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신약에서 침례받은 역사를 살펴보자
[행2:38~41]「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을 받으니리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하였으며 또는 [행8:26~39]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당일에 전도받고 침례를 바았으며 또는 [행10:47~48]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복음을 듣고 3일만에 침례를 받았으며 또는 [행16:13~15]「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느가 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저와(루디아) 그 집이 다 침례를 받고」하였으며 또는 [행16:25~34] 두아디라 지경 옥사장이 밤중에 큰 지진으로 말미암아 옥문이 열리며 죄수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지는 바람에 간수가 놀라고 회개하고 바울에게 침례받은 역사가 있었습니다. 일반 개신교회에서는 세례나 침례나 다 형식이라고 한다. 그들은 성경절을 곡해함으로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한 이말을 곡해했기 때문입니다. (공동번역에는) 「세례는 몸에서 더러운 때를 벗기는 것이 아니라」하였습니다. 사도 당시에는 물에 들어가서 침례를 받았기 때문에 육체의 더러운 때를 씻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그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이다. 만일 침례가 우리 죄로 죽음 양심을 깨끗케하는 의식이 아니라면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죄가 있고서야 어찌 선한 양심이라고 하겠습니까. [벧전3:21]「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잘못 해석하면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한 위에 성경절을 죄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라고 잘못 생각하게 된다. [공동번역 벧전3:21]에는 「침례는 몸에서 더러운 때를 벗기는 것이 아니라」하였습니다. 사실은 침례가 우리 몸에 때를 벗기는 것이 아니라 침례는 나와 내속의 죄까지 완전히 장례지내고 예수님 부활하심과 같이 침례받는 사람도 예수님과 같이 새 생명의 부활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3:15~17]「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하시고 침례를 받으셨다. [마21:32]예수님은 요한의 침례를 의의 도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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