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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멈춤_창세기1:26~2:7;출애굽기20:8~11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6.05.31|조회수102 목록 댓글 0

안식으로 창조가 완성됩니다(창2:2). 하ᄂᆞ님 은 창조의 마지막 날에 안식을 창조하셨습니다.

 

하ᄂᆞ님 께서 창조하신 하늘과 땅과 바다와 온갖 생물은 모두 사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토대를 만드신 것입니다. 하ᄂᆞ님 께서 사람을 위해 만드신 물적 토대는 심히 좋은 것이었습니다(창1:4,10,12,18,21,25,31). 그러나 아무리 물적 토대가 훌륭해도 안식이 없다면 있으나 마나입니다. 안식이 있어야 모든 물적 토대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노예에게도, 짐승에게도 안식을 명하십니다. 일곱째 날은... 안식일인즉...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20:10) 쉬지 않는다면 창조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쉬지 못한다면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지배를 받는 노예인 것입니다. 자본주의 세상은 쉬지 않습니다. 불야성(不夜城)입니다. 365일 백야(白夜)입니다. 쉼 없이 달리는 것을 미덕이라 합니다. 그러나 하ᄂᆞ님은 노예와 짐승에게도 쉬라 하셨습니다.

 

자본주의 구조에서 멈추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안식과 쉼을 누린다는 것은 게으름이라는 누명을 쓰기 십상입니다. 자본주의 치하에서 안식을 결정하는 것은 도태(경력단절)를 감수하는 것입니다. 위험해도, 누명을 써도, 도태되어도 하ᄂᆞ님은 사람에게 쉬라 하십니다.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민9:22) 출애굽한 백성들의 광야 생활 단면입니다. 광야를 지나는 사람들은 쉼없이 행진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광야에 그저 머무르는 것 자체가 위험한 선택이니까요. 되도록 멈추지 않고 신속히 행진해서 이른 시간에 땅에 정착하길 원했겠습니다. 그러나, 행진은, 원하는 만큼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올라 움직이지 않으면, 이틀을 쉬기도 하고, 한 달을 서 있기도 하고, 일 년을 버리기도 했습니다. 광야에서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멈추는 것은 위험하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은 어렵습니다. 한 발짝 진보 없이 광야에서 1년을 그저 버리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속도를 중시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말할 나위 없습니다. 안식은 위험한 시간입니다. 이 위험한 안식을 행하는 건 어려운 것이라, 하ᄂᆞ님은 일주일 중 하루만이라도 제발 안식하라고, 법으로 제정하셨습니다.

 

일곱째 날은 여호와 너의 하ᄂᆞ님의 안식일이다. 너는 아무 일도 하지 마라. 너의 아들도 딸도, 남자 노예도 여자 노예도, 집짐승도, 너의 성문 안에 머무는 나그네도 마찬가지다. 6일 동안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었고, 일곱째 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고 거룩하게 했다.(출20:10~11)

 

무언가 생산성 있는 노동을 하지 않으면, 손해나고 도태될 것 같지만, 어떻게든 노동을 계속해야 이윤을 남길 것 같지만, 그런 식으로 계산 말고 제발 하루는 쉬어야 한다고, 안식일을 제정하셨습니다.

 

찬찬히 따져보면 모든 날이 안식일입니다. 첫째 날 창조하신 이 첫째 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둘째 날 창조하신 하늘(sky)’이 둘째 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셋째 날 창조하신 채소가 셋째 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일곱째 날 창조하신 안식이 일곱 째날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니까요. 하늘과 땅과 바다와 해와 달과 별과 짐승과 채소가 일주일 내내 있는 것처럼, 안식 역시 일주일 내내 있습니다.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모든 날에 안식이 있습니다.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모든 날이 안식일입니다. 하ᄂᆞ님께서 창조하신 날 중 거룩하지 않은 날은 없습니다.(딤전4:4) 쉬고 있다는 이유로, 게으름 누명을 쓰고 사회진화적 도태를 감수하며 인생 퇴보를 염려당하는 사람들에게, 하ᄂᆞ님이 말씀하십니다. 하ᄂᆞ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날이 안식일입니다. 쉴 때가 있습니다. 쉬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전3:1~13)

 

 

안식은 멈추는 것입니다. 멈춘다는 건, 하ᄂᆞ님께서 창조하시길 기대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노동을 멈추고 하ᄂᆞ님의 활동을 기대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사람의 꾀와 일을 멈추고 창조하시는 하ᄂᆞ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여전히 사람을 위해 세상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행위(Act)를 보는 것입니다.(출14:13) 가던 걸음을 우선 멈추고, 초록불이 켜질 때까지 가만히 서서 보는 것이 안식입니다. 세상을 정복하지도 다스리지도 못하는 스스로의 한계를 돌아보고, 하ᄂᆞ님의 지팡이에 기대는 것이 안식입니다.

 

오늘은 안식일입니다. 내일도 안식일입니다. 모레도 안식일입니다. 글피도 안식일입니다. 하ᄂᆞ님이 창조하신, 그리고 창조하시는 모든 날이 안식일입니다. 하ᄂᆞ님은 사람에게 안식을 주시고, 사람을 위해 일하십니다. 사람이 일하는 것 같지만, 하ᄂᆞ님께서 호흡을 주신 까닭에 사람이 일합니다.(창2:7) 안식하며 하ᄂᆞ님의 생령을 호흡해야, 사람은 비로소 일할 수 있습니다.

 

원치 않게 노동하지 못하고 쉴 때 있습니다. 하ᄂᆞ님께서 일하십니다. 날마다 거룩한 안식일입니다. 매 순간 기도함으로 모든 순간 안식을 취하는 것이 신앙입니다.(살전5:17) 쉬지말고 기도하라 하심은 매일, 매 순간 쉬지말고 안식하라, “쉬지말고 쉬라하심입니다.

 

안식일은 생산성이 제로가 되는 시간입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시간, 경력 단절의 시간, 시험을 앞둔 시간, 무엇을 할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시간, 병으로 몸이 무너져 노동할 수 없는 시간. 이렇게 노동에서 소외된 시간들마저 안식하는 시간입니다. 생산성 제로인 시간, 하ᄂᆞ님께서 창조를 시작하신 첫날입니다.

 

하ᄂᆞ님은 장엄한 서사시를 통해 창조를 말씀하십니다(창1:2~2:1), 그리고 함축된 보도기사를 통해 창조를 말씀하십니다(창2:4~8). 창조 시()와 창조 기사(記事) 사이에 안식에 관한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두 가지 창조 이야기 사이에 안식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창조 이야기는 안식으로 마무리되고, 두 번째 창조 이야기는 안식으로 시작하도록 편집되었습니다. 창조의 완성이 안식이면서, 안식으로 창조가 시작됩니다.

 

노동을 멈춰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ᄂᆞ님께서 나를 위해 이미 창조하셨음을 확인하고, 하ᄂᆞ님과 다시 창조할 것을 모색하는 시간입니다. 노동을 멈춰야 할 때, 하ᄂᆞ님께서 활동하시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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