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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 가장 큰 죄_페미니즘설교집_한국예수교회연대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6.06.14|조회수50 목록 댓글 0

설교하려는 게 아닙니다. 온화한 교훈도 아니고, 정밀한 교리도 아니며, 치열한 성서해석도 아닙니다. 제가 지금부터 드리는 말글은 설교가 아닙니다.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설교라기보다 그래서 참회록입니다. 눈물, 콧물 쏟으며 쓴 반성문도 아닙니다. 담담하게 쉽게 쓸 것입니다. 쉽게 쓰는 참회록이라니, 그래서 더 부끄러운 참회록이겠습니다.

 

1997년 제가 다니던 학교에 대자보가 붙었습니다. 동성애 동아리를 모집한다는 공고였습니다. 다른 대학에서 먼저 동성애 동아리가 생겼으니, 선례를 길잡이 삼아 동성애인들이 모여 동아리를 만들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제가 속한 기독교선교단체 한 회원이 반박 대자보를 붙였습니다. 신약성경 로마서에 소개된 죄 목록 중 동성애가 있다며, 대학 내에 동성애 동아리 조직은 불가하다는 주장을 실었습니다. 재반박 대자보가 붙었습니다. 동성애와 동성연애를 구별해야한다고, 동성연애와 동성애를 한 단어로 쓰는 것 자체가 무지를 드러낸다며, 동성애 동아리를 방어했습니다. 다시, 동성애 동아리를 반대하는 대자보를 제가 붙였습니다. 동성애를 취향이라 여기는 측과 동성애를 라 여기는 측은, 가치 판단의 근거가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토론을 해도 평행선을 긋게 될 것이라, 전제부터 다시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학보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학보 지면을 통해 동성애 찬반 토론을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원고를 쓰기로 하고,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어느 기독단체가 공부 모임에서 편찬한 제본 도서를 읽고, 밤새 원고를 써 송고했습니다. 기독교선교단체 회원들은 제 글을 읽고 칭찬해주었습니다.

 

1997년 학보를 찾아보았습니다. 글쓴이로 제 이름이 박혀있진 않으나, 제가 쓴 글이라는 걸 저는 아니까요. 너무도 참담한 수준의 글이라, 읽을 때마다 가랑이 사이에 머리를 집어넣고 싶습니다만, 지난 과오를 구체적으로 고백하기 위해, 그대로 옮깁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정당하다는 말인가?...어느 문화를 막론하고 동성애가 존재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동성애를 정당화시킬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만일 그렇다면 모든 시대와 문화에 걸쳐 존재해 온 살인도 정당화될 것이고, 앞으로 존재할 그 어떤 행위도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인정받아야 한다. 외대학보 68621997324일자

 

살인이라는 행위가 존재하기 때문에 정당화 될 수 없듯, 동성애라는 경향이 존재한다고 해서 정당화될 수 없다고, 나는 썼습니다. 범주의 오류입니다. 동성애는 존재 방식에 관한 것이나 살인은 행위 방식에 관한 것이고, 동성애는 윤리와 무관한 것이나 살인은 비윤리적인 것이라, 논리상 같은 범주에 들지 않습니다.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을 섞어 말하는 것을 범주의 오류라고 합니다. 비논리적인 표현으로 폭언을 한 것입니다. 글을 읽은 당사자가 느꼈을 모욕감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언제든 만날 수 있다면 고개 숙여 사죄하고 싶습니다. 오늘 여기 이 지면을 빌어 먼저 사죄 말씀 올립니다.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당시에 기독교 진리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한 대학생 청년이었습니다. 신 존재,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성경의 권위, 기독교적 이상주의에 대해 무지하면서도 한 치의 의심이 없었던 순수한 복음주의 청년이었습니다. 불사르는 데 나를 내어줄 기회가 있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열정의 과잉으로 들끓던 청년이었습니다. 성서는 문자적으로 어떤 오류도 없고, 성서가 규정하는 모든 내용이 하ᄂᆞ님의 뜻이라 여겼습니다. 성서가 기술되던 당시 상황과 배경이 중요하다 여겼으면서도, 꼼꼼히 공부하는 데 게을렀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성애와 살인을 같은 범주로 섞어 말한 건 단순히 논리의 오류를 범한 것만이 아닙니다. 같은 캠퍼스를 걸으며 공부하는 학우를 살인자라 욕한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었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태복음5:22~23

