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장 (黑崎註解) 구로삭기 주해서를 상고하여 봅시다
구로삭기 주해는 일본사람의 주해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이제 고린도전서 11장 3-16절의 해석을 살펴보기로 하자. [본문]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전11장 3절) [주해] 이제 말하려고 하는 소중한 진리를 모르는 일은 지식에 부요한 고린도 신자로서 바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삼면으로(三面) 그 진리를 설명하려 하는 것으로서 첫째는 영계(靈界)의 질서를 가지고 이를 증명했고(고전11장 3-6절) 둘째는 남녀 창조의 의의(意義)를 가지고 이를 증명했으며(고전11장 7-12절) 셋째는 자연의 감각에 호소하여 이를 설명하고 있다.(고전11장 13-16절) 즉 지상생활(地上)에는 질서가 있어서 혼인에 의하여 아내는 남편을 머리로 하여 받았으며 신앙에 의하여 남자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이어졌고 그리스도와 하나님 사이에는 부자(父子)의 관계가 성립되어 있어서 하나님을 머리로 하여 이에 순종하는 것으로서 지상(地上)생활의 제상(諸相)은 각 천상(天上)생활의 축사(縮寫)이다. 이 천상(天上) 관계를 지상(地上)에 실현하는 것이 신자의 의무이다. 단(但) 믿음으로서 그리스도에게 이어진 천적(天的) 관계에 있어서는 남녀의 구별 없이 꼭 같이 직접으로 하나님께 연결되어 짐은 물론이다. ◎ 사해(辭解) 『머리』라는 문자(文字)는 삼자간(三者間)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동시에 상하(上下)의 불평등의 지위의 차별을 보이고 있다.
[본문]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를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고전 11장 4절) [주해] 집회에 있어서의 기도 또는 예언을 할 때에 만일 남자가 머리에 너울을 써 그 머리를 덮으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복종 또는 순종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써 자기의 머리 및 이로서 표현되어 참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일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곳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자는 무엇을 쓰지 않는 것이 바른 태도이다. 고린도의 남자 신사가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한 사실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음 절의 여자의 경우를 가르치기 위하여 먼저 남자의 례(例)를 가정하여 설명한 것이다. ◎ 사해(辭解) 『무엇을 쓰고』당시 헬라인은 남자는 쓰지 않고 여자는 쓰는 것이 통례(通例)였다. 유대인은 기도할 때에는 무엇를 쓰는 습관이 있었다. 헬라인에게 있어서 바울은 그 습관을 존중하여 그 습관 중에서 천적(天的) 의미를 읽어낸 것이다.
[본문]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고전11장 5절) [주해] 남자와는 반대로 여자는 남자에 대한 복종을 나타내기 위하여 머리에 무엇을 쓰는 것이 정당하다. 만일 쓴 것을 벗는다면 복종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기독교도의 부인 중에는 바울의 소위 "자주자나 종이나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다 주 안에서 하나"(갈3장 28절)되는 진리를 지상관계에도 적용하여 여자이면서도 남자와 동일한 태도를 가지고 혹은 기도하고 혹은 예언하는 자가 있었다. 바울은 이러한 태도를 경계한 것이다. ◎ 주의<注意> 나중(고전14장 34-35절)에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할 것을 명한 것과의 사이에 모순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 절의 경우는 기도 및 예언으로서 자기가 받은 바 감상(感狀)이고 (고전14장 34-35절) 남자 위에서 이를 가르치는 태도를 취하는 경우일 것이다.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본문]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지니라』(고전11장 6절) [주해] 여자가 머리 없는 것은 부끄러워할 일로 되어 있었다. 즉 당시 노예(奴隸)인 여자는 머리를 깎고 있었다. 또 유대에서는 간음죄를 범한 여자는 삭발(削髮)의 형을 받았다.(민5장 18-22절) 여기서 삭발을 부끄러워할 것으로 말한 것은 그것이 자연히 여자의 미관(美觀)을 죽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수치스런 일이 연상(聯想)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이 부인의 자연스런 감정 또는 습관을 이유로 하여 이에 반(反)하는 행위(行爲)를 가지고 부끄러워 할 것으로 하고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고 기도나 또는 예언하는 자는 마치 삭발(削髮)과 같이 수치스러운 행위(行爲)인 것을 나타내어 만일 이를 바라지 않거든 무엇을 써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본문]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고전11장 7절) [주해] 바울은 더 나아가서 남녀가 창조되어진 사실에 의하여 그 쓸것 문제를 결정하려고 하는 것이다. 즉 남자는 창1장 27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으므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지상을 지배(支配)할 권(權)을 가졌으며 또 이런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인 것이다. 고(故)로 무엇을 씀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복종의 형태를 갖추어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권리를 가리워서는 안된다. 그러나 여자는 그 상(像)은 남자와 다르지만 그 아름다운 복종으로서 남자의 영광이 되는 것이다.
