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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교단의 기원과 교리

작성자필레오|작성시간26.06.17|조회수25 목록 댓글 1

 

 

 

                        침례교단의 기원과 교리

                (이 글은 이미 오래 전에 본 카페에 올려 놓았던 글입니다.

                3번은 다시 추가하였습니다. 회원의 요구에 다시 올려 놓습니다.

 

 

1. 침례교회의 기원

 

침례교회의 기원에 대해서는 3-4가지의 학설이 존재한다미국의 북침례교회의 역사 신학자인 로버트 토벳트(Robert G. Torbet)는 그가 쓴 침례교도의 역사’(A History of the Baptists)에서 세 가지의 견해를 소개하고 있다.

 

첫째는 전승설(The Successionist Theory)이다이 견해는 초대교회시대부터 침례교회의 원리가 존속되어 왔다는 주장이다그러나 초대교회는 수백년 동안 침례교인이라고 주장했던 역사적인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둘째는 아나뱁티스트 영혈설(The Anabaptist Spiritual Kinship Theory)이다이 견해는 16세기 이후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출현하기 시작한 재침례교도(Anabaptists)에게서 정신적 영향과 영적인 영향력을 물려 받았다는 견해이다.

셋째는 영국 분리주의자 후예설(The English Separatist Descent Theory)이다이 학설은 영국의 국교회(성공회)에서 분리되었다는 견해이다.

이에 반하여 미국의 남침례교의 교회사가인 에이취 레온 맥베쓰(H. Leon McBeth) 교수는 네 가지의 기원설을 제시한다.

 

첫째 영국 분리주의 파생설(The Outgrowth of English Separatism)

둘째 성경적 아나뱁티즘의 영향설(The Influence of Biblical Anabaptism)

셋째 성경적 교훈의 계속설(The Continuation of Biblical Teachings through the Ages)

넷째 시대를 통하여 조직화된 침례교회의 전승설(The Succession of Organized Baptist Churches through the Ages) 등을 제시하고 있다.

 

침례교회의 기원설이 이처럼 다양한 것은 그 기원이 역사적으로 불확실하기 때문이며동시에 다양한 분파에서 분리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침례교회의 신학자들은 다양한 기원설 중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기원설은 영국 분리주의자 후예설(The English Separatist Descent Theory)이다.

이 학설은 영국의 스튜어트 왕조(House of Stuart)의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성공회의 지도자였던 존 스미스(John Smyth, 1554?1612)가 타락해 가는 영국의 국교(성공회, Anglican Church)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다가 정치적인 압력을 받고 1608년에 자신을 따르는 신자들을 이끌고 네덜란드(화란)의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여 화란의 재침례교도 멘노파와 접촉하게 되면서 유아 세례를 반대하게 되었다.

당시 존 스미스(John Smyth)는 믿는 자에게만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으며교리적으로는 만인 구원론을 믿었다이 사상은 이단으로 정죄를 받은 알미니우스의 사상이었다.

그 후 존 스미스(John Smyth)와 그를 따르는 신자들은 1612년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런던의 스피탈필드(Spital field)에 교회를 세웠다이 교회의 지도자는 토마스 휄위즈(Thomas Helwys)였다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온 인류를 위한 것이라는 만인 구원설을 믿었기 때문에 일반침례교회(General Baptist)라 칭하게 되었다.

그런데 교리가 달리하는 다른 침례교회가 생겼다이 침례교회는 1616년 영국 국교회(성공회)에서 탈퇴한 헨리 제이콥(Henry Jacob)과 존 시필스버리(John Spilsbury)가 이끄는 무리들이 1638년에 세운 교회였다이 침례교도들은 신자의 몸이 완전히 물에 잠기는 침례를 주장했다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만이 가능하다고 믿었다장로교에서 믿는 제한적 속죄를 그대로 수용하고 믿었다이 침례교회의 신자들은 칼빈파의 구원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특수침례교회(Particular Baptist Church)라고 칭했다.

미국 침례교의 기원은 로저 윌리엄스(Roger Williams, 1603?~1683)이다.

그는 영국의 뉴잉글랜드 식민지의 개척자이며로드아일랜드 식민지의 창설자이기도 하다그는 당시에 유명한 청교도의 정치인들과 매우 가깝게 지낸 사이였으나, 1631년 보스턴에 도착한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마음에 품고 있던 새로운 종파를 만들기 위해 영국의 국교(성공회)에서 나온 청교도들과 협력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실천에 옮겼다.

