᄂᆞ님처럼 대하고, 하ᄂᆞ님처럼 서로 높이며 존중하고, 하인과 주인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이주민과 선주민이 서로 존중하며 만나는 시공간이 천국입니다. 그 천국의 백성들이 교회입니다.
친절한데, 정작 존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월감을 가지고 친절하기 십상입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선주민이 이주민에게, 이성애자는 성소수자에게 우월감을 갖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월감으로 존중 없는 친절을 베푼다면, 하ᄂᆞ님 형상을 지닌 사람을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ᄂᆞ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을 나와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우리에게 없지 않습니다. 친절하지 못하더라도 존중하는 태도를 먼저 갖는 게 중요합니다. 존중 없는 친절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우월감을 땔감으로 쓰는 친절은 금방 식어버립니다.
자연 속에 있는 돌같이, 건축가나 조각가가 다듬지 않은, 그냥 돌, 그래서 살아있는 돌같이, 거칠게, 친절하지 않더라도, 그냥 그대로 우리 자신을,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존중하겠습니다. 우리가 존중 위에 친절을 더한다면, 친절했다면 그 위에 존중을 더한다면, 더 없이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친절에 존중을 더하며, 존중에 친절을 입히며, 날마다 더 좋은 사람으로 우리가 부활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