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교회역사책에서 진리를 밝히자
1958년 10월 20일 발행
상해천주교 교리중
윤형중 저 지킬계명편
십계명 변경설(22페이지)
「천주교회에서도 처음에는 유대인 『필로』의 분류를 그대로 따랐다. 그러다가 제5세기에 이르러 성 아우스딩의 분류가 나타났는데 이것이 더 합리적이므로 차차 이것이 우세하여 그후 천주교회에는 이 『성 아우스딩』의 분류가 일반화 되었다. 이제 두 가지를 비교하여 보자. 이 두가지 분류를 놓고 볼 때 성 아우스딩의 것이 더 합리적임을 알 수 있다.」하였다.
<하나님의 십계의 분류>
<천주교회 십계·아우스딩의 분류>
● 1957년 7월 1일 발행 교부들의 신앙책에서 밝힐 문제들(93페이지)
「천국에도 사람을 인도하는 중책을 진 교도자는 반드시 그 구령하기에 필요한 모든 진리를 빠짐없이 가르치고 진리에 관한 모든 의문을 충분히 해답할 수 있어야 한다. 실상 성경에는 신조 전부가 다 들어 있지도 않고 또 거기에서 신자의 준수세목 전부를 찾아낼 수도 없다. 주일 성수(聖守)의무의 일례를 두고보라 그는 물론 신자의 가장 중대한 의무의 하나이지마는 성경에서는 일요일 성수에 대한 명백한 한 구절도 찾아볼 수 없다. 성경의 안식일은 토요일이요, 일요일은 아니다.」 하였으며
● 유월절(바스카절) 폐지문제 (125~126페이지)
성「빅톨」교황(재직 189~199) 때 예수 부활 축일을 소 아세아 각지 교회에서는 유대인의 바스카절 즉 닛산월 14일에 수난정사(受難丁死)를 기념하고 나서 동 16일에 지내고 로마에서는 동월 14일 다음에 드는 주일에 지내었다. 지금처럼 부활축일을 춘분(3월 21일) 다음에 드는 만월(滿月) 후 첫주일에 지내기로 되기는 325년의 니케아(Nic-aea)공의회(公議會)에서 결의된 다음의 일이다. 교황「빅톨」은 카톨릭 의식의 일치와 유대인 절일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소 아세아 모든 주교에게 로마의 지키는 절일에 따르기를 요구하매 모두 이에 복종하였다.
● 안식일과 일요일의 문제 (470페이지)
2. 신약 시대로 넘어와서도 안식일의 계명은 폐지되지 않았다. 예수께서도 친히 안식일을 지키셨다. 주일(일요일)의 제도는 기원 4세기에 천주교 교황이 콘스탄틴 황제의 도움을 받아 제정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 1962년 12월 일 발행책 교회력 - 김동수(金東銖) 著 (59페이지)
바스카 즉 유월절과 부활절을 한절기로 1주간에 지켜오던 교회는 325년 니케아 회의서 폐지되고 말았다.
이렇게 바스카와 부활절을 한 절기로 1주간에 지켜오게 된 기독교회는 2세기 중엽에 이르러 교회의 정돈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것은 밖으로 이교사회와 그 문학철학에 대한 기독교의 변증안으로 신앙고백의 형성직제의 편성(사교사제조제)등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교회력도 꾸며지게 된 것이다. 이 때에 부활절을 지키는 문제로 논쟁이 있었는데 그것이 이스터 논쟁(Easter Controversy)이다. 이 후에 합쳐서 지키던 바스카와 부활절을 둘로 나누게 되었다.
원래 바스카는 Pascha Stairovimon, Pascha Cenastasimon으로 나누어 전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의 금요일, 후자는 생명의 기쁨이 넘친 부활주일로 지켰다. 그후 역서문제(유대력·태양력) 등으로 부활절의 논쟁은 325년까지 계속되어 오다가 325년 니케아회의에서 결정되었다 하였으며
■ 1970년 3월 일 발행책
요약 기독회의사
박 광 성 저
(39페이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역사
♥유월절과 승천일 오순절 문제
3. 부 활 제
(1) 동방 - 유대인의 유월절과 같음(정월 14일)
(2) 서방 - 주일을 중시, 춘분후 만월 다음에 오는 주일
(3) 이를 통일하려고 158년 폴리갑이 로마에 가서 타합하려 하였으나 에베소 감독과 이레네오가 반대
(4)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통일함 유월절 폐지하고 일요일에 부활절 지키는 것으로 통일함
5. 승천일과 오순절
(1) 부활 후 40일째는 승천일
(2) 부활 후 50일째는 오순절
(49페이지)
♥니케아회의 325년 5월, 6월 두달 동안 회의
제30장 니케아 회의 Nicaea
1. 소집자 콘스탄틴 황제
2. 시 일 325년 5월~6월
4. 소집동기 (1) 부활절 지키는 문제로(동방은 유월절, 서방은 주일 중시)
(61페이지)
♥성탄절의 유래와 시작
2. 성탄절 12월 25일
(1) 354년에 로마에서 379년 콘스탄티노플에서
(2) 기원은 로마에서 12월에 3대 축제일이 있음
a. Saturnalia(12~24) 옛날에 사다톤신이 지배할 때 황금 시대 이룸. 이를 기념
b. Sigilalia 하순 소아에게 인형주어 즐기게 함.
c. Brumalia 동지제 일양의 왕복축하 기독교인이 축일을 모색하게 됨
(탄생절은 354년 로마 태양신교 태양탄생일을 예수 탄생일로 변경하였다.)
