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광야에 외치는 소리
옛날 구약시대의 이사야는 그의 계시 중에서 장차 오실 메시야의 임하심과 그의 길을 예비할 선지자에 관한 문제를 다음과 같이 보았던 것이다.
[사40:3]「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하라.」하였으며 또는
[사40:6~11]「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릴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여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하시었으며 말라기 선지자는 기록하기를
[말3: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하시었다.
이 예언은 예수 초림 당시에 침례 요한으로 말미암아 그 예언의 일부가 성취되었다.
그 당시에 하나님의 성전을 맡아 가지고 있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형식과 교만 가운데서 자랑하는 기도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고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사람의 유전과 사람의 가르친 계명으로 도를 삼아 가르침으로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였던 것이다.(마15:7~9)
이와 같이 패역한 백성들이지마는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다시한번 자비로써 구원의 기별을 보내셨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 영광에 눈이 어두워진 그들은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비로써 보내주신 선지자를 멸시하였던 것이다.
비록 패역한 족속일지라도 한때는 하나님이 같이 하신 적이 있었던 백성이라 하나님의 음성을 약간 기억할 수가 있었던가?
[마3:1~3]「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하고 외치는 소리에 양심의 찔림을 받게 되어 친히 가보지는 않으며 앉아서 사람을 보내어 형편을 알아 보았었다.
[요1:19~23]「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다.」하였다.
이사야의 예언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 하면 침례 요한이 자칭 엘리야라고 하지 아니하여도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엘리야의 사명으로 온 줄을 알게된 것이다.
선생이라 칭함을 받는 많은 사람들이 광야의 외치는 소리라는 말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요단강으로 침례를 받으러 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회개하지 못한 그들의 몸차림과 화려한 값진 옷차림은 요한의 눈에는 독사와 같이 보였던 것이다.
옷 두벌 있는 자는 옷 한벌은 없는 자에게 주라고 하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마3:7]「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하였다.
세상의 영광에 눈을 가리운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자기들의 생각과 맞지 않는 책망을 듣고는 감당치 못하여서 다 물러갔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 순진한 백성들은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을 생각하면서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괴로움과 권세자들의 학대는 날이 갈수록 심하여 가고 있었으며(마23:4) 더구나 로마의 식민지로써 외국인들의 학대는 더 말할 여지가 없었다.
그 당시에는 로마 사람들의 요구라면 무슨 일이든지 다 들어 주어야 하였으나 로마 사람이 원하는 일이라면 오리(五里)까지의 짐이라도 들어다 주어야 되는 시대였다.(마5:39~42)
이러한 괴로운 세상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는 메시야의 오심이 큰 소망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의 부패된 지도자들의 교훈은 썩은 심령에서 나오는 교훈이라 썩어서 냄새가 날 지경이었다.
그들은 큰 소리로 백성들을 가르치며 길가에서 자랑하는 기도를 하며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들에게 랍비라 칭함 받기를 좋아하는 그들의 행동은 (마23:1~7) 순진한 백성들에게 슬픔만 안겨 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괴로움 속에서 좀 더 밝은 빛을 찾으려고 갈급하였던 때에 때마침 그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이 들려 왔던 것이다.
침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마3:1~6]「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하는 놀라운 소리가 들려 왔던 것이다. 절망 가운데 있었던 백성들에게는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마5:2~10)
그들은 다시 옛적 선지자의 이사야의 예언서를 살피게 되었으니 기록한 바
[사40:9~11]「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혀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이와 같은 예언의 시대가 돌아올 것을 명상하며 기뻐하였던 것이다. 말라기 선지자도 그들에게 기쁜 예언을 하였으니 기록한 바
[말3: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노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하시었다.
■ 예수 초림의 길을 예비할 선지자 엘리야
침례 요한은 예수 초림의 길을 예비하러 보내심을 받은 엘리야의 사명인 것이다.
요한은 백성들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요1:23, 사40:3~9비교) 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는 예수 초림과 재림을 포함한 주의 길을 예비하러 보내신다는 예언이다.
그러므로 진리에 굶주린 백성들은 요한의 외치는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 같이 아름답게 들려 왔던 것이다.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요한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요단강으로 모여 들었다.
침례 요한은 그들에게 메시야의 오심이 임박하다는 것을 증거하였다.
백성들은 여러 가지로 질문하기도 하였다.
[눅3:10~14]「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하고 각 사람의 형편을 따라 대답하였다.
