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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은 없다 _ 행4:1~12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2.02.26|조회수127 목록 댓글 1

다른 이름은 없다

사도행전4:1~12

 

 

사두개인들은 성전에 하나님께서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대대로 제사장직을 물려받으며 성전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계셔야한다는 것이 사두개인들의 이데올로기였습니다. 그런데, 성전 밖에서 ‘나면서 못 걷게 된 이’가 걷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3:2,8). ‘나면서 못 걷게 된 이’가 걷게 된 이유가 부활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것이라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었는데 부활했고, 부활한 예수가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걷게 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애초에 부활을 믿지 않았거든요(행4:2;23:8). 성전 밖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사두개인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을 보고 있습니다(행4:14).

 

예수님은 분명 죽었었지만, 예수님은 지금 로마 군대의 포승줄이 닿을 수 없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통치하십니다(히12:2).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전 밖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행3:3). 성전주의자인 사두개인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았고(4:2), 성전에서 채찍을 휘두르며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신 예수님을, 저들은 로마 군대의 힘을 빌려 예수님을 죽였건만(4:5~6)...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전 밖에서, ‘나면서 못 걷게 된 이’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불편한 사실을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성전은 무너질 것입니다(마24:1~2). 이것이 사두개인들의 두려움이었고, 실제로 성전은 A.D.70년, 로마 황제의 아들 ‘티투스’의 군대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로마 군대의 힘을 빌려 예수를 죽였던 사두개인들은 로마 군대에 의해 삶의 근거를 잃었습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에 망합니다(마26:52). 성전이 무너진 후 제사장직을 독점하던 사두개인들은 해산되었습니다. 이제는 사두개인이 아니라 예수 믿는 이들이 제사장입니다(행4:11;벧전2:9). 이제 성전은 돌로 쌓여진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 성전입니다(고전3:16).

 

각종 이단들이 난립해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에도 ‘영지주의’라는 이단이 있었습니다. 영지주의는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모든 것을 악한 것이라 여기는 태도입니다. 극단적 영지주의자는 성(性)과 출산을 악한 것이라 보았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물질세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출산을 악한 것이라 판단한 영지주의자들에게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 하셨고(딤2:15), 창조된 물질세계를 악하다고 생각하는 영지주의자들 때문에 초대교회는 ‘천지의 창조주’를 고백하며 사도신경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영지주의 이단은 조직화된 단체나 세력이 아니라 교회 내에 믿는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흐름이라는 것입니다. 골라내려고 해도 골라낼 수 없고 집어내려고 해도 집어 낼 수 없는 일종의 신앙 패턴이 영지주의였습니다.

 

초대교회 시대 영지주의처럼, 골라낼 수 없고 집어낼 수 없는 우리 시대 가장 강력한 이단은 ‘성전주의’입니다. A.D.70년, 성전이 파괴되면서 사두개인들은 해산되었고, 성전주의라는 이데올로기도 추락했건만, 오늘날 성전주의는 부활했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았던 사두개인들은 오늘날 우리의 신앙패턴으로 부활했습니다. 보이는 건물인 성전이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면 우리는 사두개인입니다. 보이는 건물인 성전이 있어야 사람이 모일 수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사두개인입니다. A.D.70년, 성전은 무너졌는데 사두개인의 피는 우리 몸속을 흘러, 우리는 보이는 것에 집착합니다.

 

사두개인의 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사두개인의 전통을 부활시켜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무언가를 세우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믿어, 서로 위로가고 격려하며 구원을 이루기 위해 모였습니다. 구원은 이미 받은 것이면서, 또 이루어가야 하는 것이니까요.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구원을 받고,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세우는 것은 사람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몫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경영하지 말라, 너는 제자 삼으라, 경영은 내(하나님)가 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났습니다.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역사는 다시 일어납니다. 사두개인의 피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몸을 흐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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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요셉 김영민 | 작성시간 12.03.02 하나님의 역사가 민들레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민들레 교회가 세상을 선하게 바꾸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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