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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만남"_마태복음9:9~26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6.06.14|조회수170 목록 댓글 0

2천 년 전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했을 때, 세금업자가 있었습니다. 당국은 세금업자에게 급여를 따로 주지 않았습니다. 급여는 주지 않고, 걷어야 할 세금만 할당했다고 합니다. 로마 당국이 받을 세수는 정해져 있었지만 세금업자에겐 따로 정해진 급여가 없어, 세금업자는 되도록 많은 세금을 걷어 할당액을 제하고 나머지를 자기 수익 삼았습니다. 급여가 정해졌다고 해도 정해진 것보다 더 걷는 업자들이 많았겠습니다. 세금업자는 로마 제국의 재원을 마련하는 말단 관리이고, 일하는 사람의 몸에 빨판을 박아 피를 빠는 거머리였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 예수와 이런 세금업자가 만나는 건 잘못된 만남입니다.

 

구약성경 시대에 출혈병 앓는 사람은 마을(진영) 밖에 격리되었습니다.(5:2~3) 다른 사람을 지키려는 보건상 이유였는지, 당사자를 보호하려는 조치였는지, 이유는 분명치 않습니다. 출혈병 앓는 사람은 마을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불가했습니다. 예수께서 12년 동안 출혈병 앓는 사람과 우연히 만납니다. 예수 입장에선 우연이지만, 12년 동안 출혈병 앓던 사람이 의도한 만남이었습니다. 마을 밖에 머물지 않고, 마을 속으로 일부러 들어갔으니까요. 사람들이 볼 때, 예수와 출혈병 앓는 여자가 만나는 건 잘못된 만남입니다.

 

하ᄂᆞ님께선 만나야 한다고 하십니다.(출25:22) 한결같은 사랑으로 하ᄂᆞ님은 사람을 만나 주십니다. 옛날 유대 사람들은 성전에서 제사드리며 하ᄂᆞ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겠습니다. 제사를 드리면서, 뭔가 하ᄂᆞ님과 소통하고 있다고 여겼겠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을 읽는 자리엔 성전이 없습니다. 0070년 예루살렘이 파괴된 후, 마태복음은 예루살렘을 떠나 0090년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었으니까요. 마태복음은 성전에서 제사드리는 것보다, 순종하는 것이 낫다는 예언자의 말을 기억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6:6)

 

하ᄂᆞ님은 호세아를 통해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단언하십니다. 선지자 호세아는 B.C.8세기에 북이스라엘이 활동했던 사람이라, "제사가 아니라 사랑"을 말할 때는 성전이 아직 서 있었습니다. 성전이 우뚝하건만 제사 아니라 사랑을 이야기하는 호세아의 말을, 사람들은 무시했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기원전 722년 바빌로니아에 의해 성전이 한 번 무너지고, 시대가 달라져 0070년 로마에 의해 또 다시 성전이 무너지고 나서야, ‘제사보다 사랑이라는 말씀이 새삼 새롭게 들렸겠습니다.

 

지중해 세계 전체가 로마 제국이던 시절, 그나마 성전이 있어 민족종교로 정체성을 지키다가, 성전마저 파괴되어 마음 속에 소박한 깃발마저 사라져버린 때에, 마태복음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하ᄂᆞ님을 만날 것을 제안합니다. 이전엔 절대 만나지 않았을 사람을 받아들이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ᄂᆞ님을 뵙는 것이라고 마태복음은 선포합니다.

 

어제 613일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했습니다. 성소수자 부모 모임 부스에서 부모들과 당사자들을 축복하는 목사도 계셨습니다.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거리를 행진했습니다. 영준 목사는 축제를 스케치하며,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왔습니다.

 

유력 교단 총회들이 성소수자 옹호를 불법이라 규정하기도 합니다. 퀴어성서주석이라는 책을 이단으로 판정하기도 합니다. 한국교회 교권주의자들이 볼 때, 교회가 목사가 성소수자들을 만나는 건 잘못된 만남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학생 시절,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 동성애 동아리 결성을 반대하는 대자보와 칼럼을 쓰기도 했었구요. https://cafe.daum.net/churchmindlele/2D2k/230

 

신학의 도움을 받아 성서를 다시 읽으며,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당사자를 만나 대화하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책들과 성소수자 당사자를 통해 잘못된 만남을 가졌습니다. 지금 저는 성소수자들의 일상과 모임과 운동을 응원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빠른 시일 내에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소수자도 차별 당하지 않아야,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습니다. 성소수자, 이주민, 난민, 장애인이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아야,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습니다. 하ᄂᆞ님은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하ᄂᆞ님의 사랑에 차별이 없고, 하ᄂᆞ님께서 사랑하시는 대상에 구별이 없습니다. 그래서입니다. “나 같은 죄인마저 하ᄂᆞ님께서 살리신 것을 확신합니다. 나 역시 하ᄂᆞ님께서 펼치신 사랑의 자장 속에 있는 까닭은, 하ᄂᆞ님께서 성소수자를 비롯해 모든 사람을 차별치 않으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카라바지오, 마태를 부르심 The Calling of Saint Matthew, 322×340cm, 1600, San Luigi dei Francesi, Rome

 

카라바지오가 세금업자 마태를 부르시는 예수를 그렸습니다. 예수께서 마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시며 부르실 때, 누가 마태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바라보며 자신을 부르는지 묻는 듯한 대머리 남자 같기도 하고, 고개를 숙이고 카드놀이에 빠져있는 청년 같기도 합니다. 카라바지오 그림 속 마태가 누구인지 분명치 않으나, 예수께선 테이블에 있는 모든 사람을 만나는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마태를 만나는 술집에 큰 창문이 있는데, 자세히 보면 벽입니다. 열리지 않는 창문입니다. 어디에선가 열리지 않는 창문을 비추는 빛이 들어옵니다. 성소수자를 향해 창문을 열지 않는 교권주의자들에게도 하ᄂᆞ님은 빛을 비추십니다. 그래서입니다. "나 같은 죄인"마저, 하ᄂᆞ님의 빛 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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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교회/ 김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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