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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예산수정][주일설교 2025.6.1] 사무엘상 20:1~23 다윗과 요나단의 헤세드의 사랑 | 예산수정교회 이몽용목사

작성자암행어사|작성시간25.06.02|조회수94 목록 댓글 0

https://www.youtube.com/watch?v=ubQAc14K0Fw

 2025.6.1(주일) 사무엘상 20:1~23 ‘다윗과 요나단의 헤세드의 사랑’ 예산수정교회 주일설교 이몽용 목사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흔해졌지만, 그 깊이는 점점 얕아지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일상 속에서 매우 자주 사용됩니다. 노래 가사, 드라마 대사, 광고 문구, 심지어 소셜미디어의 짧은 댓글 속에서도 우리는 쉽게 ‘사랑해’, ‘사랑스러워’, ‘사랑받고 싶다’는 표현을 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이렇게 흔하게 쓰이면서, 그 단어 자체는 더 이상 낯설거나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빈번한 사용에 비해, 그 의미와 실천은 점점 더 얕아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끼고 배려하며 희생하려는 깊은 사랑보다는, 감정 중심적이고 순간적인 호감이나 욕구 충족을 사랑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말은 풍성하게 들리지만, 그 안에 담긴 책임과 헌신, 오래 참는 인내 같은 진정한 의미는 종종 사라진 채 껍데기만 남은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처럼 사랑이라는 말은 자주 들리지만, 실제로 그 의미를 삶 속에서 깊이 실천하는 일은 점점 드물어지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사랑을 말하지만, 진정한 사랑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 관계와 하나님의 관계 안에서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설명하는데, 대표적으로 헬라어(그리스어)로 표현된 네 가지 사랑의 유형이 자주 소개됩니다. 각각의 사랑은 그 의미와 깊이에서 차이를 가지며,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입니다. 
첫째, 스토르게 (Storge) – 가족 간의 사랑입니다. 스토르게는 자연스럽게 생기는, 본능적인 사랑. 부모와 자식 사이, 형제자매 간에 나타나는 혈연적이고 애정 어린 사랑입니다. 성경적 예는 로마서 12: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여기서 ‘우애’가 스토르게적 사랑을 나타냄)
스토르게의 특징은 조건 없이 가족 구성원 간에 자연스럽게 흐르는 사랑입니다. 때로는 충돌도 있지만 깊은 유대와 책임감이 있습니다. 
둘째, 필로스 (Philia) – 우정과 형제애의 사랑입니다. 이는 친구나 동료 간에 나타나는 애정과 신뢰,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사랑입니다. 흔히 말하는 "형제애적 사랑"입니다. 성경적인 예는 요한복음 11:3에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 들었나이다.”(예수님이 나사로를 친구로서 사랑하신다는 표현에서 ‘필로스’ 사용하십니다) 요한복음 15:13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필로스의 특징은 공감과 우정에 기반한 관계이며, 상호적이고 감정적인 친밀감이 중심이 됩니다.
셋째, 에로스 (Eros) – 남녀 간의 열정적인 사랑입니다. 이는 육체적이고 감정적인 끌림을 기반으로 한 사랑. 성적인 사랑, 로맨틱한 사랑을 포함합니다.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에로스’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 등장하지 않지만, 아가서 전체가 대표적으로 에로스적인 사랑을 시적으로 묘사합니다.
아가서 1:2에 “그가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에로스의 특징은 강렬한 감정과 욕망을 수반하는 사랑입니다. 이는 결혼 관계 안에서는 축복되지만, 그 외의 상황에서는 절제되어야 할 사랑입니다.
넷째, 아가페 (Agape) – 하나님의 사랑, 조건 없는 희생적 사랑입니다. 
이는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사랑, 상대방의 상태나 반응에 상관없이 베푸는 사랑입니다. 아가페 사랑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사랑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식입니다. 성경적 예로는 요한복음 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여기서 ‘사랑하사’는 아가페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전체에 있는 사랑은 아가페의 성품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의 특징은 자기 중심이 아닌 타인을 위한 헌신과 희생, 용서와 인내를 포함한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가페 사랑의 절정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히브리어 ‘헤세드(ḥesed)’는 성경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며, 신약에서는 헬라어 “엘레오스‘(mercy)와 ”아가페“(사랑)으로 번역되며,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통해 ’헤세드‘의 사랑이 완전히 실천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아가페)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헤세드의 신학적 중요성을 요약해보면
