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장 엘리야를 보내리라
옛날 구약 시대의 이사야는 그의 계시중에서 장차 오실 메시야의 임하심과 그의 길을 예비할 선지자에 관한 문제를 다음과 같이 보았던 것이다. 기록된 바,
[사40장3절]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하였으며 또는
[사40장6~11절]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하시었으며 말라기 선지자는 기록하기를
[말3장1절]「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하시었다.
이 예언은 예수 초림 당시에 침례 요한으로 말미암아 그 예언의 일부가 성취되었다. 그 당시에 하나님의 성전을 맡아 가지고 있던 바리새 교인들이나 서기관들은 형식과 교만 가운데서 자랑하는 기도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고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사람의 유전과 사람의 가르친 계명으로 도를 삼아 가르침으로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였던 것이다.
(마15장7~9절) 이와 같이 패역한 백성들이지마는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자비로써 구원의 기별을 보내셨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 영광에 눈이 어두워진 그들은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비로써 보내주신 선지자를 멸시하였던 것이다. 비록 패역한 족속일지라도 한때는 하나님이 같이 하신적이 있었던 백성이라 하나님의 음성을 약간은 기억할 수가 있었던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3장1~3절) 하는 외치는 소리에 양심의 찔림을 받게되어 친히 가보지는 않으며 앉아서 사람을 보내어 형편을 알아보고 있다.
[요1장21~23절]「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다」하였다. 이사야가 예언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 하면 침례 요한이 자칭 엘리야라고 하지 아니하여도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엘리야의 사명으로 온 줄을 알게 된 것이다. 선생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는 말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들중에 요단강으로 침례를 받으러 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회개하지 못한 그들의 몸차림과 화려한 값진 옷차림은 요한의 눈에는 독사와 같이 보였던 것이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한벌은 없는 자에게 주라고 하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마3장7절]「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하였다. 세상의 영광에 눈이 가리운 바리새 교인들이나 서기관들이 자기들의 생각과 맞지않는 책망을 듣고는 감당치 못하여서 다 물러갔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 순진한 백성들은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들을 생각하면서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괴로움과 권력자들의 학대는 날이 갈수록 심하여 가고 있었으며 (마23장4절) 더구나 로마의 식민지로써 외국인들의 학대는 더 말할 여지가 없었다. 그 당시에는 로마 사람들의 요구라면 무슨 일이든지 다 들어주어야 하였으며 로마 사람이 원하는 일이라면 오리까지의 짐이라도 들어다 주어야 되는 시대였다.(마5장39~42절) 이러한 괴로운 세상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는 메시야의 오심이 큰 소망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의 부패된 지도자들의 교훈은 썩은 심령에서 나오는 교훈이라 썩어서 냄새가 날 지경이었다. 그들은 큰소리로 백성들을 가르치며 길가에서 자랑하는 기도를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것과 사람들에게 랍비라 칭함 받기를 좋아하는 그들의 행동은(마23장1~7절) 순진한 백성들에게 슬픔만 안겨 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괴로움 속에서 좀 더 밝은 빛을 찾으려고 갈급하였던 때에 때마침 그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이 들려왔던 것이다. 침례 요한이 요단강에서「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3장1~6절) 하는 놀라운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절망 가운데 있었던 백성들에게는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마5장2~10절) 그들은 다시 옛적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서를 살피게 되었으니 기록한 바,
[사40장9~11절]「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하였다. 이와 같이 예언의 시대가 돌아올 것을 고대하며 기뻐하였던 것이다.
말라기 선지자도 그들에게 기쁜 예언을 하였으니 기록한 바, [말3장1절]「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하시었다.
■ 예수 초림의 길을 예비할 선지자 엘리야
침례 요한은 예수 초림의 길을 예비하러 보내심을 받은 엘리야의 사명인 것이다. 요한은 백성들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다」 (요1장23절, 사40장3~9절 비교) 하였다.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는 예수 초림과 재림을 포함한 주의 길을 예비하러 보내신다는 예언이다. 그러므로 진리에 굶주린 백성들에게 요한의 외치는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같이 아름답게 들려왔던 것이다.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요한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요단강으로 모여 들었다. 침례 요한은 그들에게 메시야의 오심이 임박하였다는 것을 증거하였다. 백성들은 여러 가지로 질문하기도 하였다.
[눅3장 10~14절]「무리가 물어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하고 각 사람의 형편을 따라 대답하였다. 그러나 시온의 기쁜 소식이라고 하여서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다 기쁜 소식은 아니었다.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들이나 지도자들의 편에 가담되어 있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증오심을 일으킬 만한 역경의 기별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그들에게는 최후의 심판의 기별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 진리를 갈망하는 자들에게는 생명의 말씀이 되었던 것이다. 진리를 믿고 요한에게 침례를 받은 사람들은 또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도 있었으니 요한은 예수 초림의 길을 예비하러 보내심을 받은 엘리야의 사명이기 때문에 요한은 항상 외치기를 예수님을 증거하였던 것이다.
