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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대한 단상/고창수(시인)-

작성자가을하늘|작성시간26.06.17|조회수6 목록 댓글 4
시에 대한 단상/고창수(시인)- 
나는 그간 마음에 탐탁하리만큼 좋은 시를 많이 썼다는 느낌은 별로 없다. 시에 깊이 몰두하여 혼신의 노력을 한 경험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시창작을 나름대로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본 일은 있다. 두서 없는 아래 내용 중 나의 인상 내지 추측에 불과한 것도 있다. 이 글에서 나는 시의 사회적 기능보다는 예술적인 면에 치중하고자 한다.

1. 시의 범위
 
나는 시의 범위를 매우 넓게 잡고 있다. 인간의 인식, 사상, 희망, 번뇌, 환상, 느낌, 감정 등을 시적 장치로 표현한 것은 일단 시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본다. 물론 시의 속성과 기능은 다종다양하며, 시대, 지역, 이념에 따라 그 양상이 조금씩 다르다. 시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으며 변용을 거듭할 것이다.

2. 시의 기능
 
시를 하나의 꽃에 비유한다면 한국시는 한국말이 피워내는 꽃이다. 시인은 이 꽃을 아름답게 피워내고, 아울러 한국어를 순화하고 풍부하게 하고 깊게 하는데 이바지해야 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이 있지만, 한국 민족의 존재의 총체를 담았다고 할 수 있는 한국어의 세계를 넓고 깊게 또한 비옥하게 하는데 시인은 기여를 해야 한다.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시적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데에도 진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시인은 자기의 모국어와 시의 지평을 넓히기 위하여 많은 탐색과 실험을 하여야 한다. 우리의 생활양식과 내용은 급격히 변천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시의 형식과 내용도 변하고 있고 또한 변해야 한다. 시인은 또한 인간의 정신적 활동의 앞장을 서야 한다.
 
시가 인간의 현실에 뿌리를 내려야 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시가 예술인 이상 시인은 역사적 현실 못지않게 예술적 현실을 중요시해야 한다. 아울러 시는 상상력에 의하여 심화되고 풍부해져야 된다. 예술작품에서 상상과 허구를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상상력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경험과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가 없다. 상상이나 꿈, 무의식 같은 현상은 인간의 개별적 경험 및 원초적인 집단 경험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고 하여 예술창작에서 상상, 환상 또는 허구를 경시해서는 안 된다.
 
가령 누가 음악작품이 일상적인 현실만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시인들의 말장난을 경계하는 말을 종종 듣는데, 물론 말장난만으로 시가 될 수는 없겠으나, 어떤 의미에서 시는 때로는 말장난 속에서 태어난다. 시인의 기능 중에는 음악가, 화가, 철학가와 비슷한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개념을 염두에 두고 나는 시의 창작에 임한다. 시인으로서의 나의 주된 관심은 나 자신과 남의 현실적 희로애락과 존재론적 번뇌를 포함한다.


 시는 무엇보다도 읽을거리, 볼거리를 제공하고 독자에게 어떤 깨달음과 감동을 주어야 한다. 또한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그러한 내용이 없는 시를 독자들은 읽을 시간 여유가 없을 것이다. 시인은 시창작을 위한 기본 훈련이 된 이후에는 가능하면 자기의 재능과 감수성에 맞는 특유의 시창작 활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며, 이는 한국시의 다양화를 위하여 필수적이다.

3. 시의 소재 및 창작과정

 
나는 시의 소재를 일상생활, 사색, 독서, 명상에서 찾을 때가 많으며, 계획적으로 소재를 미리 정해놓고 한 줄 한 줄 쓰는 경우와 우연한 착상 또는 미적충동, 영감 같은 것이 동기가 되어서 즉흥적으로 시를 쓰는 경우가 있다. 타자기 앞에 앉아 즉흥적으로 시를 쓰는 경우 자유연상법 또는 자동기술법 비슷한 발상법을 사용할 때가 있으며 (이런 방법은 동서양 공히 옛날부터 사용되어온 기술이다), 소재를 오랫동안 염두에 두고 시구를 한 줄 한 줄 메모하면서 써내려 가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의도적으로 좋은 시를 쓰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고 있으며, 시 작업을 생활의 일부로 삼고 있다.


 
나는 시를 창작하는 행위가 시의 바다에 낚시를 드리우는 것에 견주어 볼 때가 있다. 이러한 바다는 나의 일상적 현실과 의식 및 무의식의 세계를 내포한다. 이러한 바다를 풍족하게 하기 위하여 나는 한국의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을 꾸준히 읽었으며, 세계문학도 가능한 한 많이 읽고 있다. 한국어에 대한 친숙과 애착을 심화하려고 노력한다. 지하철, 음식점, 시장, 극장 같은 곳에서도 사람들의 육성을 경청한다. 한국시인은 마땅히 한국의 시적, 문화적 전통 속에서 창작을 하는 것이지만 세계 문학에서도 인류 공통의 시적 형식과 내용을 얻어올 수 있다. 나는 시인으로서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중요시하며 나름대로 시적, 철학적 사색을 계속한다. 종종 신들린 것 같은 심적 상태에서 시를 쓰는 경우도 있다.