1) 언약적 성격~ 조건을 초월하여 지속되는 관계 중심의 사랑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신실하게 대하시는 방식입니다. 
3) 관계의 책임성~ 말로 만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되는 신실함입니다. 
4) 윤리적 요청~ 인간도 그 사랑을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실천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20장에서 헤세드는 다윗과 요나단 사이의 언약적 사랑을 표현하는 핵심 단어로 등장합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하나님의 언약을 중심으로 한 신실한 사랑을 실천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들을 통해 진정한 ‘헤세드의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그러면 헤세드의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1. 진실을 나누는 관계 – 헤세드의 시작 (1~11절) 
헤세드의 사랑은 진실을 나누는 관계에서 시작합니다. 다윗은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강한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아직 아버지 사울이 그런 뜻을 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이에 다윗과 요나단은 이 문제를 놓고 정직하게 대화하고, 서로의 진심을 나누며, 서로의 상황과 생각을 깊이 공유합니다. 이 대화는 단순한 정보전달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열고 이해하며 책임지는 관계로 나아가는 출발점입니다. 
1) 다윗의 진심 어린 고백: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 (20:1) 
“다윗이 라마나욧에서 도망하여 요나단에게 이르되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내 아버지 앞에서 내 죄가 무엇이기에 그가 내 생명을 찾느냐?’” 다윗은 지금 자신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위기감을 가식 없이, 감정 그대로 드러냅니다. 자존심도 내려놓고, 두려움과 억울함을 요나단에게 솔직히 털어놓는 것이 바로 진실을 나누는 첫걸음입니다. 다윗은 말합니다: "요나단, 나는 억울하고 무섭다. 진심으로 네가 이 상황을 이해해주길 원한다."
2) 요나단의 반응: “그럴 리 없다” → 그러나 대화 속에 진실을 받아들임 (20:2–4)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되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 아버지께서 크고 작은 일을 내게 알리지 아니하고는 행하지 아니하나니, 어찌하여 내 아버지가 이 일만은 내게 숨기리이까?”
요나단은 처음에 아버지 사울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부정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다시 진지하게, 간절하게 말합니다 (v.3):
“너는 모르지만, 네 아버지는 나를 죽이려 해. 너를 슬프게 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숨긴 거야.”
이 말에 요나단은 다윗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두려움을 믿기 시작합니다.
 진정한 관계의 시작은 ‘내가 모르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용기’에서 비롯됩니다.
요나단은 자신의 가족(사울)에 대한 충성심과 친구(다윗)의 고백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다윗의 진심을 우선시하기 시작합니다. 
3) 함께 방법을 찾고 책임지기로 약속함 (20:4)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
요나단은 이제 다윗의 말을 신뢰하고, 그의 아픔에 연대와 헌신의 의지를 밝힙니다.
이 말은 단순한 동의가 아니라, "너의 진심을 들었고, 이제 그 진심을 책임지겠다"는 선언입니다.
4) 다윗의 요청: “나에게 인애(헤세드)를 베풀되, 끝까지 진실되게 해달라” (20:8)
“그런즉 원하건대 당신은 주의 종에게 인애(헤세드)를 베풀라, 이는 당신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언약을 맺었음이라…” 다윗은 단순한 감정적 도움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을 나누었으니, 이제 언약(헤세드)의 관계로 나아가자는 요청입니다. 여기서 ‘인애(헤세드)’는 진실한 마음이 언약으로 연결되는 사랑을 뜻합니다.
진심 없는 약속이 아니라, 진심을 토대로 맺는 언약 — 이것이 헤세드입니다.
5) 요나단의 제안: 둘만의 은밀한 만남 (20:11)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들로 가자 하고, 두 사람이 들로 가니라.”

