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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通 민들레(사랑방)

바닷가 수도승_프리드리히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6.04.11|조회수31 목록 댓글 0

검은 바다에 닿아 하늘마저 검푸르다. 죽은 지 한참 지나 검푸르게 변한 몸처럼, 하늘마저 검푸르다. 하늘이 죽은 걸까. 지금 바리새인들이 법도 양심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해 버리는 건 하늘이 죽은 걸 알아차렸기 때문일까. 수도승이 검은 바다 앞에, 죽은 하늘 아래 가만히 서 있다. 길을 잃은 걸까, 기도하는 걸까. 바다를 향해 기도하면 옛날 모세가 걸었던 길이 열릴까. 쪽배 한 척 보이지 않는데 그는 모세처럼 수평선 너머로 가보려는 것일까. 그는 모세처럼 바다를 마른 땅 같이 걸어가게 될까.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김훈, 바다의 기별).

 

검은 바다 앞에 서서 수평선 너머를 포기하지 않는 건 사랑이겠다.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다가오지 않는 것들이 과연 사랑이겠다. 수도승은 저렇게 사랑하며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눈빛이다. 등대다. 등대가 돼 난바다 너머를 바라본다. 난바다 너머에서 오는 배를 기다린다. 예수께서 사람을 세상의 빛이라 하심은 하늘마저 검게 물들여버리는 검은 바다 너머를 전망하라는 의미요, 검은 바다 너머에서 오는 배를 맞이하는 등대가 되라는 뜻이다.

 

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 The Monk by the Sea, 110×171.5cm, Alte Nationalgalerie

 

짙은 바다 앞에 선 수도승이 작다. 작은 몸으로 멀리 수평선을 전망한다. 그 작은 몸으로 해변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본들, 수평선 너머로 갈 수도 없고 다시 오는 이들을 위한 빛을 뿜을 수도 없다. 그저 해변에 서서 바라볼 뿐이다. 수도승의 행위는 유의미할까. 무용해도 유의미한 것일까. 검은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수평선 너머를 넘겨다보는 건 분명 사랑이다. 밤을 응시하는 건 사랑이다. 사랑이면 무용해도 유의미하다.

 

수도승이 등대처럼 서 있는 바닥이 거칠어 보인다. 나무나 풀도 없다. 사랑이면 함께 수평선 너머를 바라는 사람들이 옆에 설 것이다. 사랑으로 풀도 나무도 없는 해변에서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고, 검은 바다보다 짙게 숲이 될 것이다. 검은 바다보다 짙은 숲이 되거든, 수평선 너머에서 검은 바다를 건너온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오시거든, 부릅뜬 눈으로 수평선 너머를 바라며 서 있는 여기가 바로 가야 할 수평선 너머다. 거기가 여기다. 여기가 거기다.

 

암초 위 등대처럼 검은 바다 너머를 응시하며 여전히 서 있다면, 길을 잃지 않았다. 한 걸음도 더 내딛지 못한다 해도 길을 잃은 건 아니다. 수평선 너머를 비추려는 등대는 가만히 서 있어도 길을 잃은 게 아니다. 여기에서 거기에 닿고자 함이다. 거기에서 여기로 오시는 이를 뵙고자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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