[본문]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고전11장 8-9절) [주해] 창2장 18-24절의 기사와 같이 여자는 남자의 도웁는 자가 되기 위하여 남자의 갈빗대 중에서 창조되어진 것으로서 종속적 지위(從屬的 地位)를 취하는 것이 그 본래(本來)의 신분(身分)이며 남녀동권(男女同權)인 것은 아니다. 고(故)로 여자는 복종에 의하여 남자의 영광이 될 것이다.
[본문]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찌니라』(고전11장 10절) [주해] 여자는 복종에 의하여 남자의 영광이 되는 것으로서 하늘의 천사들도 집회에 참가하여 그 형편 (形便)을 목격(目擊)하고 있는 까닭에(눅15장 7절, 10절, 엡3장 10절, 딤전5장 21절) 복종의 표, 즉 권세의 표를 받을 필요가 있다.
[본문]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니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전11장 11-12절) [주해] 남녀의 관계는 이상과 같이 권력과 복종의 관계에 있으나 그리스도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는 이자동일(二者同一)인 것으로서 피차에 서로 도우면서 그리스도께 연결되어야 한다. 이 사이에 상하(上下)의 차별은 없다. 마치 인류의 창조에 있어서 아담에게서 하와가 취하여졌고 그 후의 생식은 여자에게서 남자가 취하여진 것 처럼 쌍방이 다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어진 것으로서 그 사이에는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여기서 생리상(生理上)의 사실을 포족(捕足)하여 교묘하게 남녀의 영적 평등을 나타내고 있다.
[본문]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고전11장 13절) [주해] 바울은 이상의 논의외(論議外)에 『스스로 판단하라』고 인간의 직관(人間의 直觀)에 호소하여 이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 기도하는 경우를 들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경우를 들어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장 엄숙한 경우에 무엇을 쓰지 않는 불근신(不謹愼)한 태도를 하는 것이 상관 없는가 생각해 보라는 질문을 밝히고 있다.
[본문]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 하느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고전11장 14-15절) [주해] 우리의 자연스런 직감에 의해도 남자가 긴 머리를 가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반대로 여자에게는 긴 머리가 있는 것이 영광인 것처럼 생각되는 것은 남녀간의 자연스런 차별을 느끼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여자의 머리는 쓰는 것 즉 너울(원어, 原語)을 주신 것으로 보아도 쓰는 것이 필요한 것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 습관이 중국의 변발을 제외하고는 거의 어떤 인종(人種)에 있어서도 공통한 것은 바울의 말을 잘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본문] 『변론하려는 태도를 가진 자가 있을찌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느니라』(고전11장 16절) [주해] 바울은 여기까지 논해 놓고 마치 의문을 즐기는 헬라인의 반대론을 얘기한 것처럼 아무튼지 그 논의의 번거로움에 견딜 수 없는 것처럼 이 말을 하고 있다. 가령 논의가 어떻든지 여자가 쓴 것 없이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은 우리(바울 및 그 동지 同志) 사이에서나 일반 여러 교회에서나 존재(存在) 할 수 없다고 잘라서 말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