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예산수정][주일설교 2025. 6.15] 사무엘상 28:1~25 사울의 길이 아니라, 다윗의 길로, 예산수정교회 이몽용목사
작성자암행어사작성시간25.06.16조회수78 목록 댓글 0https://www.youtube.com/watch?v=1F44EzqrV78
2025.6.15(주일) 사무엘상 28:1~25 ‘사울의 길이 아니라, 다윗의 길로 ’
사람들은 위기를 만나게 되는 데 위기는 단순한 고난이 아닙니다. 위기를 만나면 평소 숨겨져 있던 신앙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위기는 그 사람의 진짜 믿음을 드러내는 시험대입니다.
평안할 때는 누구나 믿음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이 밀려오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그 사람이 붙잡는 것이 무엇인지, 그가 기대는 대상이 누구인지가 진짜 신앙의 기초를 보여줍니다. 그 때 그 사람의 신앙의 기초가 하나님 위에 있는지, 아니면 다른 것 위에 세워졌는지가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사울과 다윗은 같은 위기를 만났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두 사람의 선택은 위기의 순간에 갈라졌고, 그 결과는 하늘과 땅만큼 달랐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아니라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고, 다윗은 눈물로 무너졌지만 하나님을 힘입어 용기를 얻었습니다. 사울은 무너졌고, 다윗은 회복되었습니다. 사울은 심판받았고, 다윗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 차이는 위기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사람인가, 외면하는 사람인가에 달려 있습니오늘 이 시간 우리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를 분별하고, 사울의 길이 아니라, 다윗의 길로 나아가는 신앙의 결단을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보다 다른 길을 찾은 사울(1~7절)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합니다. 당시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적국으로, 해안지방(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을 중심으로 강력한 연합세력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전쟁 준비(28:1~4)는 단순한 국지전이 아닌, 이스라엘 왕조 자체를 위협하는 중대한 전쟁이었습니다. 블레셋은 북쪽 믹마스에서 길보아 산까지 진군했으며, 사울은 그 앞에서 크게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28:5).
블레셋과의 전쟁이 다가오고, 선지자 사무엘은 죽고, 하나님의 응답은 들리지 않자 사울은 극심한 두려움에 빠집니다. 5절에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고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제사장도 선지자도 사실상 없는 상태였습니다. 사무엘은 죽었고, 사울이 제사장 아히멜렉과 제사장들을 살해한 일(사무엘상 22장) 이후, 하나님과 소통할 공식적인 통로가 사라진 것입니다.
6절에서도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응답도 받지 못합니다. 여기서 꿈은 개인적 계시며, 우림은 제사장적 결정 도구이며, 선지자는 하나님의 대변자입니다. 이 모든 경로가 막힌 상황에서 사울은 영적 패닉 상태에 빠져 금기된 초혼의 방법, 곧 신접한 여인을 찾습니다.
이 시기 이스라엘은 가나안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율법 질서를 세워가던 과도기였습니다.
이방 문화에서는 초혼, 점술, 접신 등이 흔한 관습이었고, 블레셋 사람들도 이런 종교적 풍습을 많이 따랐습니다.
* 무속인의 급증 : 정부 및 연구기관 추산으로 대한민국에서 활동 중인 무속인 수는 30만 명에서 80만~100만 명까지 다양하게 추정되고 있습니다. 정식 등록자는 약 30만 명, 비등록자를 포함하면 최대 100만 명으로 본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사주·타로 등 무속·미신 행위를 경험했다”는 무종교인의 비율은 40%로, 일본(16%)이나 베트남보다 훨씬 높은 수준입니다. MZ세대와 도시 거주자 사이에서 무속에 대한 신뢰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금융 불안, 주택 문제, 취업난, 저출산 등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영적 상담’에 기대고 있습니다. 많은 국민이 현실의 불안을 해결하려 무속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신앙공동체는 기도와 말씀, 상담을 통해 성도들이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을 먼저 찾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엄격히 금지하셨고, 사울 자신도 초기에는 신접한 자들을 추방했었습니다(28:3). 그런데 결국 자신이 금지했던 길로 가는 영적 퇴보의 아이러니가 이 본문에서 나타납니다.
사울은 다른 길을 찾습니다. 7절에서 ‘신접한 여인’을 찾습니다.
신접한 여인을 찾음은 하나님이 명백히 금하신 일입니다(레20:6, 신18:10~12).
