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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위의 꿈 _ 몬1:8~21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3.09.01|조회수163 목록 댓글 2

인류 역사에서 노예는 항상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예 제도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노예 제도를 한시적으로만 허용하셨습니다. “희년...그 때에는 그와 그의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의 가족과 그의 조상의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라 그들은 ... 내 종들이니 종으로 팔지 말 것이라 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레25:40~43)

 

하나님은 희년이 되면 노예 제도를 파괴하라 하셨습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닮았는데, 특정인이 노예가 될 순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창1:27).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믿지 않습니다. 옛날 미국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심지어 성경을 읽는 흑인을 보고는 의아해 했습니다. 어떻게 흑인이 거룩한 성경을 읽을 수 있는지, 흑인의 뇌를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흑인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고 믿지 않았던 겁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흑인들은 시내버스를 타면서도 비굴해야 했습니다. 버스 자리에 앉아 있다가 백인이 타면 자리를 양보해야했습니다. 법이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재봉사였던 흑인 아줌마가 자신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합니다.

 

1955년 미국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 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나중에 버스를 탄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운전사의 요구에, 흑인 아줌마 로자 파크스가 ‘No'라고 대답합니다. ‘No' 한 마디 때문에 로자 파크스는 체포됩니다. 이에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중심으로 흑인들의 버스승차거부 운동이 시작되었고, 1년 동안의 비폭력저항 운동 끝에 흑인들은 겨우 버스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예였던 흑인들이 버스에 앉아 출근할 수 있게 된 게 겨우 60년 전 일인데, 무려 3000년 전에 모세는 노예 제도를 파괴하는 희년을 선포했고, 2000년 전에 바울은 파괴되지 않는 노예 제도를 무력화시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상전 빌레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노예 오네시모를 형제처럼 대하라 합니다.(몬1:13~16) 하나님은 예수 믿는 상전과 노예를 형제라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듭 난 사람에겐 차별이 없기 때문입니다.(골3:10~11)

 

믿음은 이런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구원합니다. 노예였던 오네시모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으므로, 그 영혼이 구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노예의 일상으로부터 구원받습니다.

 

오네시모의 이름 뜻은 ‘무익한 자’입니다. 누가 지었는지 참으로 가학적입니다. 오네시모는 믿음을 갖고 ‘새 사람’이 되기 전까지, 스스로를 ‘무익한 자’로 알고 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익한 자 노예 오네시모를 유익한 자로 다시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바울이 빌레몬에게 부탁합니다.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하라.(몬1:11,17)

 

세상 앞에서 우리는 무익한 노예 같습니다. 우리를 매고 있던 사슬은 풀렸지만, 우리는 사슬의 길이 이상을 가려하지 않습니다. 사슬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날개가 거세된 거위처럼 철조망이 사라져도 하늘을 날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았지만 하늘을 날 계획이 없습니다.

 

흑인 아줌마 로자 파크스 옆자리에는 흑인 남자 세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흑인 네 명이 앉아있던 자리는 백인 지정석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불완전한 법으로도 흑인이 앉아 있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자리 양보를 요구하는 백인에게 흑인 남자 세명은 권리를 포기합니다. 1863년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령을 선포했지만, 로자 파크스 옆에 앉아있던 흑인 남자 세 명은 여전히 노예였던 것입니다. 오네시모의 이름처럼 스스로 무익한 자라는 생각에 여전히 묶여 있었던 것입니다.

 

스스로를 무익하다 자학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3:2,1)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하늘에 계십니다. 우리는 부활을 믿고 위의 것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땅의 것에 매이지 않고 하늘의 것을 찾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배가 땅에 닿는 거위가 아니라 차가운 겨울 하늘을 날아오르는 기러기입니다. 땅의 중력 따위로, 믿음을 묶을 순 없습니다.

 

노예입니까, 자유인입니까.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요8:32) 스스로를 묶고 있는 모든 사슬로부터 자유하기를 기대합니다. 진리는 땅의 것에 안주하는 살찐 거위가 아니라, 차가운 겨울 하늘을 날고 싶은 꿈꾸는 거위의 것입니다.

 

주의 영이 임하면 노인이 꿈을 꿉니다.(욜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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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건영 | 작성시간 13.09.03 귀한말씀에 너무도 공감하며. 어떻문제라도 그 해결점을 성경에서 찾는것이 가장 바른 것이라 생각되어짐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신도라도 1년에 한번은 성경을 통독해야 자신의 문제와 연관된 내용을 찾을 수 있는 기본 베이스가 준비된다고 봄니다. 아무리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컴이라도 그 컴안에 자료가 없다면 그 컴은 그저 깡통일 뿐입니다. 저는 컴의 발명이 너무도 반가워하는 사람입니다. 비유를 들기가 너무도 무궁무진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영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9.07 교회는 무너져가도, 성경은 여전한 까닭에 소망이 있겠지요. 성경을 사랑하시는 전도사님 통해 유두고를 통해 만나는 아이들이 말씀으로 회복될 것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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