요나단은 군중이나 눈치를 보지 않고, 진실한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다윗을 따로 부릅니다.
이는 더 깊은 신뢰의 행위이자,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외형이 아니라 내면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헤세드는 진실 없는 관계에서 피어나지 않습니다. 진심을 나눌 때, 신실함은 언약이 되고, 언약은 행동이 됩니다. 진정한 헤세드는 ‘진실’에서 시작됩니다. 요나단은 다윗의 고통과 상황을 부정하지 않고 공감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감추지 않고, 상대의 상황을 함께 짊어집니다. 우리의 관계는 얼마나 진실 위에 세워져 있습니까? 위기의 순간에 외면하거나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아파하고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족, 교회, 친구와의 관계 안에서도 우리는 헤세드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헤세드는 진실을 나누는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말씀을 내 삶에 비추어보며
1. 나는 누군가에게 나의 진심과 두려움, 연약함을 솔직하게 나누고 있는가?
나는 내 감정과 아픔을 감추는 데 익숙하지 않은가?
혹시 "괜찮아요", "문제없어요"라는 말로 진실한 관계를 피하고 있지 않은가?
다윗처럼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사람에게 나의 고통을 말해본 적이 있는가?

2. 누군가가 내게 진실을 이야기할 때, 나는 그 이야기를 품고 들어주는 사람인가?
누군가의 어려움, 두려움, 실수를 고백받을 때, 나는 판단하기보다는 품어주는가?
“네 마음을 이해해”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친구인가, 아니면 “왜 그랬어?”라고 먼저 묻는 사람인가?
요나단처럼 상대의 두려움을 공감하고 보호하는 사람이 되고 있는가?

3. 나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사람인가?
나는 기도할 때, 형식적인 말만 하는가? 아니면 진짜 감정과 상황을 솔직히 드러내고 있는가?
진짜 회개와 감사, 갈망을 하나님께 토해낸 적이 있는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순히 의무적이거나 습관적이진 않은가?

4. 진실한 관계가 깨어졌거나 단절된 사람은 없는가?
회피하거나 피하고 있는 관계는 무엇인가?
그 사람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먼저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을 용의가 있는가?
혹시 누군가가 나에게 마음을 닫은 것은, 내가 그의 진실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은 아닌가?

“헤세드는 진실을 나눌 때 시작됩니다.
감추지 말고 진심을 꺼내놓으십시오.
그곳에서 하나님의 인애와 회복이 시작됩니다.”

적용) 나는 요나단처럼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사람에게 나의 고통을 말해 본 적이 있습니까? 나는 타인의 진심을 잘 들어주는 사람인가? 판단하는가?   
 
2. 언약을 세우는 관계 – 헤세드의 본질 (12~17절) 
헤세드 사랑의 본질은 언약을 세우는 관계입니다.  "헤세드의 본질은 언약을 세우는 관계이다"는 말은 사무엘상 20:12–17의 다윗과 요나단의 대화 속에서 아주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이 부분은 두 사람의 우정이 단순한 감정의 교류를 넘어, 신실한 언약 관계로 나아가는 장면입니다. 
1) 요나단의 언약 선언: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노니…” (v.1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증언하시거니와…” 요나단은 하나님을 증인으로 내세워 언약을 맺기 시작합니다.
이는 단순한 우정 이상의 관계입니다. 이건 감정이나 동정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서로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신성한 약속입니다. 이것이 바로 헤세드의 시작, 즉 언약 관계의 출발입니다.

2) 위험한 상황에서도 책임을 다하겠다는 결단 (v.13) “만일 내 아버지가 너를 해치려는 것이 좋게 여기는 줄을 알면 내가 그것을 네게 알리지 아니하겠느냐? 여호와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요나단은 만일 다윗에게 위험이 닥친다면, 어떤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반드시 알려주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어기면 자신이 하나님의 벌을 받기를 원한다고 할 정도로, 언약에 대한 책임의식을 드러냅니다. 이는 우정이 아니라 생명 걸고 지키는 언약의 사랑, 곧 헤세드입니다.

