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장 새 언약의 제도

작성자초록색|작성시간09.09.19|조회수27 목록 댓글 0

제목 : 하나님의 비밀과 생명수의 샘

발행 : 1980년 12월

저자 : 안상홍著

제33장 새 언약의 제도

새 언약은 옛 언약을 완성시키는 것이므로 옛 의문의 제도가 변역하여 신령적 제도로 행하게 된 것이다. 기록한 바,

 [고전5장7~8절]「우리의 유월절 양을 이미 죽여 제사드렸으니 그 양은 곧 그리스도시라 이러므로 우리가 절기를 지키되」 또는,

 [히7장12절]「제사 직분이 변역한 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하였다.

의문의 직분이 성령의 직분으로 변역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이 죄악 세상(애굽)에서 나온 날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시려고 애굽에서 나올 때에 행하신 유월절을 택하여 마지막으로 당신의 제자들과 유월절 성만찬 예식으로 새 언약을 주신 것이다.(눅22장7~13절, 19~20절, 출13장8~10절 비교)

예수께서 행하신 유월절은 양을 먹는 대신에 당신의 몸을 표상하는 떡을 먹게 하신 것이며 양의 피를 제단이나 백성들에게 뿌리는 대신에 당신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즙을 마시게 하여 우리의 몸을 정결케 함으로 「성령이 거하실 성령의 전」이 되게 하신 새 언약의 도리를 주셨으니 우리에게 이 날을 기억하고 이 날을 전하게 하신 것이다.(고전11장23~26절, 눅22장15~20절, 요6장53~55절 비교)

만일에 예수께서 마지막 행사로 남겨주신 유월절 예식이 아무날에나 행하여도 관계가 없을 것 같으면 아무날이나 성찬을 행하시고 아무날에도 행하여도 관계없는 것으로 본을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본을 주시려고 유월절을 기다리고「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고 말씀하셨다.

[눅22장15절]「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한가지로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하신 것은 유월절이 아니고는 당신의 사업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그날을 기다려서 제자들과 한가지로 유월절 잡수시기를 원하고 원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예식을 유월절 먹는 잔치라고 기록한 것이다.(참고 눅22장8~15절, 마26장17절, 막14장12절~14절) 유대 역세의 정월14일 바로 1,500년간의 장구한 시일에 걸쳐서 유월절 양을 잡아 내려온 그 달 그 날에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잔치를 잡수시고 이 절기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의 당신의 죽으심을 기념할 날로 제정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죄의 크신 공로를 유월절 성만찬 예식에다가 새 언약으로 인을 쳐 놓으신 것이다. 유월절 떡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몸이 되는 것이며 유월절 포도즙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보혈이 되는 것이다.

유월절은 대속죄의 크신 사랑을 우리에게 밝히 보여 주시는 예식이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성찬 예식의 중대한 문제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눅22장19~20절]「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하시고 또는,

 [요6장53~56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하셨다. 이 말씀은 당신이 유월절 양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실 몸과 십자가에서 흘리실 보혈을 유월절 성만찬 예식에다가 인을 쳐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예식으로 말미암아 주님 안에 거하게 되므로 생명을 얻게 되는 동시에 마지막 날에 살려주심의 약속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잔을 가지시고

 [눅22장20절]「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하시면서 포도즙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하셨다.

 [요15장5절]「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하셨다. 이 말씀은 마지막 성찬 예식장에서 포도즙을 주시며 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대속죄의 크신 사랑의 공로를 유월절 성찬 예식에다가 새 언약으로 정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요13장34절]「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15장12절]「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하시었다.

 [요13장13~15절]「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하셨다. 요한복음 13장 34절의「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하신 말씀은 누가복음 22장 20절의「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흘린 것이니라」고 하신 말씀이다. 다른 삼 복음에는「새 계명」이라고 하지 않고「새 언약」 또는 「언약」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고 요한복음에는「새 언약」이라고 기록하지 않고「새 계명」(요13장34절, 15장10~12절)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새 언약 곧 새 계명은 우리를 구속하신 구속주의 기념일로써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고 또한 형제들끼리 주님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유월절이 되는 것이다.

