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약속의 자손과 남은 백성
성경에는 육신의 자손과 약속의 자손이 있다. 기록된 바,
[롬9:7~13]「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셨으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약속의 자손이라는 뜻은 이삭이나 야곱이나 출생 전에 미리 예언으로 약속하셨다는 뜻이다.
이 약속에 대한 문제를 대강 연구하자면 다음과 같다. 아브라함은 85세나 되는 노인이지만 아들이 없어 근심 중에 있었다. 그래서 본처인 사라가 자기의 몸종인 하갈을 남편에게 후처로 주었는데 그 하갈의 몸에서 하나님의 약속없이 이스마엘을 낳았다.(창16장1~16절)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약속하지 않은 아스마엘을 아브라함의 후사로 정할 수 없기 때문에 14년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기를
[창17:21]「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하시고 그 약속대로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았던 것이다.(창21장1~4절)
사도 바울은 이런 역사를 들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장차 있을 예언으로 해석하였다. (갈4장21절, 31절)
그런고로 출생 전에 미리 예언으로 약속한 사람들을 약속의 자손이라고 하였다.(롬9장7절, 13절, 갈4장28~31절) 그리고 야곱과 에서에 대해서도 그러하였다. 이삭의 부인 리브가가 임신하였는데 태중에 쌍태가 들어 서로 싸움으로 산모가 괴로워 죽을 지경이 되어 하나님께 물어 보았다.
하나님은 리브가에게 대답하시기를
[창25:23]「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하시었다. 두 민족이라 함은 야곱과 에서에 대한 말씀인데 두 사람이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미리 예언으로 약속하시길 「큰 자는 어린 자를 (야곱) 섬기리라」고 분명하게 약속한 그 말씀이 이루어진 야곱을 약속의 자손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오늘날 마지막 교회도 하나님에게 대한 육신의 자손이 있고 약속의 자손이 있는데 구약 성경에 선지자들의 예언이 있으면 약속의 자손이 되는 것이고 만일 구약 성경의 선지자들의 예언으로 약속하지 않았으면 현재 큰 부흥이 되어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에게는 구원받지 못할 육신의 자손밖에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 성경의 선지자들이 마지막 교회에 대해 예언하고 또 신약의 사도들이 예언해 놓았으면 그 예언이 성취되어 있는 교회가 바로 약속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혹은 생각하기를 위에 말한 예언의 시대는 이미 다 지나간 것으로 해석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사도 시대에 대한 예언은 사도 시대에 예언이 성취되었다. 그러나 마지막 교회에 대한 예언이 있을 때에는 그 예언대로 마지막에 예언이 성취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은 마지막에 대한 예언들이 신·구약 성경을 통해 더 많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동방에서 한 선지자를 택할 것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사46:11]「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 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 즉 정녕 행하리라」하였으며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계시를 볼 때 해 돋는 곳(동방)에서 마지막 인치는 천사가 올라올 것에 대한 예언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계7:2~3]「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 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하였다. 이와 같이 구약으로부터 신약의 연결적으로 예언해 놓은 것이 약속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까지는 모든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고 내려왔지만 최후 마지막인 오늘날에 와서는 약속의 자손이 되어야 기업을 받게될 하나님의 마지막 교회가 되는 것이다. (롬9장7~13절, 갈4장28~31절 참고)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는 문제는 참으로 귀한 문제이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백성은 참으로 귀중한 백성이다.
■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라
이사야 선지자는 마지막 구원받을 남은 자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사10:20~23]「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 되었음이라 이미 작정되었은 즉,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하였다.
위에 있는 예언의 말씀이 어느 때 될 예언이며 이 예언과 연결되어 있는 성경 구절은 어디에 있는가?
여기에 대해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마지막 때에 대한 예언이라고 기록하였다.
[롬9:27~28]「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하였다. 이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 연결된 말씀이다.
과연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 백성 곧 예수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전세계에 그 수가 바다 모래같이 많이 있다. 그러나 택하심은 받은 약속의 자손 즉 마지막 살아남아 변형을 입고 승천할 성도들은 오직 14만 4천 성도 밖에 안되는 것이다.(계7장2~4절)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하신 말씀과 약속의 자손과 연결해서 연구해보면 오늘날 전세계에 바다 모래 같은 많은 교회가 다 구원받지 못하고 「남은 자」 곧 약속의 자손만이 구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옛날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하나님께 송사하기를
[롬11:3~5]「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하였고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계시를 볼 때 마지막 남은 자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계12:17]「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하였다.
로마서 9 장 27절의 「남은 자」나 로마서 11장 5절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나 다 같은 예언으로써 곧 약속의 자손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여자의 남은 자손은 곧 하나님의 마지막 남은 자손이라는 말씀이다. 어느 때든지 미리 예언으로 약속하고 그 예언이 성취되는 그 시대 사람이 약속의 자손이 되는 동시에 성령을 따라 낳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기록된 바,
[갈4:28~29]「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하였으니 요한계시록 12장 17절의 여자의 남은 자손도 약속하신 약속의 자손이 되어있기 때문에 성령을 따라 난 자라고 하였고, 약속 없이 낳은 이스마엘과 같은 사람을 육체를 따라 난 자라고 한 것이다. 그와 같이 오늘날에도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으로 세워진 교회의 사람들의 성령을 따라 난 자가 되고 약속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 택한 백성에 대하여
혹은 생각하기를 「약속의 자손」이다,「은혜로 택하심을 받았다」하였으니 애써가며 노력하지 않아도 택하였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고 택하지 않았으면 구원받지 못할 것이 아니냐 하고 시험할 것이다. 그러나 택한 백성이라 해서 전부 택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중에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택한 백성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한 분명히 택한 백성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나 그러나 경솔하게 내가 택함을 받았나 안받았나 하고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된다. 기록된 바,
[신6:16]「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하였으니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된다. 택함에 대해서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먼저 택하사 이삭을 낳았고, 야곱을 택하사 이스라엘 12지파를 낳은 것같이 마지막에도 암행으로 오시는 다윗을 택하사 마지막 산 성도 14만 4천을 구성하게 하신 것이다.
그런고로 내가 택함을 받았나 안받았나 시험하기보다 먼저 진리를 연구하고 마지막 산 성도들의 사명에 들기 위하여 힘써야 할 것이며 마지막 선지자의 가르침을 힘써 배워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힘쓰는 자라야 들어 간다고 하셨다.
기록된 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눅13장24절) 또는「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눅16장6절) 또는「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장12절) 하시었다. 침입이라는 뜻은 힘써서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런고로 약속은 선지자를 택해 약속하였고 선지자는 백성들을 하나님에게로 인도하면 인도받는 사람들은 힘써 들어가기를 노력해야 될 것이다. 마지막 선지자의 사명은 약속의 자손으로서 산 자의 무리가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약속의 자손을 산 자라고 하셨다. 말씀하시길
[마22:32]「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하셨다. 이 말씀은 약속으로 택한 자의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두 다 미리 택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처음 아브라함을 하란에서 불러 내실 때에 약속하시기를
[창12:1~3]「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하셨고 이삭에 대해서는
[창17:21]「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하셨고 야곱에 대해서는
[창25:23]「큰 자는 어린 자(야곱)을 섬기리라」하시고 미리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분들을 산 자라고 하신 동시에 마지막 선지자의 사명에 들어오는 14만 4천 성도들이 산 성도가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마지막 선지자를 보내신다고 약속하신 동시에 14만 4천 성도들도 요한계시록 7장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약속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