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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제의 세상 노트

오명(名)을 씻는다

작성자융제|작성시간26.06.18|조회수12 목록 댓글 0

 

현대 일본인이 자기 자신에게 대하여 행하는 가장 극단적인 공격 행위는 자살이다.

그들의 신조에 따르면 자살은, 만일 적절한 방법으로 행해지면 자신의 오명을 씻고, 죽은 후

평판을 회복한다. 미국인은 자살을 죄악시(罪惡)하고 있어, 미국에서는 자살은 절망에의

자포자기적인 굴복에 지나지 않지만, 자살을 존경하는 일본인에게 있어서는 명확한 목적을

지니고 행해지는 훌륭한 행위가 된다.

 

어떤 경우에는 자살은 이름(名)에 대한 ‘기리’(의리(義理)에서 당연히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가장 훌륭한 행동 방식이 된다. 설날에 빚을 갚지 못해 자살하는 채무자, 어떤 불운한 사건에

책임을 지고 자살하는 관리, 끝내 이루지 못할 연애를 동반 자살에 의해 성취하는 연인,

정부의 대중국 전쟁 지연 정책에 죽음으로써 항의하는 우국 지사들 등 모두는 시험에 낙제한

학생이나 포로가 되는 것을 피하는 병사와 마찬가지로 최후의 폭력을 자기 자신에게 가하고

있는 것이다.

 

2,3명의 일본인은 그 저서에서, 이 자살의 경향은 일본에서는 새로운 것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쉽게 단정할 수 없지만, 통계는 근년의 관찰자가 그 빈도수를 과대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지난 세기의 덴마크나 나치 이전의 독일 쪽이 일본의 어느 시대보다 자살자 수가 많았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일본인은 자살의 주제를 애호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미국인이 범죄 사건을 크게 떠들어대는 것처럼 자살 사건을 크게 떠들어대고, 미국인이

범죄에서 느끼는 대리 경험(代理經驗)의 즐거움을 자살에서 느낀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살해하는 사건보다 자신을 죽이는 사건을 화제에 올리기 좋아한다.

그들은 그것을, 베이컨의 말을 빈다면,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flagrant case(중대한 사건)'로 친다.

그것은 다른 행위를 논함으로써는 충족되지 않는 어떤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 루스 베네딕트 저, 김윤식 오연석 역, ‘국화와 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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