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고 사랑하는 한경직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목사님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목사님을 존경하며 학생과 청년 시절을 보냈고,
지금은 목사님께서 세우신 월드비전을 섬기고 있는 조명환입니다. 오늘 저는 목사님을 깊이
그리워하며, 한사람의 삶이 얼마나 깊고 오래가는 흔적을 남길 수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목사님은 참으로 큰 교회를 이루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저희 마음속에 더 크게 남아 있는 것은,
그 모든 것을 이루시고도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신 그 삶입니다. 목사님께서 하나님 품에 안기실 때
남겨진 것은 화려한 재산도, 축적된 권력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안경 하나, 성경책 한 권,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내신 삶 그 자체였습니다.
목사님은 가난을 말로만 설교하지 않으셨습니다. 삶으로 증명하셨습니다. 나눔을 권면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귀한 것까지도 기꺼이 내어놓으셨습니다.
누구나 붙잡고 싶을 템플턴상 상금 백만불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드리셨고,
추운 겨울, 한성도가 정성껏 마련해 드린 코트는 다음 날 아침, 교회 앞의 한 노숙자의 몸을 덮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그 모습 속에서 목사님의 신앙이 무엇인지를 봅니다.
목사님, 제가 진정으로 기억하고 싶은 것은 '업적'이 아니라 목사님의 '선택'입니다. 미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용서를 선택하셨고, 상처를 붙드는 대신 화해를 선택하셨으며, 분열이 아닌
사랑을 선택하셨습니다. 돈보다 하나님을 선택하셨고, 명예보다 섬김을 선택하셨으며, 미움보다
사랑을 선택하셨던 그 삶. 목사님의 이야기는 이제 과거의 전설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통해 이어지는 살아 있는 복음의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목사님, 2021년 목사님의 이름으로 월드비전 한경직상이 제정되었습니다. 이 상은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이웃을 온몸으로 섬기며,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묵묵히 살아내는 목회자와 선교사를 찾아
그 헌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오늘, 목사님께서 뿌리신 그 씨앗이 또 한 사람의
삶 속에서 어떻게 열매 맺고 있는지를 기쁜 마음으로 전하고 싶습니다.
제2회 한경직상을 위해 전 세계 20개국에서 28명이 지원하였습니다. 수상자로 인도네시아
티모르에서 사역하고 있는 세프리아누스 목사님이 선정되었습니다. 그는 번듯한 교회 건물 하나
없이도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건물이 아닌 사람을 세우고, 공동체를 세우는 참된
영적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가 사역하는 티모르 지역은 아동 발육 부진과 조혼, 폭력이 만연한 극심한 가난의 땅입니다. 많은
이들이 떠나기를 원하는 그곳에서 그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깊이 그 땅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에게는 번듯한 예배당이 없지만, 42개의 교회를 통해 4천 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으며, 부모교육과자립을 위해 25개의 여성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세 자녀
외에도 여덟 명의 고아를 입양하여 11명의 자녀를 직접 키우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십일조로 과부들의 집을 지어주었고, 월드비전과 함께 절망의 마을들을 희망의 공동체로
바꾸고 있습니다. 종교와 제도의 벽을 넘어 고난을 함께 나누고, 희망을 함께 세우는 그의 삶은 마치
살아 있는 복음과도 같습니다.
지난해 11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월드비전 국제총회에서 제2회 한경직상 시상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전세계에서 모인 지도자들이 그의 헌신 앞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그 자리에서 확신했습니다. 목사님께서 뿌리신 씨앗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살아서 또 다른 사람의 삶 속에서 열매 맺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사랑하는 목사님이 오늘 이 자리를 기쁘게 바라보시리라 믿습니다.
목사님께서 사랑하셨던 영락교회와 월드비전, 그리고 목사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저희가
이어가겠습니다. 목사님의 삶이 저희의 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2026년 4월 12일 한경직 목사님 기념예배 강단에서 한국월드비전 회장 조명환 드림
- 영락교회 발간 월간 ‘만남’ 26년 5월호에서