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여 주듯,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장차 일어날 일을 전해 준다. 검은 파도에 아기들이 휩쓸려 간다. 이들을 보며 파도 위를 걷는 이가 그림 상단 중앙을 지배한다. 비둘기 모양의 황금빛 성령이 검은 바닷속으로 날아들 태세다. 십자가에 매달렸기에 결국 십자가 홀을 든 사람들이 하늘 보좌를 차지할 것이다. 그림 상단 중앙을 지배하는 이가 바로 마리아가 잉태하여 낳을 예수일 터다.
마리아는 오른 손바닥을 지각으로 세워 가브리엘의 제안을 막아서듯 거절한다. 영화는 해피엔딩이지만, 거기에 이르는 과정에 아이들의 죽어나가는 것을 거쳐야 한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 거절하는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이 이렇게 말했다.
「천사가 집 안으로 들어가서 마리아한테 말했다. “안녕하세요, 특별히 사랑받는 마리아! 주님이 그대와 함께하십니다.”」(눅 1:28).
하나님이 함께하시다니, 그렇다면 더욱 받아들일 수 없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인사는 용사들에게나 해당하던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말했다. “여호와께서 그대와 함께하십니다, 용감한 사람인 그대!”」(삿 6:12).
「여호와 그분이 자네 앞에서 걷는 분이시네. 그분이 자네와 함께 계실 것일세. 자네를 저버리지도 않고 내버려두지도 않으실 걸세. 두려워하지도 말고 겁먹지도 말게나.」(신 31:8).
기드온이나 여호수아 같은 용사가 들어야 했던 “하ᄂᆞ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여자 마리아가 선뜻 받아들일 순 없다. 기도하다가 벌떡 일어나 오른 손바닥을 수직으로 들어, 거부한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겠다는 말씀을 들은 기드온과 여호수아는 전사(戰士)였다. 기드온과 여호수아는 전장의 선봉에 서야 하는 전사였기에 “하ᄂᆞ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말씀의 수탁자가 될 만하다. “하ᄂᆞ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말씀은 처녀 마리아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씀이다. 그래서, 마리아는 어리둥절하다.
「마리아는 이 말에 몹시 어리둥절하여, 이런 인사말이 무슨 뜻인지 두루 생각해 보고 있었다.」(눅 1:29).
전사가 된다는 것은 마리아의 인생 계획 속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마리아는 영적 전쟁에 참전해야 하고, 선한 싸움을 감당해야만 한다(엡 6:12; 딤후 6:12). 하ᄂᆞ님의 아들을 출산할 마리아는 당시 헤롯 대왕과 싸워야 한다. 잔다르크처럼 전투 부대 선봉에 서는 게 아니다. 논개처럼 적장을 껴안고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는 것도 아니다. 마리아가 헤롯 대왕과 치러야 하는 전쟁은 기드온이나 여호수아처럼 무력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전선에 서는 것이라기보다, 도망과 희생을 견디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마리아의 가장 어려운 싸움은 자식보다 오래 살아야 하는 일이었다. 이는 마지막 숨 쉬는 순간까지 끝나지 않을 전쟁이다. 누가 이 싸움에 기꺼이 참전하겠는가. 수직으로 세워진 손바닥을 아랑곳 하지 않으시고 기어이 마리아를 세우신다. 비폭력으로 세워질 “그 나라”, 도리어 폭력에 희생된 자가 왕이 되는 “그 나라”를 건국하는 영적 전쟁의 선봉에 야속하게도 마리아가 징집된다. 어깨는 얇고 목이 긴 마리아를, 전사로 부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