그가 가진 사상은 청교도들과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그는 결국 청교도들에 의하여 매사추세츠에서 추방을 당한 뒤에 1639년 로드 아일랜드주의 프로비던스(Providence, Rhode Island)에 교회를 세웠다이것이 미국 최초의 침례교회이며그 후에 잔 클락(John Clarke)이 1644년에 뉴포트(Newport)에 두번째로 침례교회를 세웠다.

로저 윌리엄스(Roger Williams) 1603?~1683)는 짧은 기간이었지만재침례교도들과 퀘이커교도들과 친하게 지냈으며자신도 재세례파로 머물러 있다가 1639년에 자신을 스스로 구도자(Seeker)라고 주장하고 개혁파(칼빈주의)의 신학 이론에 수용하고 확고하게 밀고 나갔다현재의 미국 침례교파는 교리적인 측면에서 혼합주의 성격이 강하다즉 개혁파 장로교가 이단으로 정죄한 이단 아리우스의 사상과 개혁파의 교리가 혼합되어 있다. 1960년대 말에 전 세계의 침례교도의 수는 약 2,800만명으로 집계되었다그중에 2,450 만명의 신자가 미국에 집중되어 있다.

침례교파는 크게는 4개파로 나누고작게는 27개의 교파로 나눠져 있다가장 규모가 큰 4개 파의 교단들은 미국남침례교 총회(Southerm Baptist Convention), 미국통합침례교(National Bapist Convention U.SA. Inc), 미국침례교협의회(Nationl Batist Convention of America), 미국침례회(America Bationt Convention)등이다이들 4개 교단들 중에 가장 규모가 큰 교단은 미국남침례교 총회(Southerm Baptist Convention)이다현재 이 교단에 소속이 되어 있는 목사와 교회의 직분자들의 80%가 프리메이슨이라는 통계가 나와 있다뿐만 아니라 한국의 침례교회와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

 

2. 한국의 침례교회의 역사

 

   한국의 침례교회는 캐나다의 독립 선교사인 맬콤 펜윅(Malcolm C. Fenwick: 1863-1935)이 내한하여 1894년에 한국순회선교회를 조직하고, 1896년에 원산(元山)을 중심으로 침례교 선교사업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만주와 간도(間道)까지 선교사업을 확장하여 활동했다그 결과 1905년 제1회 총회를 소집하게 되었다이후 계속 확장되어 대한기독교침례회연맹총회와 기독교대한침례회연맹총회라는 그룹으로 나눠져 있다가 동아기독교라는 명칭으로 변경했다동아기독교는 1949년 제9회 총회에서 교단의 명칭을 대한기독교침례회로 변경했다.

이 총회를 통해 대한기독교침례회 교단은 미국남침례회와 손을 잡고 선교 지원금을 받으면서 서서히 분열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52년 제42회 총회에서 대한기독교침례회는 다시 대한기독교침례회연맹으로 교단의 명칭을 변경했다물질에 눈이 어두운 일부 목회자들 때문에 교단은 많은 갈등과 부작용을 겪다가 마침내 내분이 생겨 교단이 나눠지는 부끄러운 분열을 경험했다이 분열로 새로운 기독교한국침례회가 생겨났다이렇게 분열되어 있는 두 교단을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소장파 신학자들과 목사들의 목소리가 높았다마침내 소장파 목사들의 노력으로 1968년 4월에 두 교단이 통합하여 한국침례회연맹으로 명칭을 정했다그러다가 1976년 다시 교단의 명칭을 기독교한국침례회로 다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현재 대한민국에는 대한기독교침례회대한선교침례회연합회한국성서침례회 등의 교단들이 존재하고 있다그러나 문제는 기독교한국침례회는 여전히 미남침례교단의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참으로 아이러니 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3. 침례교의 침례와 장로교의 세례

 

세례 또는 침례를 뜻하는 헬라어 동사 '밥티조'가 신약성경에 77회 적용되어 있습니다헬라어 명사 '밥티스마'도 19회 기록되어 있습니다헬라어 명사 '밥티스모스'도 4회 적용되어 있습니다이 세 단어의 뜻은 물에 잠기다’, ‘침례’, ‘세례’, ‘뿌리다’, ‘염색하다’, ‘적시다’ 등의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받으신 세례는 침례입니다그렇다고 해서 신약교회(초대교회사도교회)가 반드시 침례만 베풀었던 것이 아닙니다.