그러나 시온의 기쁜 소식이라고 하여서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다 기쁜 소식은 아니었다.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들이나 지도자들의 편에 가담되어 있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증오심을 일으킬 만한 역경의 기별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그들에게는 최후의 심판의 기별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 진리를 갈망하는 자들에게는 생명의 말씀이 되었던 것이다.
진리를 믿고 요한에게 침례를 받은 사람들은 또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도 있었으니 요한은 예수 초림의 길을 예비하러 보내심을 받은 엘리야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요한은 항상 외치기를 예수님을 증거하였던 것이다.
[요1:35~42]「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마3:11]「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요3:30]「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하매 메시야에 대해서 항상 증거하였기 때문에 요한의 침례를 받은 사람은 거의 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된 것이다.
■ 지나간 역사는 장래일의 그림자
침례 요한 당시에 있었던 역사는 지금 우리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지나간 역사는 다 지나간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역사의 예언 성취는 지금 우리들 앞에 놓여 있다.
그 모든 역사는 인류의 종말인 오늘날에 나타나야 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성경의 기록한 모든 말씀은 거의 다 장래 일의 거울과 그림자가 되는 것이다.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을 알아 보자면 지나간 역사의 거울을 들여다 봄으로 알 게 되는 것이다. 기록한 바
[전3:15]「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이미 있었고 장래 일도 옛적에 이미 있었으니」또는
[사46:10]「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하시었고 사도 바울은 기록하기를
[고전10:11]「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하였다. 말라기 선지자는 마지막 때에 대한 예언으로 명백하게 증거하였다.
[말4:5]「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하시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말4:1~3]「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다 초개 같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때이다.
그러므로 침례 요한을 보내사 엘리야의 사명으로 예수 초림의 길을 예비한 것 같이 마지막 때에도 엘리야를 영적 예루살렘인 안식일 교회에 보내사 진리로 인하여 굶주리고 허덕이는 백성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여 오시는 예수 재림의 길을 예비하게 하는 것이다.
화잇부인도 마지막 엘리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엘리야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살아 있을 성도들의 상징이었다.」(예언의 신 P.K227) 하였다.
그러나 안식일 교회 지도자들은 마지막 엘리야의 기별을 받아 들이지 못할 것을 화잇부인은 보고 증거하였다.
「구세주의 탄생에 대한 소식과 같이 그의 재림에 대한 기별도 일반 백성들의 종교적 지도자들에게는 부탁되지 않았다.」(쟁상510)하였다.
혹은 생각하기를 대쟁투 상권510페이지의 기록은 일요일 교회 지도자들에게 대한 예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일요일 교회는 예언상 사마리아교회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예언은 일요일 교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유다와 사마리아에 대한 역사를 살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주전 975년경에 솔로몬왕이 죽은 후 이스라엘 나라는 두 나라로 분열 되었는데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이 되었고 솔로몬의 신복 부하였던 여로보암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숭배심이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절기를 지키러 해마다 가고 있었다.
여로보암은 백성들로 절기를 지키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사마리아에서 모든 백성들로 경배하게 하였다. (왕상12:25~33)
그 후 아합왕 당시에는 이세벨로 말미암아 바알신과 아세라 목상등 여러 가지 우상으로 더럽혀진 곳이 사마리아다. (왕상16:30~34)
그와 같은 가증한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요4:9)
위와 같이 지나간 역사는 장래 일의 거울로서 복음시대에 실물로 예언 성취될 것을 보이신 것이다.
다시 차례로 예언 성취된 것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솔로몬 시대는 사도교회 시대에 나타날 실물의 예언이요 여로보암과 르호보암 시대는 사도시대 이후 교회가 타락되어 가던 때의 예언이다.
사도시대로부터 유월절과 부활절을 한 절기로 일주간 안에 지켜오던 기독교회는 2세기 중엽에 이르러 변동되기 시작하였다.
라오디게아에서는 주후 167년경부터 유월절을 안지키기 시작하였다.
주후 197년 경에는 로마 교황 빅터(VICTOR)가 전 교회에게 유월절 폐지령을 내리고 완고하게 거절하는 교회를 책벌까지 하였다.
그러나 진리의 보호자들인 에베소 감독 폴리크라테스와 이레네오 같은 사람들이 일어나 항의의 폭풍우를 일으키는 바람에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하고 로마지방을 중심으로한 서방 교회들만 빅터의 지시대로 변경된 날들을 지키고 소아시아와 예루살렘을 중심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분열되었다.
