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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일곱 우뢰의 개봉(開封)

작성자초록색|작성시간09.09.09|조회수35 목록 댓글 0

제목 : 엘리야와 마지막 교회

발행 : 1973년 10월

저자 : 안상홍著

제4장 일곱 우뢰의 개봉(開封)

 

기록한 바
[계10:4]「일곱 우뢰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기록하지 말고 인봉(印封)하여두라」하시었다.

이 일곱 우뢰가 영원히 봉한 대로 있을 것인가?

다시 개봉될 것인가?

오늘날 세상에는 수많은 성경학자들이 있다해도 일곱 우뢰에 대해 뚜렷하게 해석한 교회는 없다.

여러 교파중에 요한계시록 해석을 잘한다고 자부하고 있는 안식일 교회도 말하기를 「봉하였으니 우리가 알 바가 아니다」라고 변명을 하리만큼 이 세상에서는 가장 큰 비밀이 되어 있는 것이 이 일곱 우뢰이다. 참으로 우리의 알 필요가 없는 문제일까?

그러면 왜 우리의 알 필요없는 일곱 우뢰가 발하였을까?

아니면 하나님이 우리와 농담이라도 하셨단 말일까?

아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와 농담을 하시지 않으시고 장애물도 우리앞에 두시지 않으신다.

인봉한 일곱 우뢰는 마지막 때에 나타내야 할 중대한 비밀이 들어있는 것이다.

성경의 기록한 말씀 중에는 뜻이 없는 기록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인봉하라고 하신 뜻은 개봉(開封)할 때가 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성경 말씀 중에는 우뢰라는기록이 여러곳에 있는 바 요한복음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듣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 음성이 우뢰소리로 들린 것이다.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에

[요12:28~29]「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하신 그 음성이 들릴 때에도 요한은 그 음성을 바로 듣고 요한복음에 기록하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우뢰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계시록에도

[계14:2]「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하였으니「내게 들리는 소리는」하고 구별된 언어로 기록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듣는 사람과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런고로 다른 사람에게는 일곱 우뢰로만 듣게 되었으나 사도 요한은 그 음성을 바로 듣고 기록하려 하였으나 인봉하라는 명령이 있음으로 일곱 우뢰라고 기록한 것 뿐이다.

그러면 일곱 우뢰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일곱 우뢰」라고 하였으니 일곱에 대한 숫자를 먼저 해석하고 다음으로 우뢰라는 문제를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일곱에 대한 숫자의 의미가 있는 바 일곱은 완전한 숫자라는 것은 누구나 다 인식하는 바이다.

그런고로 일곱을 완전한 것으로 변경시킨다면 일곱 우뢰가 아니라 완전한 우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디서 완전한 우뢰가 발하였는가?

이는 한 사람이나 두 사람 앞에서 발하신 우뢰가 완전한 우뢰소리가 아니라 이스라엘 총회 앞에서 발표하신 우뢰가 완전한 우뢰라고 할 수 있으니 완전한 우뢰소리가 발표된 때는 시내산 화염중에서 모든 백성에게 우뢰 같은 음성으로 언약의 말씀을 발표하신 때이다.(출19:16~19, 신5:1~5)

그런고로 일곱 우뢰는 완전한 우뢰를 말하는 바 이 우뢰를 발표하실 때에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과 삼차의 칠개 절기를 정하여 주셨던 것이다.

[느9:13]「시내산에 강림하시고 하늘로부터 말씀하사 정직한 규례와 진실한 율법과 선한 율례와 계명을 주시고」하였다.

그런고로 일곱 우뢰 소리만 들을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계13:9, 3:22)하셨으니 우뢰에 대한 원칙을 깊이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 일곱 우뢰와 하나님의 율법

시내산에서 우뢰소리가 발표될 때에도 모세는 그 음성을 분별하여 바로 들었으나 백성들은 우뢰와 번개와 큰 뇌성과 진동하는 소리로 들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두려워 모세에게 이 우뢰소리를 더 듣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던 것이다.(출19:16~19, 20:18~19)

이와 같이 요한계시록 10장 4절에 기록된 일곱 우뢰도 일반에게는 바로 듣지 못하게 되었으나 요한에게는 모세가 들은 완전한 언약의 말씀을 듣고 기록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일곱 우뢰에 대하여 옛 선지자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사8:16]「너는 이 증거의 말씀을 싸매고 율법을 인봉(印封)하여 나의 제자중에 맡겨라」하시었다.