[요1장36절]「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마3장11절]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요3장30절]「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하며 메시야에 대해서 항상 증거하였기 때문에 요한의 침례를 받은 사람은 거의 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된 것이다.
■ 지나간 역사는 장래일의 그림자
침례 요한 당시에 있었던 역사는 지금 우리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지나간 역사는 다 지나간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역사의 예언성취는 지금 우리들 앞에 놓여 있다. 그 모든 역사는 인류의 종말인 오늘날에 나타나야 되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성경에 기록한 모든 말씀은 거의 다 장래일의 거울과 그림자가 되는 것이다. 현재 일이나 장래일을 알아보자면 지나간 역사의 거울을 들여다봄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기록한 바,
[전3장15절]「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이미 있었고 장래일도 옛적에 이미 있었으니」또는 [사46장10절]「내가 처음부터 종말을 보이고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행하리라」하시었고 사도 바울은 기록하기를
[고전10장11절]「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하였다. 말라기 선지자는 마지막 때에 대한 예언으로 명백하게 증거하였다.
[말4장5절]「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하시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같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때이다.(말4장1~3절) 그러므로 침례 요한을 보내사 엘리야의 사명으로 예수 초림의 길을 예비한 것같이 마지막 때에도 엘리야를 보내사 진리로 인하여 굶주리고 허덕이는 백성들에게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여 오시는 예수 재림의 길을 예비하게 하는 것이다. 화잇부인도 마지막 엘리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엘리야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살아 있을 성도들의 상징이었다.」(예언의 신 P·K227) 하였다.
■ 예수 재림의 길을 예비할 선지자 엘리야
혹은 생각하기를 침례 요한 이후로는 선지자가 없다고들 한다. 왜냐하면 기록한 말씀에
[눅16장16~17절]「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하신 이 말씀을 따라 요한 이후로는 선지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와 같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의 말씀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옛적 모세때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선지자와 침례 요한까지는 다 그리스도를 증거하였기 때문에 요한 이후에도 선지자가 있다고 하게 되면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고로 예수 초림에만 관해서 예언한 선지자가 요한까지라는 말씀이다. 만일에 요한 이후에도 선지자가 있다고 한다면 요한 이후에 나오는 선지자가 엘리야의 사명이 되는 것이며 그 다음에 가서 그리스도가 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메시야 즉 예수 초림을 증거한 선지자가 요한까지란 말씀이다. 침례 요한 이후로는 예수 재림을 증거하는 복음의 선지자가 있는 것이다. 12사도로부터 시작하여 편지서나 복음서나 장래일이나 현재일을 예언하는 사람은 다 복음의 선지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침례 요한이 죽은 후 20년이나 30년이 지난 후에도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행21장10절]「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또는
[행11장27절]「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또는
[행13장1절]「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또는
[행15장32절]「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하였다. 그리고 신약 성경에도 분명히 선지자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기록된 바,
[고전12장28절]「하나님의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하였으며 또는
[ 엡4장11절]「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하였다.
이와 같이 선지자들이 복음시대에 와서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러면 사도 당시에만 선지자가 있고 오늘날에는 선지자가 없어야 하는가 아니다. 사도 시대에 선지자가 있었으면 오늘날에도 반드시 선지자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도 당시에나 오늘날이나 다 같은 복음시대이기 때문이다. 말라기 선지자는 오히려 예수 재림의 시기에 큰 선지자를 보내신다고 예언하였다. 기록하였으되
[말4장5절]「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하시었다. 어느 시대든지 선지자가 없을 때에는 참 진리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선지자 엘리야는 예수 재림의 길을 예비할 마지막 진리를 전하게 되는 것이다.
옛 세상은 다시 되풀이 하고 있다. 침례 요한은 예수 초림의 길을 예비한 선지자로 기쁜 소식을 예루살렘에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은 사도 시대에 있었던 초기의 신앙심을 재 부흥시킴으로 무너진 성전을 완전히 복구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 말씀하시기를,
[막9장12절]「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하였다. 이 말씀은 예수 초림때만 가리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예수 재림때에도 먼저 엘리야를 보내사 부패된 부분을 회복하여야 된다는 말씀이다.
■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라
말라기 선지자는 장차 무너지고 파손된 율례와 법도를 복구하므로 구원의 주를 맞이하게 될 것을 보았던 것이다.
[말4장4~5절]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하시었다. 혹은 이 예언이 예수님 초림 당시에 있었던 침례 요한을 가리킨 예언이라고 하여 엘리야의 사명이 끝을 맺은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침례 요한은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크게 강조한 일이 없고 다만 침례로써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성결과 회개의 침례를 베풀어 예수 초림의 길을 열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말라기 4장의 예언은 마지막 예수 재림을 영접할 준비로써 모세에게 명한 율례와 법도로써 정결함을 받을 수 있는 특수한 진리를 선포할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 나타나야 한다는 뜻이다.