4. 시어
 
시인은 자기 모국어 속에 나있는 희로애락의 상처 내지 흔적에 대하여 민감하다. 그리고 그러한 상처 내지 흔적은 개인의 시어에 옮겨져서 그 기쁨과 아픔을 전달해야 한다. 시인은 자기 모국어의 긴장과 가락과 음악을 가장 잘 활용하는 사람이다. 시인의 언어는 용수철처럼 탱탱하게 감겨져 있어서 농축, 긴장, 가락 등을 지녀야 한다. 모국어에 대한 시인의 책무는 그것을 자기의 시창작을 통하여 순화, 심화, 확대하는 일이다. 기본 훈련으로서 시인은 모국어가 가지고 있는 음악성을 터득해야 하고 그것을 조장해야 한다. 시어는 고양, 농축, 충전, 격앙된 언어이다. 산문의 언어와 시어가 다른 점은 여기에도 있다. 시인은 언어에 대한 감수성을 계속 연마해야 한다.
 
5. 시의 운율
 
운율은 시의 맥박이다. 이 맥박은 시인 개인의 맥박일 뿐 아니라 한국사람과 한국말의 맥박이기도 하다. 이 맥박은 또한 한민족의 원초적인 맥박이고 태고로부터의 율동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러한 맥박 속에서 자기의 시의 리듬을 얻어온다. 이 율동은 한민족의 희로애락이 배인 것이며, 한민족의 울음소리와 웃음소리가 섞여 있는 것이다. 나의 경우 어떤 음악적 충동이 시의 영상과 내용의 자극이 되는 경우가 있다. 리듬은 시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리고 시의 구성요소인 음악성(리듬), 이미지, 사상은 서로 얽혀져 있고 피와 살이 통하고 있어서 그 어느 하나를 따로 떼어낼 수가 없다.
 
6. 시적 형상화
 
시인은 어떤 생각이나 사상을 자기의 의식, 무의식 속에 내면화하고 소화하고 나서 자기의 시 속에 형상화해야 한다. 추상적이고 생경한 사상은 시인의 존재 속에서 살이 되고 피가 되어서 시 속에 표출되어야 한다. 시 작품은 시인의 사상과 경험이 자기의 정서의 살과 피에 용해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7. 시인의 감수성
 
시인은 언어와 자기 존재, 인류와 세계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 상상력을 가지고 보통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도 보고 듣지 못하는 것도 듣고 깨달지 못하는 것도 깨달아서 대중에게 이를 전달해야 한다. 전달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것도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8. 시의 전통
 
전통이란 문화를 지탱하는 하나의 패러다임이나 지속적 진화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결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전통은 역사의 일부가 되고 역사는 꾸준히 변천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령 이조시대의 생활환경 속에서와 같은 태도로 시창작을 계속할 수는 없다. 끊임 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대처하는 입장에서 전통을 수정, 보완 내지 개발할 필요가 있다.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시인의 상상력이 억제되어서는 안 된다. 시인은 자기가 물려받은 전통을 잘 파악하고 그 진화에 이바지해야 한다. 예술은 끊임없이 삶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며, 전통도 이에 부응하여 새로운 변모를 꾀하여야 하는 것이다.
 
9. 현상과 실재
 
인간 역사 가운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상/실재 어느 쪽을 강조하는가 하는 논쟁은 계속되어왔다. 이는 시론에서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판단컨대 시인의 기능 중 실재(이데아의 세계)를 조명하는 것이 종종 더 보람이 있고 특유한 기능이다. 시인은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도 있겠지만, 눈에 보이는 현상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첨가하여 현상 속에는 없는 소 우주를 창조하기도 한다. 예술은 인간의 생활공간을 확장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10. 문학의 위기
 
흔히 문학의 위기를 거론하는데, 그것은 현대인이 하루 시간 중 시에 할당할 시간과 관심이 점점 줄어드는 데에 있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이 종전에 비하여 훨씬 많아졌다. 인간의 삶의 내용이 변천함에 따라 문학의 성격도 부득이하게 달라지고 있다. 불원간 세계의 수많은 언어 가운데 생존할 언어가 극소수라는 말을 들을 때 문학의 위기설도 납득이 가능해진다.
 
11. 무의식에 대하여
 
일찍이 동서의 현자들이 말했듯이 인간의 세계인식은 무의식 내지 상상력에도 많이 의존한다. 시인은 무의식의 세계를 탐색해야 한다. 시인 내부에서 인간 개체와 집단의 역사와 우주의 목소리가 들려올 수도 있다. 인간의 삶은 먹고 마시는 소위 물리적 현실에서만 아니라 사색하고 명상하고 상상하고 번뇌하는 정신세계 속에도 영위된다. 시인은 때로 일반대중이 이해 못하는 경지에서도 세계와 우주의 실재를 탐색하고 형상화햐야 한다.


