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날짜 규정
지금 이 날짜 규정을 증거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첫째 안식일을 정확하게 지키고자 함이요, 둘째는 지금 전하고자 하는 이 책의 모든 말씀을
연구하는데 방해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 날짜 규정을 바로 알아야 모든 성경 구절을 오해하지 않고 순리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고로 성경에
기록된 날짜 규정을 연구하여 볼 것 같으면 다음과 같다.
예수님 당시에만 하여도 시간법을 사용하였는데 그 당시에 시간법은 다음과 같다.
아침 해 뜰 때 (日出)에 첫 시간이 되어 저녁 해 질 때 (日沒)에 12시가 되었던 것이다.
즉, 오늘날 시간으로 비교한다면 오전 9시쯤이
되면 그 당시에 시간법으로 제3시가 되고 오전 12시쯤 되면 제6시라고 하였으며 오후 3시가 되면 제9시라고 하였으며 오후 5시쯤 되면
제11시라고 하였다.(개혁성경 마20:1∼7, 27:45∼46, 행2:15, 3:1, 10:3, 9, 30 비교)
그런고로 시간법이 있는 이상 첫 시간이 날의 시작이 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혹 밤시간이 있는데 이 밤시간은 사도행전
23장 22절에만 볼 수 있는데 이 밤시간이 로마군법으로 사용하였을 뿐이요 유대인들이 보통 쓰는 말은 경(更)이라고 말씀하신 것 뿐이다.(눅12:38)
그리고 날짜 규정의 정확한 기록은 육일(六日) 창조의 역사 가운데서만 밝힐 수 있는 것이다.
창세기 1장 3절부터 31절까지 잘 살펴봄으로 알게 될 것이다.
성경 구절들을 반절이나 한절의 기록으로 해석하여 자기의 주장을 맞추고자 함으로
크게 잘못되는 수가 많은 것이다.
기록한 말씀에「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더라」(창1:5) 이 말씀만 똑떼서 해석한다면 밤사이
12시간만이 하루가 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된 말씀 중에는 그 말씀의 문맥을 따라 시작과 끝을 분별해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기록한 바「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거늘 하나님이 빛을 보시니 선한지라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더라」(창 1:3∼5) 이 말씀 전부 합하여야 첫째날 일일 (一日)에 발표를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아침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하루 일과를 마치니 저녁이 되며 밤을 지낸 아침에 가서 첫째날을 발표한 것이다.
둘째날도 그와 같이 하루 일과를 마친 후에 저녁이 되고 밤을 지낸 후 아침에 가서 둘째날에 발표를 하신 것이며 (창1:6∼8) 셋째날도 그와
같고 (창1:9∼13) 넷째날도 그와 같고 (창1:14∼19) 다섯째 날도 그와 같고 (창1:20∼23) 여섯째 날도 그와 같이 여섯째날
낮(晝)에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니 저녁이 되고 그 밤을 지낸 아침에 가서 창조일 6일을 마쳤다. (창1:3∼31)
혹은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흑암 (黑暗)이 먼저 있었다고 해서 그 흑암을 날짜 수에 넣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조전 흑암을 저녁이라고 하시지 않으셨다.
저녁이라 함은 석양(夕陽)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저녁이라고 명칭을 붙일 수 있다.
만일에 창조하시기전 흑암을 저녁이라고 한다면 육일(六日) 창조에 저녁이 하나가 과외로 더 있는 것이다.
육일 창조에는 낮(晝)이 여섯이요,
밤(夜)도 여섯째 마치는 때에 가서 육일 창조를 마치셨는데 창조 전 흑암을 넣어 계산한다면 낮은 여섯이나 밤은 일곱 밤이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날짜 수에 넣지 않는 창조전에 있었던 흑암을 날짜 수에 넣고자 하는 것은 자기 주장을 세우고자 하는 생각뿐이다.
그런고로 마태는 주님 부활하신 첫날 새벽에 여인들이 무덤에 가던 그때에 대하여 기록하기를「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개혁성경 마태28:1절)하였다. 아침 해뜨기 전에「첫날이 되려는」하였으니 밝기전에는 완전한 첫날이 되지 않은 것을 의미한 것이다.
