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작성자초록색|작성시간09.08.31|조회수23 목록 댓글 0

제목 :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

발행 : 1968년 08월

저자 : 안상홍著

제2장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옛날 구약시대의 이사야 선지자는 그의 계시 가운데 장차 있을 메시야의 임하심과 그 길을 예비할 선지자에 관한 문제를 보았던 것이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사40:3∼11) 하였으며 말라기 선지자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성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말3:1) 하였다.
이 예언은 예수 초림시대에 침례 요한으로 말미암아 그 일부가 성취되었다.
그 당시 하나님의 성전을 맡아 가지고 있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형식과 외식 가운데서 자랑하는 기도를 하며 사람에게 칭찬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노라고 하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사람의 유전과 사람의 가르친 계명으로 도를 삼아 가르침으로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였던 것이다.(마15:7∼9)

자비로써 기별을 보내심
패역한 백성들이지만은 그래도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구원의 길을 보이시기 위하여 기쁜 소식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셨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 영광에 눈이 어두워진 그들은 무관심할 뿐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비로 보내주신 선지자를 멸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수고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앉아서 소문을 들으니「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3:1∼3) 하는 소리에 양심의 찔림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친히 가보지 않고 앉아서 사람을 보내어 형편을 알아보려고 하였다.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요1:19∼23) 하였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한「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하면 침례 요한이 자칭 엘리야라 하지 않아도 성경을 상고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엘리야의 사명으로 온 줄을 알게 될 것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하는 말을 들은 바리새인들 중에 요단강으로 침례를 받으러 나갔던 것이다. 회개하지 못한 그들의 몸차림과 화려한 옷차림은 침례 요한의 눈에는 독사와 같이 보였다. 옷 두벌 있는 자는 옷 한벌은 없는 자에게 주라고 하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3:7) 하였다.
세상 영광으로 눈을 가리운 바리새인들은 배로 그 하나님을 삼고 의복으로 영광을 삼고 세상 일만 생각하는 까닭에 자기들의 생각과 맞지 않는 책망을 듣고 감당치 못해서 다 물러갔던 것이다. (눅7:29∼30)
이와 같은 모든 역사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시는가?
이와 같은 역사는 다 지나간 것이 아니다.
그 모든 역사의 예언 성취는 지금 우리들 앞에 있다.
현재 하나님의 법을 맡아 가지고 있는 안식일 교회의 지도자 측은 옛날 침례 요한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꼭 같은 상태를 보여 주고 있다.
화잇 부인은 예수 초림과 재림의 때의 형편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구세주의 탄생에 대한 소식과 같이 그의 재림에 대한 기별도 일반 백성들의 종교적 지도자들에게는 부탁되지 않았다.」(쟁상510) 또는「재림의 진리를 이해하고 그 선전에 당한 자는 소위 학자라든가 신학자라는 사람들은 아니었다.」(쟁상506) 하였다.

