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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칼럼

[2026년도][수정칼럼 60] 그리스도라는 기준음에 삶을 조율하다

작성자암행어사|작성시간26.06.16|조회수24 목록 댓글 0

신앙칼럼 | 그리스도라는 기준음에 삶을 조율하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되기 전, 무대 위는 각양각색의 악기들이 내뿜는 불협화음으로 가득 찹니다. 그러나 이 혼돈의 순간은 소음이 아닌, 완벽한 하모니를 향한 '조율(Tuning)의 시간'입니다. 수많은 연주자들은 외부 환경에 가장 흔들림 없고 안정적인 주파수를 가진 오보에의 기준음에 온 신경을 집중합니다. 자신의 명성과 악기의 가치를 내려놓고 그 하나의 음에 소리를 맞추어 나갈 때, 비로소 천상의 교향곡이 시작됩니다. 조율이 없다면 아무리 뛰어난 거장들이 모여도 그저 파괴적인 소음만을 낳을 뿐입니다. 이렇듯 조율은 본 연주보다 짧지만 결코 생략할 수 없는 절대적인 필수 조건입니다.

우리 인생 역시 저마다 독특한 음색을 지닌 하나의 신령한 악기와 같습니다. 대주재이신 지휘자 하나님의 뜻 안에서 아름다운 삶의 화음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나를 꺾고 맞추어야 할 절대적인 '영적 기준음'이 필요합니다. 가치관이 요동치고 세속의 거센 소음이 영혼을 흔드는 이 시대에, 우리가 매일 귀를 기울여야 할 변함없는 진리는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고 하신 말씀처럼, 주님만이 요동치는 세상 속에서 우리 삶의 온전한 중심축이 되어 주십니다. 기준음을 상실한 삶은 아무리 치열하게 살아도 허공을 치는 소음일 뿐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57:7-8)

악기는 연주 중에도 연주자의 손길과 공기의 흐름에 의해 음이 틀어집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 또한 거친 세상 속에서 매 순간 욕망과 염려로 흐트러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조율은 단회적 사건이 아닌, '새벽의 깨움'과 '저녁의 성찰'로 이어지는 지속적인 반복이어야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세상 뉴스보다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먼저 마음에 새기며 영혼의 주파수를 설정하고, 일과를 마치는 저녁에는 십자가 앞에 나아가 과도하게 팽팽해진 교만의 줄을 늦추고 낙심하여 처진 마음의 줄을 은혜로 복원하는 '미세 조율(Fine-tuning)'을 실천해야 합니다.

 

성경 속 다윗은 사울 왕의 추격이라는 극심한 환경적 불협화음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마음을 '확정(고정)'하고 조율함으로 절망을 찬송으로 바꾸었습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던 다니엘 역시 뜻을 정하여 하루 세 번씩 기도의 창을 열었습니다. 그 기도는 바벨론의 거대한 소음을 지우고 하나님의 주파수를 회복하는 완벽한 조율의 시간이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소리에 나를 맞추기를 거부하고 오직 주님께 삶을 맞춘 이들을 통해 하나님은 역사의 위대한 화음을 연주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매일이 하나님 앞에서의 대공연입니다. 나라는 악기가 조금은 낡고 부족할지라도, 매일 말씀과 기도 속에서 영적 기준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 자신을 바르게 조율해 나간다면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내 뜻을 꺾어 하나님의 뜻에 주파수를 맞출 때, 최고의 지휘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평안의 대서사시를 연주해 내실 것입니다. 매일의 철저한 조율을 통해, 주님의 손에 붙들린 거룩하고 고결한 축복의 악기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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