 [고전10장16~17절]「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하였으니 이 예식은 형제끼리 사랑 뿐 아니라 주님 안에서 한 몸이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 몸을 미워하는 사람이 없나니 주님 안에서 한 몸이 되면 또한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 같이 형제의 몸을 자기의 몸 같이 사랑할 것이다.

 

 ■ 새 언약은 복음이다

그리고 새 언약을 또한 복음이라고 하였는데 복음이라는 뜻은 복된 소리라는 말인데 구약 성경도 복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은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침례 받으신 때부터 시작이다. 기록한 바,

[눅16장16절]「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후부터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고 침입하느니라」하신 「그 후부터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라고 하신 것은 침례 요한 이후부터라는 말씀인데 예수님 침례 받으시고 40일 금식하신 후에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기 시작하셨다. 기록한 바,

 [막1장1절]「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하시었고 또는

 [마4장17절, 23절]「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하시며「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기」시작하셨다. 그 때부터 전파하시기 시작하신 천국 복음은 십자가로 끝마친 것이 아니라 세상 끝날까지 계속될 것으로 말씀하셨다.

 [마24장14절]「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하시었다. 우리는 주님께서 3년동안 행하시고 가르치신 천국 복음을 어떻게 해야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심각히 생각할 문제이다. 우선 주님이 걸어가신 그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주님이 행하신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주님의 말씀하신 것도 중요하지만 실지 교훈으로서 행하신 규례는 첫째 침례가 될 것이며(마3장13~17절) 둘째는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 성경 읽는 것과(눅4장16절, 마24장20절 비교) 초막절 때에 성전에 올라가사 전도하시는 것과(요7장2절, 37절) 유월절에 성만찬을 행하시며,

 [눅22장20절]「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하신 그 모두가 우리에게 가르치신 천국 복음이라고 하겠다. 혹은 말하기를 그 당시에는 예수님도 유대인이므로 모세 율법을 따라 안식일도 지키시고 초막절도 지키시고 유월절도 지키셨다고 주장하며 십자가 이후에는 모세 율법의 모든 절기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지키신 절기는 모세율법의 절기가 아니라 예수님이 3년동안 실지 교훈으로 가르쳐 주신 것이 다 새 언약의 절기인 것이다. 만일 예수님이 가르치신 교훈이 십자가 후에는 필요없다면 예수님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없는 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3년동안 너희에게 가르치고「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장19~20절)하셨고 또는

 [요13장15절]「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하신 이 모든 말씀은 예수님께서 3년동안 가르치신 천국 복음을 십자가 후에도 계속해서 전파하라고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고전11장1절]「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 받는자 되라」또는

 [고전11장23~26절]「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 하시면서 예수께서 십자가 전에 가르치신 복음 그대로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생명에 이르게 하는 복음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정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갈라디아 교회나 고린도 교회나 여러 교회가 주님이 가르치신 실지 교훈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록한 바,

 [갈1장6~9절]「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쫓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하였으니 이 다른 복음이 무엇이겠는가?

 이 다른 복음은 예수님이 행하시지 않은 복음은 다 다른 복음이 된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지키셨는데 일요일을 지키면 다른 복음이 될 것이요 예수님은 초막절을 지키셨는데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추수감사절을 지켜면 다른 복음을 지키는 것이 되는 것이요 예수님은 유월절을 지키셨는데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지키면 다른 복음이 되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할 때에도 기록하기를,