헬라 원어에는「이레 중 첫날로 행하는 해돋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비교해 보면「이레 중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만일에 해
지는 때로부터 해 지는 때까지 하루가 된다면 모든 성경 구절들이 하나도 맞지 않는 것이다.
이 날짜에 대한 성경구절들을 연구하자면 다음과 같다.
유월절은 성력 정월 14일 저녁이라고 하였으니 (레 23:5, 9:3∼5, 수5:10) 안식일 교회의 해석대로 한다면 정월 13일 해 진 후라야
14일 저녁 유월절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유월절은 정월 14일 해진 후 라고 하는 것은 성경상 분명한 것이다.
기록한 바「양이나 염소 중에 흠 없는 일년된 숫컷을 취하여 이달 14일까지 두었다가 저녁에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양을 잡고」 (출12:5∼6)
하시었으니 14일 해 진 후가 유월절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 주시는 것이다.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내고 모든 백성들이 라암셋에서 집결해 가지고 15일 새벽에 출발하였던 것이다. (민33:3∼4)
그런고로 14일 해 진 후 유월절 밤하고 이튿날 15일하고는 날이 맞지 않는 것이다.
유월절이라는 뜻은 14일 해 진 후 그날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문설주에 피뿌린 집을 넘어 갔다고 하는 의미로 유월절이라고 하였으니 14일 밤을
가리키는 것이다.
물론 14일 해 질 때에 양을 잡았으니 양잡는 때를 유월절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날밤 여호와의 사자가 문설주에 피 발린 집을 넘어서 피 안 발린
집에 재앙내린 때를 가리켜 유월절이라고 한 것이다.(출12:12∼13)
그리고 대속죄일은 성력 칠월 십일인데 이 대속죄일은「구일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할 찌니라」(레23:27∼32) 하였으니 안식일 교회에서
해석하는 대로 본다면 팔일 해 진 후부터 구일 저녁까지 지키라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대속죄일은 성력 칠월 십일이 아니고
구일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성경과는 맞지 않는 것이다.(레23:27)
예수님의 시체를 장례지내는 시간
그리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유대인들이 다 물러간 후 저물 때에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하여
장례식을 밤 늦게까지 행하였던 것이다.
기록한 바「아리마대 요셉은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요19:38)
「이미 저물 때에 ( 旣墓할 時)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하니 백부장에게 알아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어
주거늘」(막15:42∼46, 마27:57 비교)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 백근쯤 가지고 와서 유대인의 장례하는 법대로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가는 베에 그 향 재료를 넣어
쌌더라」(요19:39∼40)
「이에 나려 베로 싸고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속에 뫼셔두니… 이때는 예비하는 날이니 안식일이 거의 된지라」(눅23:53∼54) 하였다.
유대인의 장례법으로써 세마포 사이에 향 재료를 넣어 싸자면 아무리 속히 한다 하더라도 6시간 이상 걸리는 것이다.
이스라엘 조상 야곱의 시체에는
방부제를 바르는 기한이 40일이나 걸렸던 것이다. (창50:3)
화잇부인은 예수님의 시체를 장례 지낸 실정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요한은 사랑하는 주님의 시체를 가지고 어찌 할 바를 알지 못했다.
그는 무정한 군사들이 함부로 예수의 시체를 거두어 불명예스러운 장지에 매장할
것을 생각하고 매우 근심하였다.
요한은 자기가 유대 나라의 정치 당국자들게서 아무런 호의도 받지 못할 것과 빌라도에게서도 별로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을 알았다.
이런 난경에 있을 때에 요셉과 니고데모가 와서 도와 주었다.
요셉과 니고데모는 둘다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었고 또한 빌라도와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 두 사람은 세력과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의 시체를 정중하게 장사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요셉은 담대히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하였다.
빌라도는 예수의 시체를 요셉에게 주라는 공식적인 명령을 내리었다.
제자 요한이 사랑하는 주님의
귀한 유해에 대하여 매우 염려하고 걱정하고 있을 때에 아리마대 요셉은 총독의 위임장을 가지고 왔다.
니고데모는 요셉이 빌라도와 회견한 결과를
예측하고 값진 몰약과 침향을 백근 가량이나 가지고 왔다.