예수 재림의 길을 예비할 선지자
혹은 생각하기를 침례 요한 이후로는 선지자가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기록한 말씀에「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눅16:16, 17) 하신 이 말씀을 따라 요한 이후로는 선지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와 같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성경의 모든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단편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옛적 모세 때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선지자와 침례 요한까지는 다 그리스도를 증거하였기 때문에 요한 이후에도 선지자가 있다고 하게 되면 당신이 그리스도로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에 요한 이후에도 선지자가 있다고 하면 요한 이후에 나오는 선지자가 엘리야의 사명이 되는 것이며 그 다음에 가서 그리스도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당신의 초림에만 관계되는 말씀이다.
침례 요한 이후로는 예수 재림을 증거하는 복음 선지자가 있는 것이다.
12사도로부터 시작하여 편지서나 복음서나 장래일이나 현재일을 예언하는 사람은 다 복음 선지자가 되는 것이다.
침례 요한이 죽은 후 20년이나 30년이 지난 후에도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러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행21:10) 또는「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행11:27) 또는「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행13:1) 또는「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하고」(행15:32) 하였다. 이와 같이 선지자들이 복음시대에 와서도 많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사도 당시에만 선지자가 있고 오늘날에는 선지자가 없어야 하는가?
아니다. 사도 당시에 선지자가 있었으면 오늘날에도 반드시 선지자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도 당시나 오늘날이나 다 같은 복음시대이기 때문이다.
말라기 선지자는 오히려 예수 재림시기에 큰 선지자를 보내신다고 예언하였다.
기록한 바「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4:5) 하시었다. 어느 때든지 선지자가 없을 때에는 참 진리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선지자 엘리야는 예수 재림의 길을 예비할 마지막 진리를 전하게 되는 것이다. 옛 세상은 다시 되풀이하고 있다.
침례 요한은 예수 초림의 길을 예비할 선지자로써 구원의 기별을 예루살렘에 보낸 것 같이 재림의 기별도 당신의 백성들이 모여 있는 예루살렘인 즉 안식일 교회에 보내시는 것이다.
이 기별의 내용은 사도시대에 있었던 초기의 신앙심을 재부흥시킴으로 무너진 성전을 완전 복구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막9:12) 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 초림때만 가리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예수 재림때에도 먼저 엘리야를 보내사 파괴된 부분을 회복해야 된다는 말씀이다.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
말라기 선지자는 장차 이즈러지고 파손된 율례와 법도를 복구함으로 구원의 주를 맞게 될 것을 보았다.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4:4∼5) 하시었다.
혹은 이 예언이 예수 초림 당시에 있었던 침례 요한을 가리킨 예언이라고 하여 엘리야의 사명이 끝을 맺은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침례 요한은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크게 강조한 적이 없고 다만 침례로써 예수님을 맞기 위한 성결과 회개의 침례를 베풀어 예수 초림의 길을 열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말라기 4장의 예언은 마지막 예수 재림을 영접할 준비로서 모세에게 명한 율례와 법도로써 정결함을 받을 수 있는 특수한 진리를 선포할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 나타나야 한다. 이 기별은 예수 초림때가 아니고 성경의 말씀과 같이「극렬한 풀무불 같은」날이며「교만한 자와 행악한 자는 다 초개와 같이 그들을 사르시고 뿌리와 가지를」남기지 아니하실 때이다. (말4:1)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침례 요한에 대해서 엘리야라고는 말씀하셨지만 (마11:9∼14, 17:10∼13) 말라기 4장 5절을 가지고 증거하신 적은 한군데도 없고 다만 말라기 3장 1절만 가지고 증거하신 곳은 몇 군데 있다. (마11:10, 막1:2, 눅7:27)
과연 말라기 3장 1∼5절까지 자세히 보면 침례 요한과 예수 초림에 대한 예언이 더욱 분명한 것이다.
기록한 바「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재물을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말3:1∼3) 하시었다.
이 예언의 말씀과 같이 침례 요한이 와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증거하였고 예수님은 제사장들이 알지 못하는 순간에 저희들이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시고 날마다 그들을 가르치시기도 하셨다. (요7:14∼29)
그러므로 말라기 4장의 예언이 다 같은 엘리야의 사명에 대한 예언이나 그 예언서에 나타낸 시대에 관한 문제는 엉뚱하게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라기 3장 1절이나 말라기 4장 5절이나 다 엘리야 사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침례 요한에게 일부 그림자로 약간 비추었을 뿐이요 그 예언의 완전 성취는 예수 재림하시기 직전에 있을 예언이다.
혹은 말하기를 안식일 교회가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라고 한다.
만일 이 교회가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 될 것 같으면 이 교회를 지도하던 선지자가 죽지 않고 살아서 예수 재림을 맞아야 한다.
옛적 실지 엘리야가 살아서 승천하였기 때문에(왕하2:11)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남은 백성들을 가리켜 엘리야의 사명이라고 한다. (예언의 신 P.K 227페이지)
침례 요한도 이 예언을 성취하기 위하여 살아서 예수 초림의 구주를 영접하였던 것이다.
그와 같이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도 살아있는 산 성도 14만 4천이 완전히 변형을 입고 승천하게 되어야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다. (참고서 예언의 신 P.K 227)
그런고로 주의 재림이 가까운 시일이 되면 먼저 선지 엘리야를 보내어 주의 재림을 눈으로 보는 것 같이 완전한 증거로 증거하신 후에 예수 재림하실 것이다. 사도 바울은
기록한 바「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5:4) 하였으며 아모스 선지자는「주 여호와께서는 그 은밀한 뜻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지 아니하시리라」(암3:7) 하셨다.
주 재림의 큰 날을 위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새로운 진리로 거룩하게 하신 후 기일 선포하시고 재림하실 것이다. 이에 대하여 화잇부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또 미구에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니 마치 많은 물소리 같아서 우리에게 예수의 재림하실 일자와 시간을 알리시는데 살아있는 14만 4천 성도들은 그 음성을 알아듣되 악인들은 이를 우뢰와 지진으로 알더라. 하나님께서 예수 재림의 시간을 말씀하실 때에 또한 우리에게 성신을 부어주시니 우리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발하여 마치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오던 때에 그 얼굴에서 발한 빛과 같더라. 14만 4천 성도는 다 인치심을 받아 완전히 단합되었으며 이마에는 새 예루살렘과 및 예수의 새 이름을 포함한 광명한 별이 있더라.」(본교회 약사 40∼41 페이지) 하였다.
화잇부인 묵시중에는 예수 재림시 살아있는 14만 4천 성도들이 인치심을 받았다고 하였으며 예수 재림하실 일자와 시간까지 알려주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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