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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지오,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1610_목회와신학2020년3월호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1.03.28|조회수256 목록 댓글 0
카라바지오,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1610, 125*101cm, 보르게세 미술관

 

골리앗은 키가 2미터 70센티쯤 되는 거인이다. “돌을 무릿매로 던져서”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골리앗의 칼로 골리앗의 목을 베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능멸한 적장 골리앗을 제압한 공으로 왕의 사위가 될 것이다. 골리앗을 제압해 하나님의 이름을 높였다는 명분과 왕의 사위가 되는 실리를 모두 챙겼다. 그런데,

 

카라바지오(Michelangelo da Caravaggio;1517?~1610)가 그린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의 얼굴은 슬프다. 목 잘린 골리앗을 보고 있는 다윗의 얼굴에 득의만만한 표정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연민이 가득하다. 죽은 골리앗을 보고 슬퍼하며, 목 잘린 골리앗을 불쌍하게 쳐다보고 있다. 카라바지오는 왜 골리앗을 제압한 다윗의 얼굴 속에 슬픔과 연민을 담았을까.

 

목 잘린 골리앗은 카라바지오의 자화상이다. 카라바지오는 자신이 죽던 해인 1610년에 이 기괴하고 충격적인 자화상을 남겼다. 바로크 시대를 연 화가답다. 바로크(Baroque)는 본디 그 말뜻이 ‘터무니없다’든가 ‘기괴하다’는 뜻이니까. 카라바지오는 자화상마저 왜 터무니없이 기괴하게 그렸을까. 카라바지오는 "살인, 폭행, 불법무기 소지, 기물파손 등으로 당국에 체포된 횟수만 열다섯 번, 감옥에 갇힌 건 일곱 번이었다"고 한다. 죽음이 두려웠던 걸까, 죽음을 예견했던 걸까. 자화상을 그린 후 "로마 남쪽의 해변에서 죽었"다는데 "암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골리앗으로 그려진 카라바지오는 목이 잘린 채 피를 줄줄 흘리고, 오른쪽 눈은 반쯤 감기고, 왼쪽 눈은 치 뜨인 채 여전히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하다. 무언가를 응시한 채, 반쯤 열린 입으로 유언을 하고자 하나, 입만 달싹일 뿐 혀가 이미 말려버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골리앗으로 분한 카라바지오는 내 초상이 아닐까. 횡령과 스캔들과 욕망과 돈을 사랑함과 온갖 왜곡과 불신으로 일그러진 우리의 초상 아닌가. 그래서 보고자 하나 다 볼 수 없고, 말하고자 하나 말할 수 없는, 그렇게 죽어가는 혹은 죽어있는 우리 교회의 초상화를 카라바지오가 400년 전에 의뢰받아 내놓은 것만 같다.

 

다윗이 오른 손에 쥐고 있는 칼에 핏자국이 없다. 화폭엔 보이지 않는 칼끝으로는 골리앗의 목을 자를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 다윗에겐 칼이 없었다. 골리앗의 목을 자른 칼은 골리앗의 칼집에 있던 것이니까.(삼상17:51) 카라바지오 그림 속 다윗 손에 들린 칼엔 피가 묻지 않았고, 성경 속 골리앗의 목을 벤 칼은 골리앗 자신의 칼이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다면, 내 허리에 찬 칼집을 살펴볼 일이다.

 

유난스런 일생을 살고, 비극적인 죽음 직전에 카라바지오는 목 잘린 골리앗으로 분한 자기 자신을 슬픔과 연민으로 바라보고 있다. 슬픔과 연민을 담은 다윗의 눈으로 마지막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싶었던 걸까.

 

마태에 의하면, 예수가 다윗의 후손이다. 목 잘린 골리앗 같은 나를 우리를, 예수께서 슬픔과 연민으로 보아 주시는가. 소년 다윗의 슬픔과 연민 덕에 아직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가.

 

-목회와신학 2020년 3월호-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김상근, 카라바조 이중성의 살인 미학, 21세기북스, 2016

이유리, 화가의 마지막 그림, 서해문집, 2016

김영준, 그림 속 성경 이야기, 제이앤제이제이,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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