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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수정교회 ][새벽설교 2022.12.27(화)] 스바냐 1:1~13 여호와앞에 잠잠하라 이몽용목사 예산수정교회

작성자이몽용|작성시간22.12.27|조회수131 목록 댓글 0

https://youtu.be/cRT3NmWOEuM

2022년 12월 27일(화) 스바냐 1:1~13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라' 새찬송가 515장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오늘은 스바냐 1:1~13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간단히 살펴보면 유다왕 요시야의 시대에 선지자 스바냐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합니다. 여호와께서 땅 위의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고 하십니다. 유다의 우상숭배 때문에 여호와께서 심판을 준비하여 악인들을 벌하실 것이며, 그 때 그들의 재물은 노략되며 그들의 집은 황폐해 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스바냐서의 기록자인 스바냐는 히스기야 왕을 고조할아버지로 둔 왕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최고 기득권층인 스바냐를 당신의 선지자로 부르십니다.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은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스바냐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1~6절 말씀에 나타난 것처럼 ‘하나님이 땅 위의 모든 것을 진멸할 것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3절에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땅 위에서 멸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본문 3절에 나타난 것처럼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창조 때의 역순으로 피조물이 진멸하겠다고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유다 백성이 창조주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스바냐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유다의 16대 요시야 왕 때였습니다. 요시야 왕은 유다 에서 선한 왕 중의 왕이었지만 그 시대에 살던 백성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므낫세 왕의 영향력 때문입니다. 므낫세는 요시야의 할아버지로 유다 왕 중에 가장 악한 왕 중에 왕이었습니다. 그는 왕이 되자 바알의 제단을 쌓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며, 점치고 사술을 행하며, 여호와와 말감을 동시에 섬기는 등 혼합종교 정책을 실시해 그것으로 인해 결국 유다가 심각한 우상숭배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그가 유다의 최 장기집권을 한 왕이라는 점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를 통틀어 통치 최 장수의 왕이 바로 므낫세입니다. 그는 무려 55년간을 유다와 예루살렘을 다스렸습니다. 불행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특심이어서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왕인 히스기야는 29년, 요시야 왕도 31년 밖에 다스리지 못했는데 가장 악랄한 왕이 가장 오랫동안 통치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죽고 불과 2년 후 그의 아들인 아몬이 암살되고, 요시야가 왕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 시대는 므낫세의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거의 많은 백성들은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55년간 내려온 사회 풍조로 말미암아 타락의 정도가 극심했던 것이지요. 그 때 개인들이 하나님을 믿기는 무척 어려웠을 것입니다. 스바냐 같은 왕족이 선지자로 부름을 받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인간의 범죄로 온 땅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어저께 아시아 경제 신문란에 ‘지구촌 최강 한파·폭염, 일상화 된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떴습니다. 지구촌 곳곳이 최강 한파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가 점점 심해지면서 여름에는 폭염이, 겨울에는 한파가 일상화 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을 멸절하고 오직 여호와만 따를 때, 모든 피조물이 함께 영광의 자유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적용) 하나님과 함께 우상을 섬기는 내 속의 혼합주의는 무엇입니까? 내가 똑바로 설 때 나의 가족과 지체와 이웃이 행복학 되는데, 혹시 내가 똑바로 믿음안에서 서 있지 못해 가족과 지체와 이웃이 고통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둘째로 7~9절에서 스바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벌하리라’는 말씀입니다. 9절에 “그 날에 문턱을 뛰어넘어서 포악과 거짓을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을 내가 벌하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 우리 피조물은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모든 피조물은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진멸하시리라는 말씀 앞에서 잠잠해야 합니다. 7절 말씀에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열렬히 섬기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동시에 안목의 정욕을 향해 손을 펴서 경배하며 세상성공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은 잠잠해야 합니다. 수도원에서는 일주일에 하루, 침묵의 날이 있습니다. 그 날은 종일 말하지 않고 수도사들이 서로 만나도 눈인사만 나누는 날입니다. 말을 하지 않을 때에 하나님과의 대화가 깊어집니다. 평소에 너무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는 날을 만든 것입니다. 말을 하고 있을 때는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누구나 가장 어렵게 배우는 것 중의 하나가 잠잠함입니다. 말을 하는 것은 쉽게 배우지만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어렵습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항상 약점이 잡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지 못하는 자는 자신의 교만이 드러납니다. 잠잠함은 하나님께 삶의 고삐를 맡기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잠잠하지 못한 자는 자신의 무지가 드러납니다. 잠잠함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잠잠하지 못한 자는 자신의 조급함을 드러냅니다. 잠잠함은 하나님께 우리를 변호해주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마지막으로 잠잠하지 못한 자는 성화되지 못한 불신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잠잠함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잠잠해야 합니다. 특히 나의 죄가 드러나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잠잠해야 합니다. 잠잠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잠잠히 회개하지 않고 열렬히 변명합니다. 잠잠하라’는 말의 뜻은 앞서지 말고, 조급하게 떠들지 말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리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하나님 앞에서 잠잠해야 합니까? 그것은 바로 인간이 당면한 현실에 당한 문제의 해결자는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문제에 간섭하실 때까지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시62:1)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30:15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이라고 합니다. 예레미야애가 3: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살다 보면 오해로 인해 비난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오해를 풀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러나 그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고 오해가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문제가 더 악화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때로 성도들은 침묵함으로 조용히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먼저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조급하게 나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역하시면서 수많은 오해와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것을 인내하시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이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아름다운 삶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억울하고 원통해도 참고 인내하며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자들의 숨겨진 아픔 조차 아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시면서 그 눈에서 눈물을 씻겨주시고, 한없는 위로와 평안으로 채워주십니다. 오늘 이시간 무언가 부르짖기 보다는 잠잠히 주의 말씀 앞에서 주님의 음성에 조용히 귀를 기울여보시는 것은 어떠신가요? 나를 책망하시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그 음성 앞에서 잠잠히 회개하는 시간을 갖지 않으시겠습니까?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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