이것이 여로보암과 르호보암 시대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왕상12:25~33, 교회사 초대편 121~123비교)
그 다음은 아합왕 당시의 예언 성취는 제4세기 초엽에 그리스도교회가 로마 태양신교와 연합하여 태양신교의 제도를 그리스도교회가 일부 받아들이던 때의 예언이다.(예언의 신 G.C49~50)
로마 나라는 국교가 태양신이었다.
그럼으로 동지 (冬至)는 해가 제일 짧을 때니 태양 탄생한 날이라고 해서 12월22일 동지를 태양 탄생일이라고 로마 나라에서는 큰 명절로 지켜 내려온 것이다.
이 태양 탄생일을 예수 탄생일로 변경하고 그 후 교회의 여론을 막기 위하여 3일을 늦추어 12월 25일을 예수 탄생일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콘스탄틴 황제는 태양신의 날인 일요일을 존중히 하기 위하여 321년에 일요일 휴업령을 내리는 동시에 (교회사 초대편 193) 325년 5월 6월에 니케아(Nicaea) 회의에서 동방 각 교회에서 지키던 유월절을 완전히 폐지시킴으로 (교부들의 신앙책125~126) 아합왕 시대의 역사가 콘스탄틴 황제 당시에 와서 예언이 성취던 것이다.
위와 같이 구약의 역사가 시대를 따라 여러 가지로 예언이 성취되어 왔다.
그런고로 유다와 사마리아가 예수님 당시까지 분리되어 내려온 것 같이 복음시대에도 예수 재림하실 때까지 유다와 사마리아가 분리되어 내려올 것을 보이신 것이 구약의 역사다.
화잇부인이 기록한 대쟁투 상권 510페이지에 「구세주의 탄생에 대한 소식과 같이 그의 재림에 대한 기별도 일반 백성들의 종교적 지도자들에게는 부탁되지 않았다.」라고 기록한 것은 예수 초림때에 역사가 반복해서 예수 재림때에도 사실 그대로 나타날 것을 알고 기록한 것이다.
만일에 안식일교회 지도자들이 마지막 기별을 받아 들이게 된다면 옛적에 바리새인들이 침례 요한의 기별을 받아 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안식일 교회가 예수 재림을 영접하게 된다면 옛날 바리새인들도 예수 초림을 영접하였을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 초림 당시는 거울이 되고 예수 재림 당시는 실물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안식일교회 지도자들은 예언상으로 마지막 진리를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안식일교회 교인들 중 니고데모나 아리마대, 요셉 같은 겸손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혹시 구원의 기별을 받아드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교회안에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슬퍼하는 사람들도 마지막 진리를 연구하게 되면 잘 받아드리게 될 것이다.(겔9:4~6)
■ 예수 재림의 길을 예비할 선지자 엘리야
혹은 생각하기를 침례 요한 이후로는 선지자가 없다고들 한다. 왜냐하면 기록한 말씀에
[눅16:16~17]「울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하신 이 말씀을 따라 요한 이후로는 선지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와 같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의 말씀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옛적 모세 때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선지자와 침례 요한까지는 다 그리스도를 증거하였기 때문에 요한 이후에도 선지자가 있다고 하게 되면 당신이 그리스도로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당신의 초림에만 관해서 예언한 선지자가 요한까지라는 말씀이다.
만일에 요한 이후에도 선지자가 있다고 한다면 요한 이후에 나오는 선지자가 엘리야의 사명이 되는 것이며 그 다음에 가서 그리스도가 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메시야 즉 예수 초림을 증거한 선지자가 요한까지란 말씀이다.
침례 요한 이후로는 예수 재림을 증거하는 복음 선지자가 있는 것이다.
12사도로부터 시작하여 편지서나 복음서나 장래일이나 현재일을 예언한는 사람은 다 복음 선지자가 되는 것이다.
침례 요한이 죽은후 20년이나 30년이 지난 후에도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행 21:10]「여러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또는
[행11:27]「그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또는
[행13:1]「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사울이라」 또는
[행15:22]「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하였다.
이와 같이 선지자들이 복음시대에 와서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사도 당시에만 선지자가 있고 오늘날에는 선지자가 없어야 하는가?
아니다. 사도 당시에 선지자가 있었다면 오늘날에도 반드시 선지자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도 당시에나 오늘날에나 다 같은 복음시대이기 때문이다.