이 기별은 예수 초림때가 아니고 성경의 말씀과 같이「극렬한 풀무불 같은」날이며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와 같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하실 때이다」(말4장1절)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침례 요한에 대해서 엘리야라고는 말씀하셨지만(마11장4~9절, 17장10~13절), 말라기 4장5절을 증거하신 적은 한 군데도 없고 다만 말라기 3장1절만 가지고 증거하신 말씀이 있다. (마11장10절, 막1장2절, 눅7장27절)
과연 말라기 3장1~5절까지 자세히 보면 침례 요한과 예수 초림에 대한 예언이 더욱 분명한 것이다. 기록된 바, [말3장1~3절]「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 그가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하시었다.
이 예언의 말씀과 같이 침례 요한이 와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증거하였고 예수님은 제사장들이 알지 못하는 순간에 저희들이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시고 날마다 그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요7장14~29절) 그러므로 말라기 4장의 예언이 다 같은 엘리야의 사명에 대한 예언이나 그 예언서에 나타난 시대에 관한 문제는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라기 3장1절이나 말라기 4장5절은 같은 엘리야의 사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침례 요한에게 일부 그림자로써 약간 보여 주었을 뿐이며 그 예언의 완전 성취는 예수 재림하시기 직전에 있을 예언이다.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은 옛적 실지 엘리야가 살아서 승천하였기 때문에 (왕하2장11절) 살아서 변형을 받고 승천하게 되어야 한다.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은 살아있는 산 성도 14만 4천명과 함께 변형을 입고 승천하게 되어야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다. 그러므로 주의 재림이 가까운 시일이 되면 먼저 선지 엘리야를 보내어 주의 재림을 눈으로 보는 것같이 완전한 증거로 증거한 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
■ 엘리야라는 이름의 뜻
엘리야라는 이름을 번역한 즉 「하나님 여호와」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시기 직전에 말씀하시기를
[마27장46절]「제9시(오후3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하였다. 그런고로 「엘리」는 하나님이요 「야」는 히브리 원어에 「야훼」즉 여호와이다. 육체로 오시는 하나님을 표상하는 뜻이다. 엘리야의 역사를 대강 연구하자면 엘리야의 거주지는 요단 동편, 갓지파의 땅, 길르앗지방 디셉 사람이라고 하였다. 때는 주전 912년 경에 활동한 사람으로서 의복은 털옷에 가죽띠를 둘렀으며 겸박한 사람이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나라가 바알 신과 아세라 목상을 섬김으로 그들에게 저주를 내려
[왕상17장1절]「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하며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까마귀들이 조석으로 떡과 고기를 (한때) 일년동안 물어다주어 먹고 있었으며 (왕상17장2~7절) 그후 엘리야는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그곳 과부에게 (두때) 2년 동안 살다가 (왕상17장8~15절) 2년후 이스라엘 땅으로 가서 아합 왕을 만나 바알신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 합 850인의 거짓 선지자들과 대결하기 위하여 갈멜산에 모이게 하고 850대 1로 대결함으로 승리하는 동안 (반때) 6개월이 되었다.
엘리야가 갈멜산 산상에서 기도함으로 큰 비가 내려 풍성한 열매를 내게 하였다.(왕상18장1~46절) 그래서 다니엘 선지자의 예언 「한 때 두 때 반 때」의 예언의 시대가 올 것을 예언하였고 (단7장25절, 12장7절 참고) 사도 요한도 옛날 아합왕과 이세벨 시대의 역사의 예언이 신약시대에 와서 반복될 것을 계시로 보고 기록하였다.(계2장20절, 12장14절 참고) 엘리야 당시의 3년반(눅4장25~26절)의 예언이 복음시대에 와서 다시 반복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당시의 엘리야는 이스라엘 나라 요단강 동편에 살고 있던 사람이다. 마지막 엘리야도 동방에서 나타날 것을 보이신 것이다. 엘리야는 역사상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승천하였으며, 옛날 멜기세덱과 같은 분이요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다. 기록된 바,
[히7장2~3절]「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하신 말씀과 같이 암행시에 오시는 육체의 하나님을 표상한 것이다. 마지막 엘리야는 암흑세기 동안에 짓밟혔던 진리를 다 찾아 증거함으로 최후 종말을 마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엘리야이신 재림 예수님이 육체로 오셔야 할 이유는 초림 예수 때 세워 놓은 새 언약이 암흑세기 동안에 짓밟혔으므로 새 언약, 생명의 진리를 회복키 위해서 주님이 친히 오셔야 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진리를 찾아내시기 위해 다시 오셔야 한다. 다시 오시는 주님은 암행어사로 이 땅에 오셔서 37년간 복음사업을 하다가 돌아가셔야 한다. 37년간 복음사업을 펴야 할 이유는 다윗의 왕위가 40년인데 초림 예수님은 3년간 밖에 일을 하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재림 예수님인 마지막 엘리야는 40년을 채우기 위해서 37년간 복음사업을 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