 
시인은 어려운 시를 결코 배척해서는 안 될 것이며, 이러한 경지가 시인 특유의 경지일 수도 있다. 모름지기 시인은 무의식의 세계 속의 신비를 경험하고 이를 대중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언어 밖에서 아른거리는 신비의 광명, 연금술사의 눈 앞에 어른거렸다는 그 신비의 노루도 보아야 할 것이다. 대중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그들의 문제일 것이다. 시는 하나의 전문분야인 바, 일반대중에게서 전문적인 안목을 늘 기대할 수는 없다. 따라서 시인은 자기의 시가 대중의 인기를 얻지 못한다고 한탄할 필요가 없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시만을 써서도 안될 것이다. 철학이 이해하기 쉬워야 된다고 주장하는 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이는 시에도 적용될 일이다. 시인은 남도 모르고 자기도 모르는 시를 쓸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시를 타기할 수는 없다. 동서의 고전작품 중 이런 경향의 작품은 많으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시인 자신을 위하여 시를 쓰는 행위를 창작행위에서 배제할 수는 없다. 시 창작은 때때로 신비스러운 작업이다. 그래서 시인은 신탁에 의하여 시를 쓴다든가 시인이 일종의 영매라는 말을 곰곰이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12. 시작품에 대한 평가
 
시 작품이 문학외적인 기준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고 시인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문학외적으로 조성되는 경우도 많다. 순전히 문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시 작품의 우수성에 대한 평가 기준은 1) 시인의 창작 의도의 성취 여부, 2) 그 시가 전달하는 메시지 내지 의미의 중요성 등을 들 수 있다. E. Pound 가 말한 대로 세 가지 유형의 시(melopoeia음악성이 강한 시, phanopoeia 시각성이 강한 시, logopoeia 형이상학적 내용이 강한 시) 가운데서 형이상학적 내용이 큰 시가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보는 시각은 동서양 공통일 것이다. 종국적으로 시작품이 얼마나 인간조건 및 인간의 환경, 세계와 우주를 잘 조명하고, 인간의 존재공간을 넓히고 향상시키며, 절실한 세계관과 인간의 진로를 제시하는가에 따라 그 우수성이 판가름된다.

 
시인은 이따금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회의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서는 시를 잘 볼 줄 아는 사람에게서 냉정한 평가를 받는 것도 좋을 것이다. 타인의 작품을 평가하는 능력은 자신의 작품을 평가하는 능력과는 성질이 다르다. 남의 작품보다는 자신의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자기 작품에 대한 냉담한 평가를 통하여 창작활동의 질을 높이고 창작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서는 지나친 애착과 편견을 갖게 마련이며 자기애착의 색안경을 쓰게 되는 것이다.
 
13. 동서양 예술미학의 비교
 
전통적으로 서양에서는 미학과 윤리학을 분별하고 예술행위의 주체를 독립된 개인으로 보는 반면, 동양에서는 예술이 덕성을 통하여 우주와 인간의 조화를 표현하는 것을 절대가치로 삼고 예술작품에서 미와 윤리를 구별하지 않았다. 즉 서양의 예술적 절대가치는 미(美)였고 동양에서는 진선미를 내포하는 인(仁)이었다. 시론에 있어서 사무사(思無邪) 또는 시언지(詩言志)의 사상도 이런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예술행위의 주체는 개인이었고 동양에서는 사회집단의 일원으로서의 개인이었다. 동양의 유불선 사상은 인간의 미적 욕망을 부정적으로 보고 서양에서는 긍정적으로 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동서양 예술행위의 성격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또한 동양에서는 언어가 진리(실체)를 표현하는데 미흡하다는 사상이 강했으며 이 또한 시예술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줄 안다. 동양적인 예술관에 따르면 예술가는 고매한 인품을 가지고 정서적 충동을 절제해야 한다. 동양적 예술론은 창작활동에 까다로운 제약조건을 제시하여 자유분방한 예술활동을 억제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한편 서양에서는 예술가는 미적 표현만 잘하면 되고 예술활동의 자율성을 누린다. 어찌 되었든 오늘날 이러한 동서간의 장벽은 무너지고 동서가 서로 밀고 당기는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시에 대한 나의 산만한 생각을 두서없이 나열하였는데 앞으로 기회 있는 대로 좀 더 짜임새 있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다만, 각 분야에서 세계화가 활발히 전개되는 현 시점에서 우리 문학도 세계무대에 더 많이 진출하여 세계독자의 심금을 울리고 달관한 세계관을 보여주고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려서 한국의 위상을 높여야 할 것이다. 우리의 창의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인류의 유산이 될 우수한 시작품을 더 많이 만들 것을 기대한다.
  
(우이시 제1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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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꿀벌 | 작성시간 26.06.18 가을하늘님.
    좋은글에
    감사드립니다
    목요일 오늘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답댓글 작성자가을하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8 감사합니다
    무더운날 건강 조심하시고
    즐건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도봉산 | 작성시간 26.06.18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가을하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8 감사합니다
    무더운날 건강 조심하시고
    즐건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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