 

라가ακά비어있는 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바보쯤으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누군가를 바보라고 부른다면, 나보다 열등한 사람으로 여겨 경멸하는 것입니다. 이십 대 대학생일 때, 저는 성소수자를 경멸했겠습니다. 이성애자로서 성소수자보다 우월하다고 착각했겠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모욕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논리의 오류를 범하면서까지 폭력적인 대자보와 칼럼을 마구 썼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진리를 확신하는 건 위험합니다. 내가 지닌 진리를 확신할 때, 나와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존재 방식을 비진리로 판단해버립니다. 그리스도 교리를 따르지 않는 이를 진리에서 떠난 죄인으로 판단하고, 진리를 수호하는 나 스스로가 지적·윤리적으로 우월한 존재라 착각하기 십상입니다. 이런 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정치·경제적 위기를 만나면, 집단을 휘어잡아 다른 집단을 악마화하기도 합니다. 제노사이드가 일어나는 이유입니다. 오직 나와 내가 속한 집단이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확신으로, 다른 집단에 속한 양민들을 학살하던 역사가 흔합니다. 형제를 향하여 라가라 말하는 것이 살인과 진배없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건, 그저 수사적 표현이 아닙니다. 닫힌 체계 속에 흔들림 없는 진리를 품은 사람은, 다른 사람 품속에 뛰고 있는 심장을 도려내는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니까요.

 

영화 콘클라베에서 추기경 로렌스Ralph Finnes가 콘클라베conclave, 추기경들이 모여 교황을 선출하는 회의를 시작하며 이렇게 설교합니다.

 

다른 무엇보다 가장 두려워하게 된 한 가지 죄가 있다면, 그것은 확신입니다. 확신은 연합의 강력한 적입니다. 확신은 관용의 치명적인 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삶의 마지막 자락에서 확신을 갖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채 제9시에 극심한 고통 속에서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27:46 믿음과 의심이 손잡고 걸을 때 우리는 예민하게precisely 살아있습니다. 그저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믿음도 필요가 없겠죠. 의심하는 교황을 허락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하고 실천하는 교황을 우리에게 허락하소서

 

확신은 사람이 닿을 수 없는 가치입니다. 오직 하ᄂᆞ님만이 확신을 지닐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확신에 이르지 못했다면, 어쩌면 하ᄂᆞ님도 확신의 끝을 모르실 수 있습니다.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감히 사람이 확신에 닿고자 한다면, 해 질 무렵 긴 그림자의 꼭대기를 밟으려 애쓰다가 끝내 밤을 맞이할 것입니다.

 

교회가 무엇보다 두려워할 죄가 있다면 오직 이성애만 하ᄂᆞ님의 창조 질서라 확신하는 것입니다. 동성애는 악행이며 성소수자를 죄인이라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런 확신으로 소수자를 희생양 삼아 다수자들의 문제 상황을 떠넘기려는 오래된 인습으로 연합을 이루지 못합니다. 소수자에 대한 관용을 잃어버린 공동체는 결국 다수자들 사이에도 생기기 마련인 틈을 메울만한 관용마저 잊어버릴 것입니다. 생태계에 엄연히 존재하는 다양한 성과 전체인구 중 5% 이상 성소수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성소수자가 죄인이라 정죄하는 건 하ᄂᆞ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믿음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남성과 여성, 양성만 존재한다는 닫힌 질서로 생명의 신비를 노래하긴 어렵습니다. 여성과 남성 외에 수많은 성sexuality이 존재한다고 받아들일 때라야 생명의 신비를 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성도 남성도 아닌 수많은 간성이 존재한다는 인식 없이, 종교적 확신만으로 자기 진리를 자랑하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죄입니다. 영화 콘클라베에서 우여곡절 끝에 레이먼드BrianF.O'Byrne가 교황으로 선출됩니다. 레이먼드는 분쟁 지역에서 활동하는 비공개추기경cardinal in pectore입니다. 교황만 그 존재를 아는 비공개 추기경이라, 다른 추기경들이 교황 후보로 여기지도 않았지만, 콘클라베가 마무리될 즈음 발생한 테러에 대해 대책 회의를 하던 중 감동적인 연설로 추기경들의 표심을 얻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한다고 말할 때 당신은 우리가 누구와 싸운다고 생각하십니까? 뭔가에 미혹되어 오늘 이 끔찍한 테러를 저지른 사람들과 싸운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여기, 우리 모두 각자 마음 속에서 일어납니다. 우리가 증오에 항복해버린다면, 우리가 남성과 여성 모두를 위해 말하는 대신 자기 진영만 편든다면 말입니다. 여러분 사이에 제가 오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고 아마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용서하고 들어주세요. 요 며칠 동안 우리는 좀스럽고 옹졸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가 회의하는 것을 본다면 우리는 그저 우리 자신, 로마, 선거 결과, 권력에 대해서만 걱정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이런 건 교회가 아니에요. 교회는 전통이 아닙니다. 교회는 과거가 아닙니다. 교회는 우리가 다음에 무엇을 행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비공개 추기경 레이먼드가 교황으로 선출됩니다. 임명 절차만 남았을 때, 레이먼드의 진료 기록이 문제가 됩니다. 레이먼드가 포궁적출 수술을 받으려 했거든요. 레이먼드는 외양은 남성이면서 포궁이 있고 염색체가 XX, 성소수자LGBTQ+입니다. ‘순수남성만이 교황이 될 수 있을텐데, 영화 콘클라베에선 순수남성이 아니고, 교황이 생전에 공개 임명하지 않아 교황이 죽은 후에 추기경 자격을 박탈당해야 하는 사람이 새 교황으로 임명됩니다.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되길 기도합니다.

