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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나, 믿냐? _ 창17:1~17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2.12.29|조회수138 목록 댓글 3

할례를 받은 성읍 사람들이 몰살을 당합니다. “성문으로 출입하는 그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으니라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창34:24~25)”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최소한 3일 동안 죽음을 각오해야하는 의식이었습니다. 할례는 무장해제를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받으라’ 하십니다(창17:10~12). 할례 받는 것을 ‘언약의 표징’으로 삼겠다 하십니다(창17:11). 아브라함은 성읍의 성주가 아닙니다. 사방에 아브라함을 위협하는 세력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적들이 존재하고 성벽으로 보호받지도 못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받으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하시는 것을 간단하게 축약하면 이렇습니다. ‘너, 나, 믿냐?’

 

보름 전, 교회 통장 계좌에 1,070원이 남았습니다. 일주일쯤 뒤에는 관리비, 임대료도 내야하는데, 팍팍했습니다. 돈에 집중하게 되더군요.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엔, 줄곧 돈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했지만, 답은 없었습니다.

 

생각하다가 기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 돈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주소서” 돈이 없어서 기도했지만, 돈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돈을 구할 필요 없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31~32)” 우리는 돈이 없거나 부족하지만, 굳이 하나님께 돈을 달라고 기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시니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돈이 없거나 부족하면 불안한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돈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주소서” 돈이 나를 떠나더라도 성령께서는 나를 떠나지 마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까닭에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아는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빌4:12).

 

무장해제를 당하는 것 같은 위기의 시간이 있습니다. 염려로 머릿속이 가득할 때가 있습니다(눅8:14).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받으라’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똑같이 물으십니다. ‘너, 나, 믿냐?’ 하나님과 성경 속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통장에 찍힌 1,070원을 묵상하지 않고, 성경에 찍힌 하나님의 약속을 묵상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 현재 교회 계좌엔 약 300만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잘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하나님께 미주알고주알 기도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긴급하고, 가장 중요한 필요는 바로 ‘성령’입니다. 우리 속사람과 영혼이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이야 말로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필요입니다.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지만, 어쩌면 돈이 없으면 죽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이 없으면 죽습니다. 성령이 없으면 우리는 흙덩어리, 먼지뭉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령을 호흡해야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2:7)” 하나님의 ‘생기’가 곧 ‘성령’입니다. 성령을 호흡하는 것보다 긴급하고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성령을 호흡해야 우리는 생령으로 삽니다.

 

우리는 믿는듯하지만, 사실은 잘 믿지 않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백 살 노인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믿지 않고 웃었습니다(창17:17~18). 아브라함이 생각하기에 백 살 노인이 아들을 낳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행합니다(창17:23~27). 할례를 받으면 본인을 포함한 일가족이 몰살당할 수 있음에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할례를 행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한 점 의혹도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믿음은 의혹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의혹이 있어도 가야할 길을 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갈지자로 흔들리고 좌충우돌하여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비웃기까지 했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의인이라 하신 것은, 아브라함이 의혹 중에도 가야할 길을 갔기 때문입니다(창15:6).

 

어제처럼 오늘도 하나님의 돌봄 속에 살았지만, 내일을 생각하면 의혹의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물어 보십니다.

 

‘너, 나, 믿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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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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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영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12.30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 작성자hanna | 작성시간 12.12.30 나는 그의 외아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습니다.
  • 작성자유티 | 작성시간 13.02.02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언제나 마음은 걱정 투성입니다.
    저와 목사님이 다른 점?은 아마도... 전 구했습니다.
    하나님! 저 돈 때문에 너무 힘이 들어요. 돈 좀 주세요. 라고 떼쓰고 있습니다.
    결국은 다 제 욕심때문인데 말이죠.
    하나님의 계획하심...
    깨닫게 하십니다. 위로하십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말씀 마음밭에 아주 조금이나마 담고 살아가려 합니다.
    "너 나 믿냐?"
    가슴이 먹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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