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 잠들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야곱에게 날개 달린 이가 찾아왔다. 무릎 높이 돌덩이를 받침점, 그리고 오른 허벅지 근육을 힘점 삼아, 야곱의 허리를 돌려 꺾는다. 게다가 빨래 돌려 짜듯 왼손을 찍어 누른다. 날개 없는 사내는 고통스러워 눈을 감고 있다. 너무 고통스러워 신음도 못 내지 싶은데, 표정은 덤덤하다. 고통스럽지만, 고요하다.
20년 전 야곱은 에서의 배고픔을 이용해 장자권을 빼앗았다. 야곱은 또 아버지를 속여 에서의 복을 빼앗았다. 빼앗은 야곱과 빼앗긴 에서는 원수가 됐다.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창 27:41).
형 에서가 살고 있을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 야곱은 두려움에 낮에도 걷지 못한다. 낮을 피해 밤에 가족과 재산을 이동시켰지만(창 32:22), 정작 자신은 밤에도 걷지 못한다. 형과 관계가 깨져 있어서 야곱은 멀쩡한 다리가 있어도 복 받아 얻게 된 재산을 따라가지 못한다.
복을 받은들, 복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관계를 파괴하면서 얻은 것들은 복이 아니라 화가 될 수 있다. 그런 복은 어쩌면 도로 잃어버릴 것이다(창 32:11). 모든 것을 얻어도 관계가 깨지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음을 야곱은 20년이 지나서야 깨닫는다. 낮에는 물론이거니와 밤에도 걷지 못하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신다. 걷지 못하는 야곱의 엉덩이뼈를 치신다(창 32:25). 무서워 걷지 못하던 야곱은 엉덩이뼈마저 어긋나, 걷는 게 더 어려워졌다. 절뚝거리기까지 하는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창 32:31).
하나님은 야곱에게 보호와 귀향을 약속하신 적이 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창 28:15).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은 야곱을 떠나지 않으셨고, 다시 고향 땅으로 데려오셨지만, 야곱은 들어가지 못한 채 주저앉았다. 하나님은 특단의 조치로 야곱을 절뚝거리게 하신다. 뼈를 상해 절뚝거리게 됐을 때 다시 축복받고,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고 고백한다. 절뚝거리기 전엔 두려워 갈 수 없던 길을, 절뚝거리니 갈 수 있다. 그리고 형을 만난다.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 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창 33:4).
20년 동안 잃어버렸던 복이 절뚝거리는 야곱에게 다시 찾아온다. 원수였던 형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이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80년이 차 간다. 80년 동안 잃어버린 복, 회복하러 절뚝거리며 가자. 북으로 남으로 절뚝거리며 가자. 하나님, 남과 북이, 북과 남이 어긋난 뼈로 절뚝절뚝 마주 걷게 하소서. 목을 어긋 맞추며 서로 울게 하소서. ‘긴긴밤’ 끝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