 

이분법으로 세상과 사람을 이해할 때, 이방인이 생깁니다. 이분법으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예수를 따르다가 교회의 반석이 된 베드로도 이분법으로 세상과 사람을 이해했습니다. 예수를 따르다가 옥살이도 죽음도 감수하겠다고 장담하던 열정 가득한 사람이었구요.누가복음22:33 순수한 열정 가득한 사람이 이분법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은 죄인이며, 하ᄂᆞ님은 오직 유대인을 구원하신다는 확신 속에 살았습니다. 확신이라는 가장 큰 죄에 사로잡힌 베드로에게 기회가 찾아옵니다.

 

베드로는 기도하려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때는 오정쯤이었다. 그는 배가 고파서, 무엇을 좀 먹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음식을 장만하는 동안에, 베드로는 황홀경에 빠져 들어갔다. 그는,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퉁이가 끈에 매달려서 땅으로 드리워져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 안에는 온갖 네 발 짐승들과 땅에 기어다니는 것들과 공중의 새들이 골고루 들어 있었다. 그 때에 "베드로야, 일어나서 잡아먹어라"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속되고 부정한 것은 한 번도 먹은 일이 없습니다." 그랬더니 두 번째로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뒤에, 그 그릇은 갑자기 하늘로 들려서 올라갔다. 새번역 사도행전 10:9~16

 

종교는 금기에 기생합니다. 베드로도 특정 음식을 먹어선 안 된다는 금기에 뿌리내린 유대인이었습니다. 기도하다가 배고팠지만, 황홀경 중에 그릇에 담긴 음식이 내려왔을 때 거부합니다. “속되고 부정한 음식을 한 번도 먹은 일이 없는 순수 유대인으로서 금기를 지키는 정결한 사람으로 남겠다는 것입니다. , 금기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것이 유대인 베드로의 긍지였겠습니다. 이방인을 굳이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겁니다. 베드로는 사람을 이분법으로 이해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 알베르 카뮈가 쓴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밝히는 살인의 이유입니다. 이상한 사람입니다. 뫼르소는 재판을 받고 사형을 언도받습니다.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살기란 위험하겠습니다. 함께 살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울타리에 들여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울타리에서 함께 살 수 없는 사람을 이방인L’Étranger, stranger이라 여깁니다.

 

옛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게 구원이 있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 어쩌면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일지도 모르는 이상한 사람에게 구원이 있을 리 없다고 여겼습니다. 모세 율법을 모르고, 할례를 행하지 않는 사람들과 하ᄂᆞ님은 무관한 줄 알았습니다. 옛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은 헐리우드 영화 맨인블랙에 나오는 바퀴벌레 같은 존재였던 겁니다. 영화 맨인블랙에서 이방인alien들은 죄다 바퀴벌레가 사람으로 변하여 등장합니다. 헐리우드의 주인공들은 이방인 바퀴벌레들을 맘껏 죽여 댑니다.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방인이 있다면, 바퀴벌레처럼 죽여도 될까요?