■ 1965년 6월 1일 발행
기독교회사
송낙원 저
(144~145페이지)
(성탄절) 성탄절은 12월 25일로 지킨 것은 354년의 기록에 나타났으니 곧 로마감독 리베리우스(Liberius) 시대였다. 379년에는「콘스탄티노플」시에서 축하하였고 「애굽」과 「팔레스틴」에 전파되었다. 크리스마스의 기원을 특기하자면 그 풍속이「로마」에서 일어난 것이니 그 차제(次第)가 이런 것이다.
「로마」에는 12월말에 들어서면서 연거퍼 삼대 축제일이 있는 것이다. [제일]은 투르날리아(Satrunalia)라고 하는 것이 있었으니 12일부터 24일까지 지킨 것이다. 석시(昔時) 사다톤신이 지배할 때에 황금시대를 이루었는데 그 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사하는 것이다. 이 절기에는 빈부귀천의 구별을 망각하고 환락에 탐(耽)하는 것이다. [제이]는 시길라리아(Sigilalia) 제일(祭日)이 있으니 12월 하순에 있는 것으로 이때에는 소아에게 인형을 주어 즐기게 하는 절기인 것이다. [제삼]은 브루말리아(Brumalia) 제일(祭日)이니 이것은 동지제로서 일양(一陽) 래복을 축하하는 절기였다. 이런 축제일에 가담할 수 없는 기독교인들로서는 별다른 의미로 축하하는 집회를 모색하게 된 것이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차일양(此一陽) 의 래복 이후에 탄생하셨다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되어서 이 때로 크리스마스를 삼아 축하하는 풍습이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즉 구주 강탄 축하의 시작인 것이다.(144~1455p)
◆ 성탄절에 대한 신문보도
♥ 1970년 12월 8일과 25일 중앙일보기사
「성탄절은 12월 25일이 아니다 …… 3~4월에 탄생, 현 성탄절은 농신제 날이다. 역사적 고증에 따르면 … 예수의 탄생일인 12월 25일의 날짜는 물론 달도 실제와 틀린다는 것이 밝혀져 있다. 사실인즉 예수가 탄생했다는 12월이 사실과 가장 가까운 달도 아니다. …… 초기 기독교도들이 박해를 피하기 위해 12월 25일이었던 로마의농신제일을 택해 예수의 탄신을 축하했던 사실에 비롯한다」 하였으며 동월 25일 신문의 기사는 「가톨릭교회는 3세기쯤부터 이 날을 성탄일로 축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탄생한 기록이 엿보이는 신약 성서에도 이 날이 바로 성탄일이라고는 적혀 있지 않다. 12월 25일로 선정된 것은 동지제에서 비롯한다는 설도 있다」하였다.
이제는 동서양을 무론하고 누구나 다 잘아는 사실이다. 12월 25일은 마귀, 태양신 탄생일이지 예수님 탄생일이 아니다. 예수 탄생일은 성력 1월 14일이다. 양력은 3월~4월 경이다. 이것을 알면서 12월 25일에 성탄 축하하는 것은 태양신 마귀에게 축하하는 것이 된다.
(80페이지) 침례하는 것이 원칙이라 하였다.
【세례식】 : 시세(施洗) 방법은 일반으로 침례하는 것이 원칙이나 침례 대신으로 세 번 물을 붓는 일이 전기에도 약간 있는 것이고 120년경에는 완전히 세례식으로 여기게 되었다.
(81페이지)
【예배】 : 예배의 시기로는 주 예배로서 안식일 예배가 이 시기까지(120년까지) 계속되었으나 말엽에 점차로 주의 첫날 즉 일요일로 대용케 되었다.
(82페이지)
【부활절(Pascha)】 : “Easter”란 말은 日耳曼족 중에서 나왔다. 그 시일은 동서가 부동하여 동에서는 유대인의 유월절과 동일로 즉 니산월 14일을 지키었고 서방에서는「로마」를 중심으로 하여 일요일로 정하고 부활한 일을 중시하였다. 유월절의 시일에 해당하는 일요일 즉 춘분절 만월 다음에 오는 일요일에 이를 축하케 되었다. 이로 인하여 동서간에 2회나 의논이 있었고 325년「니케아」대회의 결정으로서 일요일에 축하키로 했다.