온 예루살렘에서 가장 존귀한 사람이 죽은 때에라도 예수보다 더 존귀함을 받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정숙하고 공손하게 자기들의 손으로 예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리었고 찔림을 받으시고 상하신 그의 시체를 주의하여
목욕시키고 피묻은 흔적을 씻기면서 그들은 동정의 눈물을 흘리었다.
그리하여 예수의 시체는 니고데모가 가져온 향료를 넣어서 가는 베로 싼 후에
세 제자는 아직 사람을 장사하지 아니한 새 무덤으로 귀하신 저희 구주를 모셔갔다.
그리하여 찢어지고 상하신 수족을 거두고 상하신 손을 맥없는 가슴위에 접어 드렸다.」(살아남는 이들 260∼261) 하였다.
위에 기록한 말씀만 보아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인가?
요셉은 예수님이 운명하신 후에 빌라도와 회견끝에 공식적인 총독의 위임장을 받아 가지고 왔으며 니고데모는 요셉이 빌라도와 회견한 결과를 예측하고
값진 몰약과 침향을 백근가량 가지고 와서 장례지내게 하였으며 찔림을 받으시고 상하신 그의 시체를 주의하여 목욕시키고 피묻은 흔적을 씻기었다고
하였으며 니고데모가 가져온 향료를 넣어서 가는 베로 쌌다고 하였으며 온 예루살렘에서 가장 존귀한 사람이 죽은 때에라도 예수보다 더 존귀함을 받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 라고 하였으며 몰약을 바르는 시간이라든가 세마포에 향가루를 넣어 싸는 시간이라든지 예수님의 시체에 목욕시킨 일이라든가 피묻은
흔적을 씻긴 그 모든 시간이며 요셉이 빌라도와 회견한 시간 등을 심각히 연구해 보면 거의 밤새도록 장례시간이 걸리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런고로 장례 지내고 나니「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눅23:54) 고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온 부녀들은 그때에 돌아가
향과 기름을 예비하고 안식일에 쉬었던 것이다. (눅23:50∼56, 마27:57, 막15:42∼46, 요19:38∼40 비교)
그런고로 사 복음을 다 대조해 보면 예수님의 시체를 밤에 장례지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금요일 해 진 후가 안식일이라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시체로 인하여 제자들에게 안식일을 범하도록 하실리가 만무한 일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체를 장례 지내는 시간이 금요일 해 진 후라는 것은
성경이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기록한 바「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 주라 분부하거늘」(마27:57∼60) 하였으며 또는「이 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니 이미 저물 때에 아리마대 요셉이 왔으니 이 사람은
존귀한 의관이요 또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는 자라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막15:42∼45) 하였다.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빌라도에게 간 때는 이미 저물었을 때라고 하였다.
성경상 저물었다는 때는 해 진 후를 가리킨다. (마20:6∼12, 26:20, 막14:17∼18 비교)
사도 요한은 장례식이 늦게 시작된 이유를
알려주고 있으며(요19:38) 누가는 장례식이 밤새도록 걸렸다는 것을 밝히 보여주고 있다. (눅23:50∼54)
사 복음을 다 살펴보게 되면
주님의 장례식이 어느 때에 지낸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다.
날의 시작
위에 기록한 모든 성경절을 비교하여 공정한 입장에서 해석해야 될 것이다.
예수님 당시의 시간법을 가지고 말한다고 해서 날의 시작이 해 뜰 때라는
말도 아니다. 날의 시작은 현대 시대에 사용하는 시간을 가지고 변론할 수도 없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대로 하나님이 천지 창조 사업중에 빛을
내시기 바로전「빛이 있으라」(창1:3절 상단) 하신때 부터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하신 때는 미명이다.
「빛이 있으라」하심으로 밝아지기 시작된 것이다. 저녁이라 한 것은 빛이 있은 후 석양(夕陽) 일몰(日沒)을 가리켜 저녁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고로 한날의 시작은 아침(새벽, 미명)을 가리키는 말씀이다.