 

바퀴벌레 같은 사람이라도 죽일 순 없습니다. 정말이지 이상한 사람이어서,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바퀴벌레같이 끔찍하다 해도 죽일 수는 없습니다. crime는 분명 죄이고, 끔찍한 죄를 짓는 죄인이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죽일 수는 없습니다. 죄를 죄라 밝혀내는 것도 필요하고, 죄인을 징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죽일 수는 없습니다. 태양이 싫어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라도 사형에 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상하고 잔혹한 이방인으로 당장 판결한다해도 재판에 오류가 있을 수 있고, 하ᄂᆞ님은 누구에게라도 회개할 기회를 주시니까요. 순수한 이분법으로 우월감 가득하던 베드로가 로마 장교 고넬료를 만난 후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방 사람들에게도 회개하여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다11:18 하ᄂᆞ님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유대사람들의 원수 같은 로마 장교와 그 일가에게도 회개하여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시는 분이라는 게 베드로의 새로운 생각입니다. 진리는 이분법에 갇히지 않습니다.

 

당시에 로마 장교는 유대인들의 원수였던 그리스·로마 세계를 대표합니다. 침입자들은 저들의 제사 방식대로, 돼지를 금기시하는 유대인들을 모욕하기 위해 성전에 돼지 피를 뿌리기도 했고, 잔혹한 방법으로 세금을 거둬들였고, 이에 저항하는 이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로마 장교란 종교적으로 혐오스럽고 경제적으로 비정하고 정치적으로 잔인한, 상징적 존재였습니다.

 

로마 장교를 만나고 온 것은 당시 유대인 입장에선 얼마든지 죽어도 된다고 여기던 바퀴벌레같은 사람과 함께 식사한 것이었고, 단지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끔찍한 악한을 이웃으로 맞이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장교와 그 인척들에게 세례까지 베푼 베드로를 향하여 사도들과 유대에 있는 신도들이 일제히 비난 성명을 발표합니다. 사도들과 유대에 있는 신도들이, 이방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왔을 때에,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 "당신은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은 사람이오" 하고 그를 나무랐다.”사도행전11:1~3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회개하여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도 삽니다. 옛 유대인에게 저 김영준 목사는 끔찍한 이방인입니다. 생김새며 피부 색깔이며, 옛 유대인들이 저를 본다면 구원의 징조를 발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외모뿐만 아니라, 옛 그리스·로마 사람들처럼, 저에겐 여전히 육체의 욕망과 아울러 미운 사람을 향한 적의가 있고 돈에 대한 미련과 욕심이 있습니다. 고넬료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자선을 많이 베풀며, 늘 하나님께 기도하려는10:2 외양이 있는가 하면, 권력의 명령을 받으면 어쩔 수 없다는 체념 속에 칼을 휘둘러 사람들을 죽일 수도 약하고 악한 내면도 있습니다. 고넬료처럼, 저에게도 이중성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이중성이 있겠습니다. 이런 이중성을, 좋고 나쁘다는, 선하고 악하다는, 불의와 정의라는 이분법으로 이해할 순 없습니다.

 

회개,란 모순되는 이중성에서 벗어나는 것coming out입니다. 로마 장교에게 회개란, 황제의 부당한 명령과 하ᄂᆞ님의 의로운 뜻 사이에서, 황제가 아니라 하ᄂᆞ님에게 순종하기를 결단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회개란, 전통과 금기에 기초한 편협하고 옹졸한 신념을 넘어 온 세상 모든 사람을 창조하신 하ᄂᆞ님의 신비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얼른 이해되지 않는 신비가 있습니다. 이분법에 갇힌, 그러나 살아있는 신비를 해방시키는 것coming out이 회개입니다.