위기에 처하자 이제 자신의 말과 신앙을 저버린 모습을 보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도 위기 앞에서 기도응답이 없다 해서 무속이나 미신, 비성경적 상담에 의존하는 경위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보다 사람의 조언을 우선시합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질수록, 인간은 두려움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듭니다. 위기 중에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통로를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사울의 길’입니다.
다윗도 사울 못지않은 위기를 경험했습니다. 사울에게 쫓기며 수년간 도망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시글락에서는 모든 가족과 재산을 잃은 위기도 겪었습니다(삼상 30장). 자신을 도우려던 사람들마저 돌로 치려는 상황도 있었습니다(삼상 30:6).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피했습니다. “다윗이 심히 답답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삼상 30:6). 그는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져오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묻고 기다렸습니다(삼상 30:7–8).
그는 기도로 시작하고, 응답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었습니다.다윗은 응답이 늦거나 이해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침묵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언제까지 기다리리이까” 탄식도 하지만(시 13편), 결국 다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노래합니다. 우리의 참된 힘은 하나님께 응답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고 기다리는 믿음에 있습니다.
[큐티인 묵상간증, 신접한 인터넷 정보, 김영억]
10여 년전 저는 갑자기 시작된 복부 통증으로 몇 달 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다 병원에서 ‘소화장기 기능장애’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완치가 되지 않는 질병이란 의사의 말에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이후 저는 하나님의 손길로 치유되길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아픈 사람들을 보며 ‘자기 몸 하나도 관리하지 못한다’고 정죄한 것을 회개했습니다. 일상을 회복하고자 꾸준히 식단을 관리하고 운동도 하니 통증이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아내가 건강검진을 받다가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저는 두려워서 마음이 크게 떨렸습니다(5절). 그리고 암 정보를 얻고자 인터넷을 검색했습니다. 신접한 여인을 만나려고 변장한 사울처럼, 저도 아내의 암이 낫기만 바라는 기복적인 마음으로 같은 질병을 앓는 환자들의 투병담을 수집했습니다(8절). 하지만 그럴수록 염려와 불안만 더욱 커졌습니다. 상태가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음을 알게 되어 더 깊은 두려움에 빠져든 것입니다(20절).
그제야 저는 사건이 왔을 때 말씀으로 하나님께 묻지 않은 저의 우매함이 깨달아졌습니다.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를 활용하고 좋은 병원과 의사를 만나면 암을 고칠 수 있다며 세상을 의지한 저의 불신앙도 보게 되었습니다. 이후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아내의 암 사건을 나누며 저의 기복신앙을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신접한 여인을 찾듯 인터넷 검색하는 것을 멈췄습니다. 그 대신 말씀에 귀 기울이고 지체들에게 기도제목을 나누며 아내의 투병생활을 통과했습니다. 덕분에 아내의 건강도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건강 우상을 섬기며 두려움과 절망에 빠져 있던 저를 건져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날마다 말씀으로 하나님께 묻고 공동체에 잘 나누며 가겠습니다. 적용하기) 1. 질병으로 두려워하는 분들에게 저와 아내의 질병 고난을 나누겠습니다. 2. 환자의 경계를 잘 지키고, 두려운 마음이 들 때면 그날 큐티말씀으로 묻고 기도하겠습니다.
적용) 하나님의 응답이 없다고 느낄 때, 나는 기다리는 대신 조급하게 다른 방법을 택하고 있지 않습니까?
2. 자신의 뜻을 고집한 사울(8~19절)
사울은 변장을 하고 신접한 여인을 통해 사무엘의 영을 불러올 것을 요구합니다(8절). 사무엘의 영이 나타나자(12절), 사울은 엎드립니다.
사무엘상 28장은 성경에서 가장 신학적으로 논쟁적인 본문 중 하나입니다.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통해 죽은 사무엘의 영을 불러내고, 사무엘이 실제로 나타나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는 장면은 해석자들 사이에서 오래도록 큰 논쟁거리였습니다.
이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선 크게 세 가지 관점으로 나뉘는 학자들의 견해, 그리고 오늘날 성도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할지에 대한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 신학자들의 대표적 세 견해
✴️ 견해 1. 실제로 사무엘이 나타났다는 입장 (전통적/보수적 견해)
주장: 죽은 사무엘의 영이 하나님의 특별한 허락에 의해 실제로 나타났다.
