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라오디게아」교회의 기별

작성자초록색|작성시간09.08.31|조회수26 목록 댓글 0

제목 :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

발행 : 1968년 08월

저자 : 안상홍著

제9장 「라오디게아」교회의 기별

특히 주의할 것은 성경 해석이다.
성경 구절들을 억지로 해석함으로 멸망을 자처하는 것이다. (벧후3:15∼16, 사28:13)
성경의 모든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이 성신의 감동하심을 입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인고로 성경해석자가 역시 같은 성신의 감동하심을 입어야 바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성경 기록할 때에 감동되었던 그 성령이 성경 구절을 해석할 때에도 그 성령이 감동되어야 그 성경 구절들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 (벧후1:20∼21, 고전2:11∼16)
즉, 내마음을 아는 이는 내자신이 더 잘아는 것 같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말씀도 하나님의 성신 외에는 또한 아는 사람이 없고 성신으로 기록한 것을 같은 성신으로만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기록한 바「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밝히느니라」(고전2:13) 하신 것이다. 만일에「랍비」들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은 교훈이 성경의 깊은 진리를 깨닫게 되었더라면 구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고전2:7∼8)
그런고로 옛날「랍비」들 학교와 같은 교회의 학교나 신락원 같은 학교에서 사람들이 가르치는 교훈이 신비에 싸여있는 하나님의 오묘한 진리를 깨닫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금이나 은이나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다. (행8:18∼21)
만일에 학교에서 오묘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면 돈 주고도 살 수 있을 것이니 이는 돈만 있으면 신학교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으로 들어서는 참 진리는 침례 요한과 같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실지 교훈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요한은「랍비」들 학교에서 교육을 받지 아니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주의 길을 예비하게 하시려고 그를 온전치 못한 신학교 교사에게로 보내지 아니하시고 그로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을 배우게 하기 위하여 광야로 부르사 천연계를 통하여 하나님의 법칙을 배우게 하신 것이다.
옛날 예수 초림시대나 오늘날 주의 재림시대나「랍비」들 학교나 신학교 같은데는 부패되어 교만과 형식적 교훈에 목이 곧아 새로운 진리를 전할찌라도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새 진리를 받을 사람들
새로운 진리를 받을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신령의 학교에서 실지 교훈을 받고 연단함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교만심이 없는고로 겸손한 마음으로 무엇이든지 배우고자 하는 심정뿐이다.
누구든지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배워지는 것이다.
그런고로 성경의 진리 말씀은 금과 안약의 원료가 되나니 누구든지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라오디게아」교회의 상태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성신은 말씀하시기를「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3:17) 하시었다.
혹은 말하기를 각 개인의 믿음을 말한 것이라고 하나 기록한 말씀은「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이 말을 써서 부치라」(계3:14) 하신 것이다.
사도 당시로부터 오늘날까지 일곱 교회시대로 나누어 내려오는 바 어느 교회시대를 막론하고 각 교회마다 잘못된 교리의 책망을 성신은 각 교회의 사자들에게 보냈던 것이다. (렘7:25∼26, 암3:7∼8)
마찬가지로 이「라오디게아」교회의 책망도 각 개인의 믿음을 가리킨 말씀이 아니라 이 교회의 교리를 책망하신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성경을 잘 아는고로 부족한 것이 없으며 예언의 신을 받았으니 부자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부족한 것 뿐이다.
즉,「네 곤고한 것」네 심령이 상한 것과「가련한 것」죽게된 것과「가난한 것」믿음이 부족한 것과「눈먼 것」성신의 감동을 받지 못한고로 진리의 말씀을 분별치 못하는 것과「벌거벗은 것」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은 없는 것을 책망하신다.
이 다섯 가지의 종목을 제하여 놓으면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내가 문앞에 서서 두드리노니
그러나 이 증거의 말씀은 보시는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성신이 두드리시는 것이니 누구든지 문을 열면 성신으로 말미암아 이 진리를 깨달을 것이요, 누구든지 문을 닫으면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즉, 교만은 문을 닫는 것이요, 겸손은 문을 여는 것이다. (계3:20)
이 기별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복된 기별이다. 누구든지 문을 열기만 하면 그리스도로 더불어 이 새로운 진리를 먹게 될 것이다. (겔3:1∼3, 계3:20 비교)
누구든지 문을 열고 받아 들이기만 하면 그 속에서 생수가 솟아 나올 것이다. 화잇부인은 이 새로운 진리를 받아 들이기 위하여 예언의 신을 통해서 준비하라고 여러번 기록하였다.
「이 땅위에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이르기 전에 주의 백성중에 사도시대 이래 나타나지 않았던 초기의 신앙심의 재부흥이 일어날 것이다.」(예언의 신 GC 464페이지) 또는「나는 내가 본 흔들림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 볼 때에 이 흔들림이「라오디게아」교회의 진실한 증인의 권고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바른 증거로 인하여 일어날 것을 보았다.
이 증거는 그 받은 자의 마음에 효과를 나타낼 것이요 그로 하여금 표준을 높이고 바른 진리를 전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바른 증거를 받지 아니할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반대할 것이요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흔들림이 일어날 것이다.
그 참된 증인의 증거는 별로 주의를 받지 아니하였다.
교회의 운명이 달린 엄숙한 증거가 등한히 여김을 받고 거의 무시를 당하였다.
이 증거는 반드시 깊이 회개하게 할 것이니 이 증거를 받는 자는 이 증거를 순종하고 또한 정결함을 입을 것이다.
천사가 말하기를 귀를 기울여 들으라 하였다.」 (증언보감 1권 77페이지) 또는 기록하기를
「나는 지난번 묵시 가운데서 이렇듯 과감한 참된 증인의 기별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주의 백성들은 저희의 죄 가운데서 그저 졸고만 있다. 저들은 여전히 부요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처한다.」(증언보감 1권406페이지) 하였다.
그런고로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 교회에서「라오디게아」교회에게 보내는 기별을 받아 들이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스스로 생각하기를 늦은비 성신이 내리실 때가 되면 나에게도 임재하시리라 하고 지금 보내시는 기별을 받지 아니하면 늦은비 성신 받을 기회는 놓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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