【승천일과 오순절】 : 예수부활 후 제40일에는 예수님의 승천을 기념하고 제50일에는 오순절에 대한 성신강림을 기념했다.
(83페이지)
예배장소는 개인집 셋집에서
【 예배의 장소】 : 개인의 집, 셋집이나 회당이었고 200년 이후로는 교회, 주의 집, 하나님의 집, 기도의 집이라고 불러서 특별한 건물에서 예배를 거행하였다.
■ 1972년 5월 15일 발행
교 회 사 초대편
♥(121~123페이지) 유월절에 대한 문제들
이러한 어려운 문제들 중에 첫째되는 문제는 부활절 날짜를 정하는 것이었다. 사도 시대로부터 부활절을 특별히 중요하게 취급하였다. 그러나 동서방 교회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아시아에서 본 가장 중요한 날짜는 닛산(Nisan) 14일이었는데 이 날은 유월절 어린양이 잡혀 죽던 날이고 그리고 제4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시던 날이다. 이 유월절 주간에 언제 이날이 오든지간에 그리스도인은 이날 오후 세시까지 금식하고 그리고 감사의 성찬식(Escharist)을 거행하던 습관을 가졌었다. 그러나 서방 교회에서는 닛산 14일 다음의 일요일까지 금식을 계속하고 그리고 유월절 성찬식을 거행하였는데 이는 그 주간 이날 일요일에 주께서 부활하셨다는 주장에서 왔다. 이리하여 로마에서 흔히 생긴 일은 그 곳을 방문한 손님들 가운데는 로마 지방의 교인보다 몇날 앞서서 금식을 이미 끝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불편을 막기 위하여 여러 가지 대책을 강구해 보았다. 155년에 폴리갑(서머나 감독)은 로마교황 아니케터스(Anicetus)와 이 문제를 토론하였으나 양편이 다 상대방을 설복시킬 수가 없어서 서로 다르게 그날을 지키기로 합의를 보았다. 라오디게아(Laodicea)에서는 167년에 닛산 14일에 부활절을 지키던 사람들(Quartodeciman)은 이제 그 습관을 버리게 되었다.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필연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의 생각에는 이날에 지키는 부활절 축하는 유대인의 유월절의 계속에 불과하였기 때문인 것 같다. 키드(Kidd) 박사는 이 사람들은 에비온(Ebion)파의 사람들 곧 유대주의화한 “Quartoderima” 자들이라고 부르고 그리고 그들을 여러 가지 그룹 가운데서 유일의 이단자들로 치부하였다. 그들과 바로 반대되던 주장은, 참된 축하는 유월절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기념하는 것으로 보았다.
◆ 유월절에 대한 쟁론 ◆
이 논쟁의 보다 더 중요한 단계는 197년 로마에서 일어났다. 아니케터스보다 훨씬 더 유력하던 로마교황 빅터(Victor)는 모든 혼란을 중지시키고 부활절을 일요일에 지키는 도미닉의 규칙(Dominical Rule)을 채용하도록 전 교회에 강요하였다. 동서방 각지에서 여러 가지 회의가 열렸는데 그 결과는 아시아를 제외하고는 각지에서 도미닉의 규칙을 채용하게 되었다. 빅터는 거기에다 자기의 특권을 행사하여 완고하게 거절하는 교회를 책벌하였다. 그런데 이 처사는 항의의 폭풍을 일으켰다. 이레니우스(lrenaeus)는 중재자로서 활동하려고 애썼다. 에베소의 감독 폴리크라테스(Polycrates)는 자기 편지에서 성 빌립과 성 요한과 그리고 아시아의 그밖의 성자들의 한사람의 권세를 자기가 행사한다고 주장하고 항쟁하기를 자기는 자기 가문에서 감독의 직분을 여덟 번째 가지는 사람이므로 적어도 어느 것이 바른 규칙인지를 안다고 하였다. 빅터는 폴리크라테스의 주장을 좋게 받아들이고 그리고 자기가 내린 처벌을 취소한 듯 하다.
◆ 유월절이 4세기에 와서 폐지됨 ◆ (123페이지)
닛산 14일에 부활절을 지키는 사람(Quartoderiman)들이 4세기경에 와서 아주 없어졌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날 금식함(139페이지)
그리스도인이 지킨 그날은 예수님이 잡히시고 또 십자가에 못박히신 날들이다. 「신랑이 잡혀갈 때 그날에 너희들은 금식할 것이다」그 금식은 오후 세시에 끝났다. 또 그밖에도 매년 거룩한 수난 주간에는 금요일과 토요일에 금식을 행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교회 역사를 살펴 보았다. 과연 이 역사 속에서 사도들이 어떠한 교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대로 무관심할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 교리를 찾아 내야 할 것이며 사도들이 지키고 행한 진리를 찾아 지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