사무엘의 말(28:16-19)은 정확히 하나님의 뜻과 부합하며, 이미 생전에 했던 예언(사무엘상 15장 등)과 일치한다. 이 사건은 무속 행위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이루어진 경고적 사건으로 본다. 대표 학자: 매튜 헨리(Matthew Henry), 찰스 라이리(Charles Ryrie), E. J. Young, 존 맥아더(John MacArthur)
장점: 성경 본문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함.
한계: 신접한 여인의 초혼 행위가 효과를 발휘했다는 식으로 오해될 수 있음.
✴️ 견해 2. 속임수이자 환각이라는 입장 (자유주의적 견해)
주장: 신접한 여인이 연기한 것에 불과하며, 사울은 공포와 죄책감 속에서 환각 상태로 사무엘을 보았다고 본다. 사울의 죄악과 심리적 불안이 사무엘의 형상을 보게 만들었다는 심리학적·합리주의적 해석.
대표 학자: H. P. Smith, 일부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들
장점:초혼 행위 자체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무속의 정당화 위험을 피함.
한계: 성경 본문에서 신접한 여인이 놀라고(28:12), 사무엘의 이름이 분명히 나오며, 예언이 실제로 성취되었음을 설명하기 어렵다.
✴️ 견해 3. 사탄적 영이 사무엘을 흉내 낸 것이라는 입장
주장: 사탄이나 악령이 사무엘의 형상으로 나타나 사울을 더욱 절망에 빠뜨리려는 영적 속임수를 행했다는 견해.하나님은 이미 응답을 거부하셨기 때문에, 이 초혼의 결과는 하나님이 아닌 사탄의 역사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표 학자: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칼빈(John Calvin)
근거: 하나님은 죽은 자와의 교통을 금지하셨기에, 죽은 자가 다시 말하게 허용하셨을 리 없다고 판단.
영혼을 부른 것이 아니라 사울이 심판을 당하기 위한 허락된 시험일 수 있음.
장점: 하나님의 계시 질서와 초혼 금지를 지키는 해석.
한계: 성경 본문은 "사무엘"이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음(28:15-16 등).
> 칼빈을 위시한 대부분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취하는 해석은 유령 따위가 사무엘의 영을 흉내 내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14절에 "사단도 자기를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다"고 했으니 이런 일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입니다.
또 사도행전 16장 17절에서 빌립보의 귀신들린 여종, 즉 점쟁이 여인이 사도 바울 일행을 보고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말하는 장면은 귀신의 영도 그 말 자체는 옳을 때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어떤 경로이든지 간에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사건의 배후에 계셔서 사울 왕에게 그의 종말을 선고하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 2. 오늘날 성도들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 신학적 균형 ~ 본문은 죽은 자와의 접촉을 옹호하거나 장려하는 본문이 아니고, 오히려 사울이 하나님께 외면받은 상태에서 영적으로 얼마나 추락했는지를 드러내는 경고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잠시 허락하셨다고 해도, 그 동기는 무속적 요청에 응답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울의 심판을 선포하기 위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 발현입니다.
🛐 오늘날의 적용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이 없다고 해서 비성경적 방식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자 무속적 방법으로 길을 찾았고, 결국 죽음을 맞았습니다.
죽은 자와 교통하려는 시도는 모두 명백한 죄이며, 영적 미혹의 통로가 됩니다. (신명기 18:10-12)
신앙은 ‘응답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 맺는 것’이 핵심입니다.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길러야 합니다.
현대 사회의 무속 열풍에 대해 분별력을 가지고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울처럼 신앙의 겉모습은 있으나 실제로는 하나님과 멀어진 삶은 결국 파멸로 이어집니다.
사무엘을 부른 것에 대한 여러 가지 신학적인 해석들을 살펴보았는데, 어쨌튼 사무엘은 그에게 이전과 동일한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를 선포합니다(16~19절). 18~19절에서 사무엘은 과거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던 아말렉 사건과 지속적인 불순종을 지적하며, 그 결과로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선언합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불안을 해소할 답을 원했습니다. 사무엘은 분명히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다"(16절). 사울은 이미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뜻을 꺾지 않고 억지로 영적인 해결책을 찾으려 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응답만 들으려는 자는 결국 영적으로 무너지는 ‘사울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다윗도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항상 하나님의 뜻을 묻고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사울을 죽일 기회가 주어졌을 때도 하나님의 타이밍을 존중하며 기다립니다(삼상 24장, 26장).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방식과 때로만 응답받으려 한다면, 그것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이 때로 자신에게 불리하게 보여도 항상 묻고 기다리는 태도를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심판이 아니라 회개의 기회일 수 있습니다. 사울은 이 기회를 놓쳤습니다. 신앙생활은 내 뜻을 관철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삶입니다.