필자가 서울에서 목회하고 있을 때입니다동네에 있는 침례교회의 목사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세례와 침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침례교회 목사님은 반드시 침례를 해야 한다고 매우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필자가 그 목사에게 신약성경에 적용되어 있는 헬라어와 성경의 말씀들을 인용하면서 신약교회가 반드시 침례를 통해서만 세례를 주었던 것이 아니었다고 성경 구절과 교회사의 내용들을 통해 상세하게 설명하여 주면서 고린도전서 10장 2절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라는 구절을 제사하여주었습니다이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홍해를 건너 갈 때에 바다가 갈라진 사이로 건넸습니다성경은 그것을 세례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몸이 물속에 완전히 잠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세례를 받았다고 성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이 구절에서 세례는 헬라어 밥티조입니다이렇게 설명하여 주었더니 그 침례교회의 목사가 하는 말 당시에는 하늘에 구름이 있었습니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그래서 필자가 목사님 지금은 하늘에 구름이 없습니까?”라고 하였더니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필자는 다시 설명하면서 초대교회 시대에 시리아의 시골교회에서 사용하였던 교회의 규범인 디다케’(열두 사도들의 가르침7장 세례를 보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살아(오염되지 않는 물있는 물로 세례를 주시오만일 살아 있는 물이 없으면다른 물로 세례를 주시오찬 물로 없으면 더운 물로 하시오둘 다 없으면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머리에 세 번 부으시오세례 전에 부세례자와 수세 자는 미리 단식하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초대교회도 이처럼 머리에 물을 세 번 붓는 세례와 함께 물속에 완전히 잠기는 침례도 같이 병행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신약성경에 나타나 침례 또는 세례 문제를 가지고 새로운 교단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 만큼 성경과 초대교회를 바르게 인식하고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특정 침례교가 성경적 아나뱁티즘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이미 본 카페를 통해 살펴 본 것처럼 장로교회는 초대교회 시대부터 있었습니다흔히 중세시대의 존 칼빈이 마치 장로교회를 세운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많으나칼빈은 사도교회에 있었던 장로교의 치리와 직분을 약간 추가시키거나 당시 상황에 맞게 좀 더 체계화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신약교회의 장로교의 틀을 손상시킨 것이 아닙니다사도교회(장로교회)를 계승한 것은 정통교회(아타나시우스 신앙노선)가 계승하였고이것을 중세시대의 개혁장로교회가 계승하였습니다그 역사적인 증거는 주후 325년 콘스탄틴 황제는 아타나시우스에게 이단으로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정죄되고 유배를 당한 이단의 우두머리를 아리우스를 풀어 주자고 제안하였습니다아타나시우스 감독은 황제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그리고 황제는 아타나시우스를 오늘날의 독일 국경 지역으로 유배를 보냅니다아타나시우스는 유배지에서 자신을 찾아 온 성도들에게 성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전하고 가르치게 됩니다.

 

   이 영향을 받은 로마제국의 황제인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주후 392년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하게 됩니다이로서 전 유럽은 기독교화가 된 것입니다당시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서로마제국과 동로마제국을 모두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아시아의 지역도 기독교가 국교가 되었습니다그 후 서로마제국이 주후 476년 멸망하고유럽에는 신성로마제국과 프랑크 왕국 등 다양한 제국들이 등장하게 되었고주후 590년에 그레고리우스 1세 교황이 정치와 종교를 하나로 합쳐 유럽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고로마카톨릭이 정식으로 역사 무대에 등장하게 되고 성경과 기독교 신앙을 파괴하게 됩니다서로마제국이 멸망하기 전까지 기독교가 국교였기 때문에 로마에서 변질되지 않는 교회와 성도들은 성경으로 돌아가자 초대교회와 정통교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종교개혁을 부르짖게 되었고로마카톨릭은 종교 개혁자들을 탄압하기 위해 종교재판소 등을 설치하여 본격적으로 박해를 가하였습니다생명의 위협과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찾아 종교 개혁자들은 한 곳에 모이게 되었고 그곳이 바로 제네바입니다따라서 역사적으로 사도교회(장로교)-정통교회(장로교)-개혁장로교가 그 신앙을 계승하여 오늘날까지 온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2천년 교회사에 단 한 번도 없었던 대 배도 사건이 대한민국의 교계에서 교파를 초월하여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말세의 큰 징조 중에 하나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에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하였습니다성경은 인류의 종말시기의 큰 징조로 배도(신앙의 배신배은사건이 일어나고 그 후에 멸망의 아들(적그리스도바다에서 올라 온 짐승)이 출현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이 배도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 인류의 종말 사건은 아직 멀었다는 말씀입니다그런데 현실에서 우리는 대 배도의 사건을 직접 목도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주님의 재림이 매우 가깝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할 뿐만 아니라 성경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점에서 전율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한국기독교정보학회

카페지기 필레오(안병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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