3) 요나단의 요청: “네가 나와 내 집에 인애(헤세드)를 베풀라” (v.14–15) “네가 여전히 나를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헤세드)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으시는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헤세드)을 내 집에서 끊어버리지 말라…” 요나단은 다윗이 훗날 왕이 될 것을 내다보며,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자손들에게까지 인애(헤세드)를 베풀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여기서 헤세드는 정서적 친밀감이 아닌, 세대를 넘어 지속되는 언약적 신실함입니다. 이것은 잠시 도와주는 호의가 아니라, 미래까지 책임지는 약속, 즉 헤세드의 핵심을 보여줍니다.

4) 언약의 형식적 확정 (v.16)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원수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여기서 두 사람은 말로만 약속하지 않고, 정식으로 언약을 세웁니다. 이 언약은 단지 두 사람 사이의 신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은 약속으로 격상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앞에서 맺는 신실한 관계 — 이것이 바로 헤세드의 본질입니다.

5) 감정이 아니라 헌신으로 맺어진 사랑 (v.17)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요나단은 다윗을 단순히 좋아하거나 연민을 느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것처럼 다윗을 사랑했으며, 그 사랑의 방식은 맹세(언약)로 표현되었습니다.
이것은 감정이 아니라 결단, 감성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 바로 헤세드적 사랑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위해 아버지 사울의 속마음을 파악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서로를 향한 언약을 세웁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왕이 될 것을 알고,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요청하며 인애(헤세드)를 구합니다. 14,15절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헤세드)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헤세드)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인자함”은 히브리어로 ‘헤세드’입니다. 단순한 우정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적 사랑을 뜻합니다. 조건 없이 끝까지 지키는 신실한 사랑,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헤세드는 감정이 아니라 ‘의지’이며 ‘약속’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장차 왕이 되었을 때 자기와 자기 자손에게 ‘헤세드’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는 단순한 우정의 표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의 신실한 사랑을 끝까지 지켜달라는 요청입니다. 요나단은 아버지의 왕위를 포기하면서도 다윗을 도우며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맺습니다. 이 언약은 서로를 살리는 언약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됩니다. 
헤세드는 감정이 아닌 언약입니다. 진실한 사랑은 하나님 앞에서 책임지는 관계로 드러나며, 그 언약은 미래까지 지속되는 신실함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언약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닮아 우리의 관계 속에서도 헤세드를 실천해야 합니다. 
1) 내가 맺은 약속(언약)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가?
하나님과의 언약(믿음, 예배, 순종 등)을 진지하게 지키려 노력하고 있는가?
가족, 친구, 교회, 공동체 안에서 내가 한 약속을 성실히 지키고 있는가?
~ 헤세드는 약속한 대로 끝까지 함께하는 사랑입니다.
2) 내 관계는 순간의 감정인가, 지속될 책임인가?
나의 우정, 결혼, 공동체 관계는 단순한 감정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누군가에게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마음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가?
~ 헤세드는 떠나지 않는 사랑, 지켜주는 사랑입니다.

3) 나는 관계에서 얼마나 오래 참고 신실한가?
실망하거나 불편할 때 그 관계를 쉽게 끊고 있지 않은가?
언약을 지키기 위해 감정보다 책임을 선택한 적이 있는가?
~ 헤세드는 인내하고 책임지는 사랑입니다.
영국의 조지 뮬러는 고아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는 이 아이들이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시듯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헤세드의 사랑입니다. 
 나는 지금 그런 관계 속에 살고 있습니까?”

적용) 나는 하나님과의 언약(믿음, 예배, 순종, 헌금 등)을 진지하게 지키려 노력하는가? 
 