성경 말씀중에는 짝이 없는 기록은 없다. 기록한 바

[사34:16]「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중에 하나도 빠짐이 없고 그 짝이 없는 것이 없나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명하시고 그 신이 모으심이라」하시었다.

그런고로 요한계시록 10장 4절에는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기록하지 말고 인봉(印封)하여 두라」하시었고 이사야 8장 16절에는 「너는 이 증거의 말씀을 싸매고 율법을 인봉(印封)하여 나의 제자중에 맡겨라」(구약성경 사8:16참고)하시었다.

율법을 인봉하라고 하신 동시에 일곱 우뢰도 인봉하라고 하사 짝을 맞추어 연구하게 하신 것이다.

신약성경의 예언서 중에 중대한 문제는 반드시 구약성경에 짝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구약성경 중에 「봉함하라」는 기록이 다니엘서에서 더러 찾아볼 수 있으나(단8:26, 12:4, 9) 다니엘서의 「봉함하라」는 예언은 안식일 교회에서 해석한 바 대로 그 예언은 이미 성취되었다.

그러나 이사야 8장 16절의 「율법을 인봉하여 나의 제자중에 맡기라」하신 예언은 요한계시록 10장 4절의 인봉한 일곱 우뢰와 함께 해석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니 마지막 선지 엘리야로 말미암아 개봉(開封)하게 하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인봉하라는 율법의 중대성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사24;5]「땅이 또한 그 거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여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음이라」또는

[사33:20~30]「우리의 절기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원히 빠지지 아니하며 그 줄이 하나도 끊어지지 아니할찌라 여호와께서는 거기서 위엄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하였다.

그런고로 시내산에서 완전한 우뢰로 발표하신 율법과 이사야 8장 16절의 인봉하라는 율법과 일곱 우뢰를 봉하라는 문제들을 연결해서 연구하게 되면 확실한 사실이 들어나는 것이다.

혹은 말하기를 이사야 8장 16절에 기록한 율법은 십계명만 가리킨줄 안다.

그러나 율법이자 계명이요 하나님께 속한 계명이자 절기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사야 8장 16절을 기록한 이사야는 이사야 24장 5절과 33장 20절도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율법중에 오늘날까지 나타나지 않고 봉한 대로 있는 것은 삼차의 칠개 절기밖에 없다.

인봉한 일곱 우뢰의 비밀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마지막으로 반복된 것이다. 기록한 바

[말4:1~6]「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총회)를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하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선지자가 마지막 주의 재림하실 때에 나타낼 예언도 다 절기를 말한 것이다.(참고 겔36:26,37:24, 습3:18, 렘8:7, 겔11:20)

그리고 모세 율법에는 십계명을 언약이라고 말씀하신 동시에 절기도 또한 언약이라고 하였다.

모세가 두 번째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가서 40일을 지내는 동안 여호와께서 모든 율법을 반포하실 때에 삼차의 칠개 절기를 말씀하시면서 이 절기의 뜻대로 언약을 세우시고 언약의 비석(십계명)을 주신 것이다.(출34:18~28)

[출34:27~28]「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들의 뜻대로 (삼차의 칠개 절기의 뜻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 하시니라.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40주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하였으며 신명기에도 「여호와께서 너희의 지킬 언약을 반포하시니 곧 십계명이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사 너희에게 규례와 법도를 교훈하게 하셨나니 이는 너희로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행하게 하셨느니라」(신4:13~14, 5:1~3)하시었으며 열왕기하 23장 1~3절, 21~23절을 연구해 보면 유월절을 언약의 말씀대로 지킨다고 하였으며 사도 바울은 히브리인들에게 편지할 때에 기록하기를

[히9:1~7]「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있는 성소가 있나니」하였다.

대속죄일에 관한 절기를 첫 언약의 섬기는 예법이라고 하였다.

시내산에서 첫 언약으로 주신 십계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약으로 주신 것인데 첫째 계명부터 넷째 계명까지는 한분이신 하나님만 섬기는 구속의 언약인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표시하는 오묘한 절기가 일곱 우뢰로 봉해졌기 때문에 일곱 우뢰가 개봉(開封)되기 전에는 아무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속의 오묘한 진리와 하나님의 비밀은 더욱 분별할 수 없었던 것이다.