 

회개한 로마 장교는 로마 사람에게 따돌림당할 수도 있고, 회개한 유대인들은 종교 권력의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로마 장교에게 유대인은 할례를 행하는 야만인이요, 유대인에게 로마 장교는 할례받지 않는 더러운 사람입니다. 로마 장교에게 유대인이란 죽여도 되는 이방인 바퀴벌레였다면, 유대인에게 로마 장교란 죽여야 하는 이방인 바퀴벌레였습니다. 회개란, 이제껏 이방인으로 알았던 사람들을 하ᄂᆞ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동족과 가족에게 이방인 취급 받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뜬금없이 태양이 싫다는 사람과 우정을 나누는 것, 그런 이방인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방인이라 여겼던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방인 고넬료와 그 가족들이 유대인 베드로를 환대합니다.

 

그들은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였다.사도행전10:48

 

교회의 반석이란 뜻을 지닌 이름 베드로는 전통적으로 교회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교회라 바꿔 읽어도 무리 없겠습니다. 소위 이방인들이 교회를 환대하고 싶습니다. 교회가 마땅히 환대의 주체가 되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교회가 환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포용이나 관용을 넘어섰습니다. 시민사회는 성소수자를 이미 이웃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습니다. 국가가 갖춰야 할 법은 미미하고, 제도는 충분하지 않지만, 점점 더 촘촘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1997년 대학생 김영준 수준에 머물러,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형제를 라가라 부르듯, 혐오와 경멸의 설교를 쏟아내기도 합니다. 조직된 교회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막아내는 십자군 노릇을 합니다.

 

하ᄂᆞ님께서 모든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ᄂᆞ님께서 남자와 여자 이성애자를 창조하셨듯, 모든 성소수자LGBTQ+를 창조하셨습니다. 우주에 생명이 있고, 생명이 다양하며, 다양한 생명 중에 사람이 있고, 많은 여자와 남자가 서로 사랑하고, 남자와 여자로 규정되지 않은 다양한 성이 존재합니다. 이는 신비입니다. 신비가 교회를 초대합니다. 신비가 교회에게 머물기를 청합니다. 교회는 그저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는 음성에 귀를 열고 환대에 응하면 됩니다.

 

외대학보(1997년3월27일), 동성애찬성론과 동성애반대론이 학보 지면에 실렸다

 

1997년 대학 내에 성소수자들이 모이는 동아리를 열어,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어 했던 학우의 음성에 귀를 열고자 합니다.

 

동성애 하면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지요? 왠지 모를 거부감, 어두컴컴한 바와 뒷골목에서 사람을 만나고. 반면에 이성애라는 단어를 접하면 이상한 생각은커녕 그 말조차 생소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누는 사랑은 그저 사랑일 뿐인데 굳이 이성애라고 규정하는 게 이상할 정도지요?...게다가 우리는 사람이 아닌지 사람이란 뜻을 가지긴 했지만 멸시를 담아호모라는 칭호가 쓰이지요.

...

저는 이성애와 동성애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사랑이 차별 없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형태는 단순하게 두 가지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그 많은 사람들이 단지 한 가지 방식의 사랑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일까요? 그것이 더 억지가 아닐까요? 동성애의 체계적 억압은 산업혁명 이후 노동력의 수요가 급증되자 자본가들이 노동력을 최대한 뽑아내기 위한 전략에서부터 나왔습니다. 이때부터 동성애뿐만 아니라 자본가의 이윤의 득실여부에 따라 사회 전반의 모든 것들이 재구성되었습니다... 동성애자들은 아이를 못낳고 아이들은 자본가의 미래의 노동력이므로 동성애자들은 그들에게 큰 위협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동성애를 금기시하고 억압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걱정처럼 동성애는 전염병이나 유행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리는 없습니다. 동성애는 자연스런 사랑이기 때문에 억압하거나 차별할 대상이 아닙니다. 나영진 <외대 동성애자모임 ’>, 외대학보 68621997324일자

 

대자보와 지면으로 나영진 학우와 토론 할 때, 일방적인 내 주장을 펴는 데만 집중했습니다. 하ᄂᆞ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 단순하게 두 가지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진실을 깨닫기까지 십수 년이 걸렸습니다.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동성애자모임 ’>이 어딘가에서 이어지고 있다면, 저를 초대해주세요. 만나고 싶습니다. 저에게도 환대할 자격이 있다면, 언제든 오셔요. 저는 김포에 삽니다. 커피 내려 드릴게요.

 

 

 

김영준

책방 민들레와달팽이를 지킨다. 달팽이학교 조합원, 민들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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