3. 끝까지 실천하는 관계 – 헤세드의 열매 (18~23절) 
헤세드 사랑의 열매는 끝까지 그 언약을 실천하는 관계입니다. 사무엘상 20:18–23에서 요나단과 다윗이 실제 행동을 통해 언약을 실천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통해 아주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이 본문은 그저 약속만 나눈 것이 아니라,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그 언약을 끝까지 지키려는 결단과 실행이 담긴 장면입니다. 즉, 말로만의 사랑이 아닌, 실천으로 증명된 헤세드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보호하기 위한 계획을 세웁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사흘 후 초하루 절기 연회에 참석하지 말고 들에 숨어 있으라고 합니다. 사울의 반응에 따라 다윗의 안전 여부가 결정될 것이며, 그 결과를 비밀 암호 방식으로 다윗에게 전하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이 방식은 다윗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실제적 조치로서, 요나단이 앞서 맺은 언약(헤세드)을 끝까지 실천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헤세드의 열매는 끝까지 실천하는 관계입니다” — 본문을  중심으로 설명하겠습니다. 
1)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요나단 (v.18–19)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일은 초하루인즉 네 자리가 비므로 네가 없음을 자세히 물으리라.
너는 사흘 동안 있다가 빨리 내려가서 일을 행하던 날에 숨었던 곳에 이르러 에셀 바위 곁에 있으라.”
요나단은 단순히 ‘네가 위험하면 알려줄게’라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확한 계획과 은밀한 실행 방법을 제안합니다. 이는 앞서 맺은 언약(헤세드)을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책임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2) 암호를 통한 의사 전달 계획 (v.20–22)
“내가 과녁을 쏘려 함같이 화살 셋을 그 곁에 쏘고 아이를 보내어 가서 화살을 찾게 하여…
내가 아이에게 보라 화살이 네 이쪽에 있다 하거든 너는 돌아오라… 그러나 ‘보라, 화살이 네 앞쪽에 있다’ 하거든 네 길을 가라…”
요나단은 다윗의 안전을 위하여 자신의 감시하에 놓인 상황에서도 비밀리에 정보를 전할 계획을 세웁니다.
이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 언약의 의무를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요나단의 실천적 태도입니다.
말로만 “사랑한다”, “언약을 지키겠다” 하지 않고, 어떻게 그것을 지킬 것인지까지 구체적으로 실행합니다.
~ 이것이 바로 헤세드의 실천성입니다. 진짜 사랑은 행동으로 보입니다.
3) 하나님 앞에서의 언약 확인과 책임 강조 (v.23)
“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원토록 계시느니라 하니라.”
요나단은 이 모든 행동을 단순한 ‘우정’이나 ‘상황적 의리’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이기 때문에 끝까지 실천해야 한다는 신앙적 책임감을 밝힙니다.
이 구절은 ‘헤세드’가 끝까지 실천하는 관계임을 신앙적으로 확증하는 구절입니다.

 헤세드는 위험을 무릅쓰고, 끝까지 지키는 신실함입니다. 다윗은 이후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맺은 헤세드의 언약을 어떻게 지켰나요? 사무엘하 9장에서,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 보호하고 왕자처럼 대우함으로써, 요나단과의 언약을 충실히 지켰습니다. 다윗은 감정이 아닌 언약적 신실함, 헤세드로 사랑을 실천했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사람에게 확장시킨 삶의 본을 보였습니다. 
우리는 쉽게 약속하고, 쉽게 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끝까지 지키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닮아, 말로만이 아닌 삶으로 사랑을 보여야 합니다. 내게 주신 관계 안에서, 책임지는 사랑을 실천합시다. 한 선교사가 오지에서 병에 걸렸을 때, 현지인 한 명이 3일을 걸어 약을 구해 돌아왔습니다. 그는 “당신은 나와 언약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약을 구해온 이유를 말했다고 합니다.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랑, 그것이 헤세드입니다.  

헤세드는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 조건과 상황이 바뀌어도 신실하게 행동으로 실천하는 관계입니다. 
1) 지금 내가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끝까지’라는 말이 어울리는가?
나는 어떤 사람과의 관계를 조건 없이,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고 있는가?
혹시 어려움이나 상처가 있을 때 관계를 끊거나 거리를 두려는 경향이 있는가?

2) 나는 말보다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
“기도할게요”, “도와줄게요”라고 말하고도 실천하지 않은 적은 없는가?
나는 누군가에게 꾸준히, 변함없이, 실제적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

3)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는 신실하게 순종하고 있는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믿음, 예배, 말씀, 헌신 등)을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는가?
내가 약속해 놓고 미루거나 포기한 신앙적 결단은 없는가?

4) 실천을 멈추고 있는 관계는 없는가?
지금 나의 주변에 돌보기를 멈춘 사람, 사랑을 포기한 대상은 누구인가?
내가 다시 ‘끝까지 실천하는 사랑’으로 회복해야 할 관계는 어떤 것인가?

