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와 야곱은 쌍둥이 형제입니다. 형 에서는 에돔이라고도 불리는데, 에돔엔 ‘붉다, 흙,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아담(אָדָם)과 에돔(אֱדוֹם)은 어근이 같습니다. 동생 야곱은 그 이름에 ‘발꿈치를 잡는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형의 발목을 잡았다고 해요.
형이 상속을 받는 게 에서와 야곱이 살던 당시 관습이었습니다. 야곱은 배고픈 형에게 팥죽을 주고 상속권을 받습니다. 배고픈 형과 팥죽을 쑤는 야곱 사이에 오고 갔을 말의 온도를 짐작하면, 진지한 대화는 아니었겠습니다. 상속권을 달라는 야곱도, 상속권을 주겠다는 에서도 팥죽 거래로 ‘민법’상 구속력이 있다고 여기진 않았겠습니다. 둘째 아들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면서 사달이 났습니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 형에게 돌아갈 권리(축복,상속)를 독점해버린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로, 형 에서는 야곱을 죽여버리겠다고 맹세했고, 동생 야곱은 형을 피해 상속도 받지 못한 채 망명 생활을 시작합니다.
야곱은 망명지에서도 사기꾼이었습니다. 잔꾀와 속임수로 재산을 쌓았고, 일가를 이루었지만, 결국 도망쳐야 했습니다. 20년 만에 도망자가 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는데, 형이 걸렸습니다. 20년 전에 자기를 죽여버리겠다고 맹세했던 형 에서는 전사니까요. 성공에 대한 강한 욕망과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잔꾀와 속임수로 이룩한 모든 것들을 한 번에 잃어버릴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이 야곱에게 닥쳐왔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야곱은 신비한 존재를 만납니다. 밤이었습니다. 모든 가족과 소유를 먼저 앞세우고, 홀로 남겨진 밤에 누군가 야곱을 찾아왔습니다. 천사인지, 사람인지, 하ᄂᆞ님인지, 도깨비인지, 야곱은 이 낯선 존재와 밤새 씨름하며 다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홀로 밤을 샌 후 다시 시작한 첫날, 야곱은 절뚝거립니다.
절뚝거리며,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납니다. 절뚝거리는 야곱이 엎드려 형 에서에게 “일곱 번 땅에 엎드려 절”합니다. 형의 발목을 잡아서라도 경쟁에서 이기려 했던 야곱이 절뚝거리며 “일곱 번 땅에 엎드려 절”합니다. 재산도 지켜야 했겠지만, 아내와 자식들을 지키려는 마음 아니었을까요. “일곱 번 땅에 엎드려 절”하고, 형 에서를 ‘주인어른’(אֲדֹנִי 아도니)이라 부릅니다. 구약성경을 읽을 때, 유대인들은 문장 속에 하ᄂᆞ님(여호와)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나의 주님(אֲדֹנָי 아도나이)이라고 읽습니다. 아도나이와 아도니는 모음만 다르고 자음은 같은 단어입니다. 옛 히브리어에 모음이 없었다는 걸 헤아리면, 지금 동생 에서가 형 야곱을 하ᄂᆞ님이라 부르는 셈입니다.
동생 야곱이 전사인 형 에서를 20년 만에 만나, 아도니(주인어른)이라 부를 때, 친밀감을 담진 않았겠습니다. 살기 위해 상대방을 존숭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야곱은 절뚝거리며 살아남을 것입니다.
76년 전에 한반도에서 큰 전쟁이 있었습니다. 3년 동안 300만 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대부분 민간인이었습니다. 이남에서 100만 명 이상, 이북에서 150만 명 이상 민간인이 죽었습니다. 어떤 이는 민족 해방을 위해, 어떤 이는 땅을 빼앗긴 앙갚음으로, 서로를, 서로의 가족을 죽였습니다. 이 참혹한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휴전일 뿐입니다.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했습니다. 이남엔 미국 군대가 주둔하고, 이북엔 핵무기가 있습니다. 금강산 관광길도, 개성공단 출근길도 막힌 지 오래고, 판문점 발길도 끊겼습니다.
최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헌법을 고치며, 영토 규정을 바꿨습니다. 이남을 제외한 것입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 나라가 아니라, 완전히 서로 다른 나라라는 것입니다. <광야의 소리>에 민들레와달팽이에서 열었던 평화강좌 후기에 관련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평화강좌 후기] 우리의 소원을 리메이크할 때 | Notion
에서가 야곱에게 함께 살자고 제안하지만, 야곱이 거절합니다. 형은 형대로, 동생은 동생대로 살자고 합니다. 형을 속여서라도 성공하고 싶었고, 그런 동생을 죽여버리겠다고 맹세했던 에서가 목을 껴안고 화해하고는, 각자 자기 자리에서 살기로 합니다. 20년 동안 원수였다가 화해한 형제는 하나가 되진 않지만, 다른 하나를 해치지도 않습니다.
전쟁을 치렀고, 오래 적대했던 두 나라가 하나가 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통일은 현실이 아니라 소원입니다. 소원을 이루기 전에 서로의 처지와 자리를 인정하는 것이, 전쟁에서 떠나 회개하는 첫걸음입니다. 나아가 한반도 두 나라가 영구적인 평화를 이루는 것이 회개의 열매입니다. 그렇게 서로 평화를 경험하며 회개의 열매를 먹다 되면, 더 크고 많은 열매를 기대하며 마침내 하나가 되는 통일을 모색할 것입니다. 소원이 마침내 현실로 찾아올 것입니다.
20년 만에 만난 형 에서에게 친밀감은 없지만, 아도니, 주인어른이라 불렀던 야곱처럼, 친절하지 않아도 존숭을 서로 표현하는 것에서 평화는 시작되겠습니다. 서로 존중하며, 제 자리를 인정하며, 철저하게 둘의 존재를 인정해 줄 때, 가족이 하나라는 유대감이 강해지듯, 존중하는 둘은 끝내 하나가 될 것입니다.
전쟁이야말로, 창조 세계와 하ᄂᆞ님 형상을 파괴하는 가장 큰 죄입니다. 오직 평화만이, 한반도에 두 나라가 깃발 삼아야 하는 하ᄂᆞ님의 뜻입니다. 절뚝거리며 평화의 길을 걷는 이가 하ᄂᆞ님의 딸이요 아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