화잇부인도 기록하기를 성소문제를 연구함으로 더욱 밝은 빛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쟁하 200페이지)

과연 성소문제인 절기 안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비밀의 창고가 되어 있다.

때가 되면「하나님의 오묘함이 반드시 이루리니 이는 그 종 여러 선지자에게 보이신 복음과 같은 것이다.」(계10:7)

일곱 우뢰가 지금까지 성경속에 감추어져 있었으므로 비밀이라고 할 수 있으나 실상은 전에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다 지키고 행하던 것인데 교회가 사탄에게 밟힘을 당함으로부터 하나님의 참된 진리가 성경속에 감추어져 때가 차기까지 봉하여 두신 것이다.(계10:4, 사8:16)

이 삼차의 일곱가지 절기는 다 모세 율법의 정한 절기라고 할 수 있으나 실상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신 새언약의 날들과 연결된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지라도 절기와 안식일이 아니면 알지 못하는 순간에 다른 신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기록한 바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스3:5, 사30:29) 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인지 사탄을 섬기는 일인지 구별할 수 있는 문제는 그 모든 절기로서만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대하13:9)

그런고로 일곱 우뢰는 삼차의 칠개 절기를 가리키는 바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새 언약의 유월절 성만찬

(2) 무교절 즉 수난절 금식기도

(3) 초실절 즉 부활절 기념

(4) 오순절 기도와 부흥회

(5) 나팔절 즉 추수절 기도

(6) 대속죄일 특별기도

(7) 초막절 전도대회

이 일곱가지 새 언약의 절기를 지키므로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의 직무를 행하시는 예수님과 교통하게 되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에게 영원한 축복을 주시는 것이다.

 

■ 느부갓네 살 왕의 꿈

그러나 이 일곱 우뢰를 봉하게 된 것은 느부갓네살왕이 꿈을 꾸고 그 꿈을 잊어버림과 같이 만일 이 꿈을 알아내고 해몽하는 자가 없으면 바벨론에 있는 모든 박사와 다니엘과 그의 동료 세 사람까지도 다 죽음을 당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와 같이 이 일곱 우뢰도 교회의 운명이 달린 중요한 진리가 들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석하지 않으면 배벨론의 모든 박사들 곧 바알신 숭배자들은 물론이거니와 하나님의 백성들까지도 다 영혼의 멸망을 받게 될 것인 바 이는 느부갓네살왕의 꿈이 세상 마지막 운명을 결정한 것 같이 일곱 우뢰도 마지막 교회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문제가 되므로 왕의 꿈을 잊어 버리게 하신 동시에 일곱 우뢰도 봉하게 하신 것이다.(단2:1~6, 계10:6)

만일에 그 꿈을 잊어 버리지 않았더라면 다니엘이 해몽할 여지없이 바벨론 박사들이 거짓으로 다 해몽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왕의 꿈을 잊어 버리게 하시고 다니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사 그 꿈을 알아내어 해몽하게 한 것은 그 꿈을 알아내는 사람이라야 해몽이 분명하다는 것을 왕으로 인정하게 하신 것과 같이(단2:9) 일곱 우뢰를 봉하게 된 것은 개봉하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속의 깊은 진리를 해석할 때 깨닫는 사람들로 하여금 확실히 믿게 하시려고 봉하게 하신 것이다.

만일에 이 일곱 우뢰를 봉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모든 거짓 교사들이 거짓 해석으로 하나님의 뜻을 그릇되게 만들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고로 이 일곱 우뢰가 마지막 교회의 운명이 달린 진리가 되기에 봉하게 된 것이다.

 

■ 엘리야와 일곱 우뢰

그런고로 하나님의 마지막 비밀인 일곱 우뢰가 하나님의 마지막 선지 엘리야로 말미암아 개봉(開封)하게 하셨으니 기록하였으되
[계10:4]「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인봉(印封)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하였으며 또는「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중에 봉함하라」(사8:16)하였으며 또는

[계22:10]「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印封)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하였으며 또는

[암3:7]「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하시었으며 또는

[계10:7]「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하시었으며 또는

[말4:5]「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하였으며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막9:12]「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리라」하시었다.

이 일곱 우뢰의 비밀은 사도 시대로부터 지켜 내려오던 새 언약의 제도인데 사도시대 이후 교회가 타락함으로부터 새 언약의 진리가 한가지씩 변하기 시작하였다.