적용)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나는 그 침묵 속에 회개합니까, 아니면 조급함으로 다른 길을 택합니까? 기도와 말씀 외에, 내 삶 속에 ‘내 방식대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없습니까?
3. 절망과 무기력에 빠진 사울(20~25절)
하나님이 이미 말씀하신 대로 최후를 맞을 것이라는 예고를 들은 후, 사울은 완전히 낙심한 채 완전히 땅에 엎드러집니다(20절). 처음에 말씀을 들었을 때 돌이키지 않고, 사무엘이 죽은 후, 신접한 무당을 찾아간 것은 사울 자신을 망하게 한 결정적인 잘못입니다. 이런 사울은 지금 육체적으로는 굶주림으로, 정신적으로는 두려움과 절망으로, 영적으로는 하나님과의 단절 상태입니다. 오히려 사울이 철저히 금지했던 신접한 여인이 그를 위로하고 음식을 제공합니다(21~23절). 이제 사울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 금지된 존재에게 의지하고 도움을 받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사울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사무엘의 예언대로 죽음을 향해 걸어갑니다(24~25절). 그는 죄 앞에서 무너졌으나,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사울의 마지막 모습은 하나님 없이 결정하고, 하나님 없이 식사하고, 하나님 없이 떠나는 인생입니다.
반면 다윗의 길은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다윗은 실패했지만 회개할 줄 알았습니다. 밧세바 사건(삼하 11장) 이후, 나단 선지자의 책망 앞에서 즉시 회개했습니다(삼하 12:13). 시편 51편은 다윗이 밧세바 사건 이후, 선지자 나단의 책망을 받고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며 지은 대표적인 참회의 시입니다. 이 시는 다윗의 진실한 고백과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절절한 기도로, 회개와 회복의 본이 됩니다.
1절~2절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끔히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10절~12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7절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이 시편은 다윗이 비록 큰 죄를 범했으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숨기지 않고 철저히 회개하며 돌아섰기에,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회복될 수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시편 51편에서 보여주듯, 다윗의 중심은 늘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방향에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길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 없는 두려움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며, 결국은 파멸로 이끕니다 반면 다윗의 길을 걷는 자는 자신의 연약함과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죄를 깨달았을 때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적용) 나는 실패하거나 두려운 상황에서 어디로 향합니까?
결 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무엘상 28장 말씀을 중심으로 "사울의 길이 아니라, 다윗의 길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선 사울의 길을 어떤 길이었습니까? 사울의 길은 하나님을 외면한 길입니다.
사울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되었지만, 반복된 불순종과 자기중심적인 판단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감정과 사람의 시선을 우선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위기 앞에서 하나님의 침묵에 참지 못하고, 율법으로 금한 신접한 여인을 찾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는 회개하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의 응답도, 임재도 잃은 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사무엘상 28:6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그러면 다윗의 길은 무엇이었습니까? 다윗의 길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다윗 역시 실패하고, 때로는 두려움에 빠지고, 때로는 죄도 범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위대함은 죄가 없음이 아니라, 죄를 깨달았을 때 하나님께로 돌이킨 회개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그는 늘 하나님을 의지했고,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들며 힘을 얻고,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사무엘상 30:6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오늘 말씀을 우리의 신앙생활에 적용해 봅시다.
오늘 우리는 누구의 길을 걷고 있는가?
위기의 순간, 나는 누구를 먼저 찾는가?
사람의 방법인가, 세상의 조언인가, 아니면 하나님인가?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 나는 기다릴 수 있는가?
침묵도 하나님의 역사임을 믿고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이 있는가?
실수한 이후, 나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돌이키는가?
다윗처럼 회개하고 은혜를 구하는가, 사울처럼 고집하며 외면하는가?
“내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시편 62:5)
오늘 우리 모두는 매일의 선택 앞에 섭니다.
사울처럼 하나님을 외면하고 자기 뜻을 따라갈 것인지,
다윗처럼 실수 속에서도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인지,
그 선택이 우리의 삶의 방향과 결말을 결정합니다.
오늘도 ‘사울의 길’이 아니라, ‘다윗의 길’로 돌아가는 성도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