헤세드는 끝까지 사랑하고 지키는 실천입니다.

[큐티인묵상간증]
제가 열 살 때 어머니는 아버지를 간통죄로 고소하고 저와 동생들을 남겨 둔 채 집을 나가셨습니다. 이후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저는 새 어머니와 살면서 친어머니를 기억에서 지웠습니다. 친어머니에 대한 배신감과 미움을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친자식도 아닌 저희 4남매를 키워주시는 새어머니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듯 저는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몰랐기에 부모님의 사랑도 자로 재고 계산했습니다. 그래서 한 때는 독신주의를 고집했습니다. 부모님의 이혼이 제 약점이 되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저와 같은 상처가 있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 시간과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는 이웃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삶은 여전히 계산적이었습니다. 친 어머니와 남처럼 지냈고, 남편이 친아버지와 연락하지 않는 것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이사한 지역에서 저는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나를 예수 믿게 해준 부모가 최고의 부모”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지체들의 나눔을 들으면서 그 뜻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친어머니에 대한 마음의 문도 조금씩 열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처럼, 이해타산없는 지체들의 사랑을 받으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저를 낳아주신 친어머니와 키워주신 새어머니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과 함께 예수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친어머니는 이단에 빠져 계십니다. 그리고 새어머니는 교회 오시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고 계십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해타산적으로 따지지 않고, 이타적인 마음으로 가족과 지체를 섬기겠습니다. 적용하기) 친어머니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해서 안부를 여쭙겠습니다. 남편과 자녀들의 말을 따지지 않고 잘 듣겠습니다. 
적용) 지금 나의 주변에 돌보기를 멈춘 사람, 사랑을 포기한 대상은 누구인가?

 결 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요나단과 다윗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헤세드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관계는 단순한 친구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맺은, 신실하고도 책임지는 언약의 사랑이었습니다.

첫째, 헤세드는 진실을 나누는 용기입니다 (삼상 20:1–11)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의 분노가 두려운 상황에서도 다윗 앞에 섰습니다.
자신이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진실을 숨기지 않고 말하며, 친구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용기를 가졌습니다. 진실을 나누는 것은 때로 관계의 시작이 아니라 시험이 되기도 하지만,
그 시험을 통과할 때 비로소 깊은 신뢰가 자라납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과 교회, 친구 관계 속에서도 감추는 사랑이 아니라 용기 있는 진실 나눔이 헤세드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헤세드는 언약을 세우는 신실함입니다 (삼상 20:12–17)
요나단은 다윗과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 언약은 지금 이 순간의 우정만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미래까지 포함한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은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이런 언약을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시며 맺으신 새 언약, 그 언약은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할 때에도 변하지 않는 신실한 사랑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쉽게 맺고 쉽게 끊어지는 관계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나 헤세드는 "신실함"이라는 단어를 회복하는 관계입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맺은 언약을 끝까지 품는 믿음의 사랑입니다.

셋째, 헤세드는 끝까지 실천하는 책임감입니다 (삼상 20:18–23)
요나단은 위험한 상황에서도 다윗을 보호할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행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윗 역시 그 언약을 기억하여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헤세드를 실천합니다
(삼하 9장: “내가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이처럼 헤세드는 끝까지 지켜내는 사랑, 책임을 감당하는 신실함의 열매입니다.
말만 하고, 감정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도울까?” “어디까지 함께 갈까?” “끝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를 묻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런 헤세드의 사랑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요?
자녀의 장애를 안고 끝까지 함께 살아가는 부모의 헌신 속에서,
환자 곁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지키는 배우자의 사랑 속에서,
자신을 잊고 타인의 아픔을 돌보는 성도의 손길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죄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로 사랑을 완성하신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헤세드를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실을 나누는 용기, 언약을 세우는 신실함, 끝까지 실천하는 책임감,
이것이 헤세드의 사랑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방식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에게, 가족에게, 믿음의 공동체에게 이 헤세드를 살아내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요나단처럼, 다윗처럼, 그리고 예수님처럼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들입니까?
오늘, 나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헤세드 사랑을 회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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