교회는 세상 권세자들 손에 들어갔다.

교황청이나 교회 권세를 잡고 있던 키드(Kidd)같은 사람은 초대교회의 진리를 없애려고 노력하였다.

그들은 닛산 14일에 유월절 지키는 사람들을 에비온(Ebion)파라고 하며 유대주의화한 쿼토드 시맨(Quartod-ciman)들이라고 부르며 여러 가지 그룹 가운데서 유일의 이단자들로 치부하였다.

라오디게아 교회에서는 167년부터 닛산 14일에 유월절 성만찬 예식을 지키는 일은 없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진리를 사랑하는 교회들은 반대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유월절을 지켜 내려 왔으니 이는 생명에 이르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집권자들을 충동시켜 생명에 이르는 진리를 없애려고 오랫동안 싸워 내려왔다.

그후 197년에 로마 교황 빅터(victor)는 강제로 유월절을 없애려고 하여 완고하게 거절하는 교회를 책벌까지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교회와 교회 감독들은 항의의 폭풍을 일으켰다.

에배소 감독 폴리크라테스와 이레네오 같은 분들이 일어나 맹렬히 반대하는 바람에 동서방 교회가 분열되어 로마나라를 중심한 서방교회들은 교황 빅터의 지시대로 행하고 예루살렘을 중심한 동방교회들은 끝까지 진리를 사랑함으로 유월절을 계속 지켜 내려왔다.

그러나 교회가 이미 사탄의 손아귀에 들어 갔으니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콘스탄틴 황제는 표면상 교회를 돕는 사람이 되었으나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서는 큰 적이 되었다.

그는 동서방교회 사이에 갈라져 지켜 내려오던 안식일을 완전히 없애려고 321년에 일요일 휴업령을 내렸으며 오랫동안 지켜 내려오던 유월절을 완전히 없애려고 325년 5월 6월에 니케아(Nicaea)공회의에서 폐지령을 내리고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는 종교재판에 처하였던 것이다.(교부들의 신앙125~126)

그러나 진리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박해를 피하여 산중 사막 동굴속으로 피신하였으며 나중에는 험준한 계곡을 찾아 금욕 생활로 나간 사람들이 허다하였다.(교회사 초대편 283페이지)

그후부터 진리는 차차로 없어지고 교회는 1260년의 긴 세월동안 암훅세기를 만들고 말았다.(단7:25, 계12:6비교)

그러나 예언의 기간이 거의 차가매 종교개혁자들이 일어나 개혁의 길이 열리기 시작하여 안식일 문제까지는 회복되어 있었으나 하나님의 마지막 비밀인 일곱 우뢰 즉, 새언약의 유월절 성만찬 예식과 연결되어 있는 모든 절기의 제도는 성경의 예언대로 마지막 선지 엘리야로 말미암아 개봉(開封)되었으니 예언의 말씀은 일점 일획이라도 폐할 수 없고 반드시 다 이루어 지는 것이다.(사14:24~27, 45:23참고)

그러나 마지막 진리를 반대하는 안식일 교회에서는 말하기를 일곱 우뢰는 봉하였으니 우리가 이것을 알아보려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라고 한다.

이런 교회들을 위해 이사야가 잘 예언해 놓았다. 기록하였으되

[사29:11]「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그것을 유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말하기를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 할 것이요」하였다.

성경지식이 가장 유식하다는 안식일교회가 봉하였으니 우리의 알바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이사야의 예언과 같이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한 말과 똑 같은 말이다.

물론 인봉한 묵시이기 때문에「못하겠노라」하는 것은 정당한 말이나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칭하는 교회들이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하는 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시키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지금은 이사야의 예언과 같이 지혜로운 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한 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는 때이니(사29:10~14) 지혜있는 사람은 미련하게 여겨지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지식을 배우고 총명한 사람은 무식하게 보이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진리를 배워야 할 때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마지막 진리를 받아들이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진리의 말씀을 금을 캐듯이 열심히 캐고 찾아 보십시요.

그리고 진리를 바로 찾아 구원 얻으시고 영생의 하늘 가나안에 가시기를 빕니다.

주여 겸손한 마음으로 진리를 갈망하는 영혼들에게 주님의 마지막 진리의 빛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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