반대자들의 주장
안식일 교회에서 저녁설을 주장하는 성경절은 상 · 하의 이유를 막론하고「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라」한 반절도 못되는 말을 가지고
결론을 내렸으며 또는 대속죄일인 7월 10일을 9일 저녁부터 지키라고 한 그것을 안식일 지키는 법이라고 한다. (레23:27∼32)
그러나 모세는 재차 선언하기를 대속죄일 안식하는 법과 넷째 계명인 여호와의 안식일 지키는 법과 같지 않다고 하였다. (레23:38)
절기 지키는
법이 각각 다르다.
유월절은 정월 14일 밤뿐이요, 대속죄일은 9일 저녁부터 10일 저녁까지이다.
그리고 느헤미야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하여
안식일 전날에 성문을 닫았다는 것으로 저녁설을 주장한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안식일 전날 해 진 후 어두워갈 때 성문을 닫은 것은 안식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상인들이 안식일에 물건을 팔려고 금요일 저녁
늦도록 물건을 운반하기 때문에 느헤미야가 성문을 닫고 그들을 꾸짖었던 것이다. (느13:15∼21)
느헤미야는 금요일 해 지고 어두워 갈 때를 안식일이라 하지 않고 안식일 전날이라고 하였다. (느13:19)
그리고 또 하나는 안식일 저녁에 병자들이 예수님께 모여들므로 유대인의 사상은 해가 지면 안식일 지났다는 생각으로 모였다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당시에 모든 병자들은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도 병자들을 고친다는 소문은 다 듣고 있는 때이다.
시몬의 장모의 병을 낫게 하신 날도
안식일이었다. (막1:21, 30∼31)
그러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안식일 낮에는 체면상 모일 수 없어서 오후 저녁때부터 병자들은 모이기 시작하였다. (막1:29∼34)
병자들이 모인
때를 성경에는「해 질 때에」(막1:32) 하였으니 그들과 같이 억측을 대자면 안식일을 범한 것이 된다.
해 진 후라고 하였으면 가하거니와 해 질
때라고 하는 것은 해가 서산에 넘어가는 무렵을 표시한다.
또는 바울이 드로아에서 이레 중 첫 날 떡뗀 문제를 안식일 해 진 후 회집한 것이라고
하며 그 때를 이레 중 첫날이라고 한다. (행20:7∼9)
이것은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해석이다. 전 세계의 성경을 가지고 해석하는 수백여 종교계 중에 안식일 교인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해석하는 교회는
없다.
그 모임의 목적은「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행20:7) 하였다.
이날은 안식일 해 진 후가 아니요, 일요일 아침부터 모였던 것이며 바울이 이튿날 가고자 하여 그날 저녁 늦게까지 강론을 하였던 것이다.
(행20:7∼11)
안식일 교인들이 그 이상 더 억측으로나마 내놓을 성경절은 없다.
그들이 무엇을 잘 아는 것 같이 헬라 원어니, 영어니해도
날짜 규정을 명백하게 해 놓은 성력은 모른다.
그들이 성력의 원칙을 알았더라면 그러한 억측은 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출애굽기 12장 2절에 성력을 주셨는데 그 성력은 지구를 에워돌고 있는 달의 운행법을 맞추어 한달 한달 정해졌는데 매달 초 1일의 기준은
합삭(合朔) 되는 날로 정한 것인데 그날을 유대인은 월삭(月朔) 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합삭이 밤중에 들 때는 그밤을 그 전날 낮에다 부쳐 그 전날로 초 하루를 치느냐 그렇지 않으면 그 밤을 지낸 낮에다 부쳐 그 다음날로
초 하루를 치느냐가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서 역세를 연구해 보기로 하자.
서기 1966년 양력 1월 22일 밤중(零時) 46분에 합삭(合朔)이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밤 자정으로 새 날의 기준을 두었기 때문에 밝아오는
새 날로 초하루를 정했고 유대력에는 그 전날인 양력 1월 21일에 성력 11월(스밧월) 초 1일 월삭이 되었으니 이는 모세때로부터 정해져 내려온
그 역세에 판박아 놓은 것이다.
이 유대력을 연구하게 되면 밤이 어느쪽에 정해져 있는지 확인하게 될것이다.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양성시키는 신학대학 박사들이 성력 곧, 교력조차도 모르는 그들이 진리를 반대하는 데만 눈이 뒤집혀 거짓말들을
하고 있으니 그 죄를 어떻게 할 것인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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