 [고후11장4절]「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하였다. 사도 시대에나 오늘날에나 진리가 아닌 다른 복음은 잘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예수를 잘 믿는다 하더라도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받았다면 저주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갈라디아1장6~9절까지 보면 다른 복음을 받거나 전하면 저주받는다고 거듭거듭 말해놓은 것을 보면 그리스도의 복음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심각히 생각해 볼 문제이다. 바울은 각 교회에 편지할 때마다 복음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롬1장9절]「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롬1장14~17절]「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롬10장16~17절]「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롬15장16~19절]「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고후4장4절]「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11장4절]「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엡1장13~14절]「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엡3장4~7절]「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골1장5~6절]「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갈1장6~9절]「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살전2장4절]「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살후1장7~9절]「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살후2장13~14절]「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빌4장3절]「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렇게 중요하게 말해 놓았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2세기 중엽부터 복음은 한 가지씩 변하기 시작하여 4세기 중엽에 와서 생명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완전히 변하고 말았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일찍 주님께서 가라지 비유로 말씀하신 예언도 있었고(마13장24~30절, 36~40절 참고) 사도 바울도 장차 불법한 자가 나타날 것과 거짓 진리를 믿게 될 것까지 예언하였다.(살후2장3~12절 참고)

그 예언의 말씀과 같이 오늘날에 와서는 무엇이 변했느냐 할 정도로 예수님이 친히 가르쳐 주신 복음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2세기 중엽 로마 교황 아니케터스(Anicetus)시대와 빅터(Victor) 교황시대로부터 변하기 시작하여 325년 니케아(Nicaea)공의회에 와서 닛산(Nisan)월 14일 유월절 지키던 것을 완전 폐지하고 말았다.(기독교사 초대편 121~123페이지 참고, 요약 기독교회사 49페이지 참고, 상해천주교 교리 중편 22~23페이지 참고, 천주교회책 교부들의 신앙 125~126페이지 참고) 위의 책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도 분명하게 증거되어 있지만 생명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 분들은 오히려 변경된 것은 잘된 것으로 생각들 하고 있다. 그러나 단 한가지라도 변경된 것은 거짓 교리이다.

 

 ■ 복음의 일꾼은 새 언약의 일꾼이다

복음은 또한 새 언약이라고 하였다. 기록한 바,

(엡3장7절)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하였으며 또는

[고후3장6절]「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하였다. 바울은 자기가 복음의 일군이라고도 하고 새 언약의 일군이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로마 교회에 편지할 때에는

[롬15장16절]「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하였으며 예수님에 대해서는

 [히9장15절]「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하였다. 이 새 언약에 주님께서 직접 유월절 만찬석에서

[눅22장20절]「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하시며 선언해 주셨다. 복음이나 새 언약은 모두가 주님 살아계실 때에 가르쳐 주신 교훈이다. 주님 십자가 후에는 다른 진리나 교리를 가르쳐 주신 일이 없고 십자가 전에 가르쳐 주신 교훈을 재강조 하시며,

 [마28장20절]「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하신 것 뿐이다. 그런데 요한복음 13장34절에는 새 계명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내용은 똑같은 하나님의 언약이다. 누가가 새 언약이라고 기록한 그 장소가 유월절 성만찬 예식장에서 하신 말씀이고 요한이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그 장소도 유월절 성만찬 예식장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안에서는 새 계명이라고 기록한 데가 없고 또 요한복음 안에는 새 언약이라는 기록이 없다. 그 이유는 결국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새 계명은 새 언약이기 때문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에,

[출34장28절]「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신4장13절 참고) 언약을 곧 계명이라고 하였으니 새 언약은 새 계명이라는 뜻이다. 또 한가지 문제는 누가복음에는 잔을 가지고 새 언약이라고 하였고 요한복음에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 새 계명이라고 하셨으니 문제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원리를 깨닫게 되면 새 언약이나 새 계명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마지막 유월절 만찬석에서

 [눅22장19~20절]「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하시었다. 주님의 살과 주님의 피를 여러 형제들이 다같이 먹고 다 주님 안에서 한 몸이 됨으로 형제들이 서로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기록한 바,

 [고전10장16~17절]「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하였으니 주님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있으니 어찌 자기 몸을 미워할 사람이 있겠는가? 우리는 근본 악하기 때문에 사랑할 줄 몰라도 주님의 살과 주님의 피가 내 안에서 형제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의 마지막 유월절 만찬으로 새 언약을 주신 그 말씀대로 유월절을 실행할 때에 주님의 살과 피가 여러 형제의 몸 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 서로 사랑함으로써 새 계명이 되는 것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