말라기 선지자는 오히려 예수 재림시기에는 큰 선지자를 보내신다고 하였다. 기록하였으되
[말4:5]「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하시었다.
어느 시대이든지 선지자가 없을 때에는 참 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선지자 엘리야는 예수 재림의 길을 예비할 마지막 진리를 전하게 되는 것이다.
옛 세상은 다시 되풀이 되고 있다. 침례 요한은 예수 초림의 길을 예비한 선지자로써 구원의 기별을 예루살렘에 보낸 것 같이 재림의 기별도 당신의 백성들이 모여 있는 예루살렘인 안식일 교회에 보내시는 것이다.
이 기별의 내용은 사도시대에 있었던 초기의 신앙심을 재 부흥시킴으로 무너진 성전을 완전히 복구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 말씀하시기를
[막9:12]「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하였다.
이 말씀은 예수 초림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예수 재림때에도 먼저 엘리야를 보내사 부패된 부분을 회복하여야 된다는 말씀이다.
■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라
말라기 선지자는 장차 이즈러지고 파손된 율례와 법도를 복구하므로 구원의 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말4:4~5]「너희는 내가 호렙산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하시었다.
혹은 이 예언이 예수 초림 당시에 있었던 침례 요한을 가리킨 예언이라고 하여 엘리야의 사명이 끝을 맺은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침례 요한은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크게 강조한 적이 없고 다만 침례로써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성결과 회개의 침례를 베풀어 예수 초림의 길을 열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말라기 4장의 예언은 마지막 예수 재림을 영접할 준비로 모세에게 명한 율례와 법도로써 정결함을 받을 수 있는 특수한 진리를 선포할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 나타나야 한다는 뜻이다.
이 기별은 예수 초림때가 아니고 성경의 말씀과 같이
[말4:1]「극렬한 풀무불 같은」날이며「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와 같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하실 때이다.」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침례 요한에 대해서 엘리야라고는 말씀하셨지만(마11:9~14,17:10~13) 말라기 4장 5절을 증거하신 적은 한군데도 없고 다만 말라기 3장1절만 가지고 증거하신 말씀이 있다.(마11:10, 막1:2,눅7:27)과연 말라기
3장 1~5절까지 자세히 보면 침례 요한과 예수초림에 대한 예언이 더욱 분명한 것이다. 기록한 바
[말3:1~3]「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그는 금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하시었다.
이 예언의 말씀과 같이 침례 요한이 와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증거하였고 예수님은 제사장들이 알지 못하는 순간에 저희들이 구하는 바 메시야로 홀연히 그 전에 임하시고 날마다 그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요7:14~29)
그러므로 말라기 4장의 예언이 다 같은 엘리야의 사명에 대한 예언이나 그 예언서에 나타난 시대에 관한 문제는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라기 3장 1절이나 말라기 4장5절은 같은 엘리야의 사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침례 요한에게 일부 그림자로써 약간 보여 주었을 뿐이며 그 예언의 완전 성취는 예수 재림하시기 직전에 있을 예언이다.
그리고 주의 재림이 가까운 시일이 되면 먼저 선지 엘리야를 보내어 주의 재림을 눈으로 보는것 같이 완전히 증거로 증거한 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 사도 바울은 기록한 바
[살전5:1~4]「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하였으며 아모스 선지자는
[암3:7]「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하셨다.
주 재림의 큰 날을 위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새로운 진리로 거룩하게 하신 후 기일 선포하시고 재림하실 것이다.
이에 대하여 화잇부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또 미구에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니 마치 많은 물소리 같아서 우리에게 예수의 재림하실 일자와 시간을 알리는데 살아있는 14만 4천 성도들은 그 음성을 알아듣되 악인들은 이를 우뢰와 지진으로 알더라. 하나님께서 예수 재림의 시간을 말씀하실 때에 또한 우리에게 성신을 부어 주시니 우리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발하여 마치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오던 때에 그 얼굴에서 발한 빛과 같더라. 14만 4천 성도는 다 인침을 받아 완전히 단합되었으며 이마에는 새 예루살렘 및 예수의 새 이름을 포함한 광명한 별이 있더라.」(본 교회약사 40~41)하였다.
화잇부인의 묵시중에 예수 재림시 살아있는 14만4천 성도들이 인치심을 받았다고 하였으니 이미 죽은 사람은 14만 4천 성도들의 무리에 들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엘리야와 인치는 사명은 2차 세계 대전 전에는 있지 않다는 것이 증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