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테 콜비츠(Kthe Kollwitz, 1867-1945)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아들을 잃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손자를 잃는다. 더 이상 전쟁에서 청년들이 죽어선 안 되기에 암탉이 날개 아래 병아리를 숨기듯, 아이들을 엄마가 품에 안는다. 아이들을 감싼 손목이 굵고 팔뚝이 단단하다. 굵은 손목과 단단한 팔뚝은 총을 들 게 아니라, 씨앗 같은 생명을 안아야 한다.
삼손 같은 사사기 속 영웅은 영화나 그림의 주인공이 되곤 한다. 영웅담을 따라가다가, 지나치는 이름이 있다. 극적인 이야기가 없어 지나치기 쉬운 사사 ‘돌라’(Tola)를 생각한다. 돌라는 ‘이스라엘을 구원’했고(삿 10:1), 23년 동안 이스라엘을 지켰다(삿 10:2).
돌라를 쉬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돌라가 사사이던 때 시끄러운 전쟁이 없었기 때문이요, 전쟁이 없던 이유는 돌라가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 순종하게 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사들이 전쟁 영웅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돈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돈의 신을 섬길 때, 하나님은 전쟁을 통해 그들을 심판하셨다(삿 3:7-8; 3:12; 4:1-3; 6:1-6; 10:6-7; 13:1). 사사가 전쟁 영웅이 된 것은, 백성들을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에훗, 삼갈, 드보라, 기드온, 입다, 삼손 같은 전쟁 영웅은 그런 점에서 영웅이라기보다 무능했던 게 아닐까.
진정 유능한 지도자는 전쟁으로부터 백성을 구하기 전에, 전쟁을 경험하지 않게 한다. 전쟁 같은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아,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없는 지도자가 좋은 지도자다. 돌라는 비록 영웅이 되지 못했지만, 백성들은 그래서 평안했다. 돌라가 다스리던 23년 동안 시끄러운 사건도 없었고 짜릿한 승전 이야기도 없었기 때문에, 적을 것이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구원했다 평가받지만, 화려한 이력 없이 밋밋한 인생을 살았던 지도자, 그래서 성경에 이름을 남겼지만, 사람들 기억에는 희미한 사람, 그렇게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 돌린 인생을 살아 낸 돌라야말로 영웅이겠다.
“아무리 좋은 전쟁도 가장 나쁜 평화보다 나을 순 없다.”
열일곱 살에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전쟁의 실상을 목격했던 베트남 작가 바오닌(Bo Ninh)의 말이다. 때로 전쟁은 부득이하지만(눅 12:51), 하나님께서 전쟁을 기뻐하시진 않는다. 하나님은 ‘여호와 샬롬’(삿 6:24), 평화의 하나님이시다. 크고 작은 전쟁이 없어 오히려 적을 거리가 없는 게 기적이다. 구원했음에도 적을 거리가 없는 ‘돌라’의 인생이야말로 기적으로 가득했다. 구원했으나 이야깃거리가 없는 것이야말로 영웅본색(英雄本色)이다.
전쟁을 향해 부릅뜬 어머니의 눈에서 더 이상 눈물 흐르지 않게 하소서. 모든 전장에 평화가 흐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